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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 마감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문화부 출판담당을 하면서 알게된 분들에게 얼추 인사를 드렸는데 빠뜨린 분들께 이메일이나 전화로 작별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만간’ 소주 한잔 하자는 이야기로 인사를 마무리하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조만간이 얼마나 흐른 뒤가 될지, 또는 정말로 소주 한잔을 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간 여러 차례 부서이동을 했지만 이번처럼 여운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번 인사가 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야 하는데 꼬리가 길어선지 자잘자잘하게 계속 출판면에 흔적을 남겼다. 지난 토요일자엔 나의 인사이동으로 연재가 끝나게 되는 ‘책동네 산책’ 마지막회를 썼다. 이 코너는 원래 전임 출판담당 선배가 시작한 코너였는데 내가 바통을 받아서 써왔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 출판을 담당할 선배는 이 코너가 오래 되어서인지, 다른 생각이 있는지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세계일보에서 같은 이름의 코너를 만들어서 출판계 사람들이 짤막하게 쓴 글들을 싣기 시작하기래 비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경향판 '책동네 산책'은 사라지게 되므로 세계일보가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2주마다 한번씩 이 코너를 이어가면서 2주의 시간이 그토록 빨리 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잡글이라도 쓸 때는 괴롭지만 써놓고 보면 그럭저럭 보람이 남는 법이다. 갈무리를 하면서 전에 썼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니 지난해 4월17일자에 처음 쓰기 시작해 그간 45꼭지를 쓴 것으로 나온다. 게중엔 이 블로그를 개설한 동기를 소개한 것도 있었다.

지난주 인터넷에 블로그 계정을 하나 텄다.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계정을 텄다’인 것은 일단 공간을 확보했을 뿐 아직 ‘공사 중’이란 뜻이다. 블로그 개설이 처음은 아니다. 몇년 전 기자들에게도 블로그 바람이 불었는데 이때 만들어 제법 진지하게 글을 몇개 써서 올렸지만 얼마 안가 그만 뒀다.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각 글이라도 메모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출판계 사람들을 만날 때 파워 블로거나 블로그 세계의 현안을 모르면 머쓱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로쟈가 뭐뭐라고 썼던데…”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내가 “예? 무슨 ‘쟈’라고요?”라고 되묻고, 상대방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상황을 말한다. 그 순간 ‘나이도 젊은데, 더구나 기자라는 사람이…’라는 상대방의 속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개설엔 어떤 압박감 같은 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6월27일자 '책동네 산책' 중에서)

 전에 출판담당 기자로서의 즐거움, 행복 같은 것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하튼 이렇게 해서 나의 ‘공식적인’ 일기도 끝이 났다. 그래도 손가락 품을 들여 블로그를 운영하는 습관은 남았으니 건진 것은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 블로그 컨셉과 내부 인테리어도 좀 바꿔야 할텐데 더 바빠지기 전에 아이디어를 좀 짜내야겠다. 아! 춥다.

[책동네 산책]읽는 행위는 계속될 것

“2010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군요. 달력이란 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시간에 금을 그어놓은 것에 불과한데 참 묘해요. 흘러가는 시간은 구분선이 없잖아요?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것은 따지고 보면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46억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매일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각별한 감정에 빠집니다.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 농경사회에서 살면서 각인된 본능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래도 연말을 핑계삼아 자주 못 만난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잘한 것, 잘못한 것을 따져보기도 하고 좋잖아요. 아마 연말을 가장 반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서점이나 출판사 사람들 아닌가 싶어요. 서점가는 12월에 들어서자마자 일찌감치 송년 분위기에 돌입했더군요. 인터넷 서점마다 분야별로 ‘올해의 책’ 이벤트가 한창이더라고요.”

“다른 문화상품들, 예를 들어 영화나 음악도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이 열리긴 하지만 책처럼 연말을 시끌벅적하게 보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독자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책’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까지 다양하더군요. 1년에 3만~4만종의 단행본이 나온다는데 연말 이벤트를 통해서나마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것이겠지요. 2009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1년에 평균 12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2010년에 ‘대한민국 평균인’에 들어가셨는지요?”

“턱걸이는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샌델 얘길 하길래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어봤고,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쉽게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천안함 사건이나 월드컵처럼 독서를 방해하는 사건이나 이벤트가 워낙 많아서 독서량이 전체적으로 줄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1년에 12권을 읽는다는 건 한 달에 한 권꼴로 읽는다는 뜻인데 이런 얘길 들으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 놀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면서요. 제가 보기에 독서도 양극화 현상 같은 게 있지 않나 합니다. 읽는 사람은 더 많이 더 깊게 읽는 반면, 읽지 않는 분들은 점점 더 독서와 멀어지는 현상 말입니다. 특히 디지털 멀티미디어를 일찍부터 접해온 젊은층은 ‘물질’로서의 책에 이전 세대보다 덜 친숙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확산될 전자책이 이들의 독서율을 높여줄지 관심거리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변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행태가 많이 바뀐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란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옛날에 책장 사이에 은행나무 이파리나 나팔꽃잎을 끼워서 말려보신 기억이 있으시죠? 저는 그게 단순히 멋으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책벌레를 막아주는 효능이 있대요. 그런데 이제는 책장에 나뭇잎 넣어서 말리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디지털 시대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멋과 낭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독서도 그렇습니다. 전달하는 매체의 모양이 달라질 뿐 ‘읽는 행위’는 계속되리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낙관론자인 셈입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네요. 아쉽지만 제가 책동네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책동네 산책’ 코너도 2010년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12.25)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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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사못회전 2010.12.27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여의도 출근? 아쉬 마음도 들지요? 곧 뵈어요. 삼겹살로 환송해 드릴게요.

“이곳 (네팔의) 말레 마을에 와서 다큐를 제작하며 우리는 늘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곤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다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말레 마을이 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커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이쏘리가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어린 커피나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피 농부를 본 듯했다. … 새로운 묘목, 새로운 희망이 가져온 변화. 커피는 이렇게 희망의 향기를 말레 마을에 퍼트리고 있었다.” -이주 노동, 아동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정무역 커피’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히말라야 커피로드>(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김영사) 중에서.

**이 책의 필자 가운데 한명, 그러니까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희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가운데 한명이 김영미 프리랜서 프로듀서다. 그는 나와 얼추 나이가 비슷한 것으로 안다. 요즘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에 '재능기부'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희말라야 커피로드'는 당연히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을 말하면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많다. TV로 이 다큐를 시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김영미 프로듀서는 이른바 분쟁지역 전문 프로듀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인터뷰하기도 했고,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 선원들을 납치,억류하자 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가기도 했다. 찌질한 소시민 범주에 속하는 나로선 부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직업이다. 물론 그를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 이 책을 숙독하지 않았고, 다큐 프로그램을 보진 않았기에 이들이 네팔 오지의 빈한한 농민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감염시키고 마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얼마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 말이다. 다만 우리와는 피부 색부터 얼굴 생김새까지 다르지만 고지대의 맑디맑은 공기처럼 해맑은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문득 이른바 '문명'에 가까울수록 우리가 지어보이는 얼굴표정에도 무슨 덮개가 씌워진 듯 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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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럴 기회도 사라져 버렸지만 나도 회사에서 내근을 할 땐 인왕산 자락을 종종 산책하곤 했다.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가기도 했다. 직장 근처에 이렇게 좋은 산책길이 있고, 짬을 내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리고 회사 구내식당이 있는 9층 옥상에서 보면 멀리 인왕산이 건네 보인다. 참 좋은 산이다.

그런데 누구는 ‘참 좋은 산’이라고 감탄만 하고 지나가는데 누구는 그냥 산책만 하거나 등산만 하지 않고 열심히 생각을 길어올려 일기를 썼다. 이 책을 쓴 궁리의 이갑수 대표의 내공에 비하는 나는 한참 아래다. 인왕산 자락 산책의 목적을 그날의 스트레스 해소와 다리운동에만 뒀던 게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기사, 쓴다고 해도 그 양반의 내공에 훨씬 못미쳤겠지만. 이갑수 대표는 몇번 만난 적이 있는데 참 맑은 분이다. 장난기도 있다. 리뷰 기사에서 썼지만 그가 운영하는 궁리출판사 사무실은 왠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나오는 출판사 사무실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신혼인 박중훈이 싸온 도시락을 열면 완두통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배들이 놀린다. 그래도 신랑은 좋다고 헤벌쭉이다. 이런 분위기 말이다.

여하튼 이 책을 보면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진심이다. 일기는 커녕 주기(週記)도 쓰기 어려운 게으름뱅이도 꿈을 꾸는 건 자유다.

손을 댄 책 몇권을 가방에 넣고 다니고는 있으나 이 책이 올해에 제대로 읽은 마지막 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의 일기로 한해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웬지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나의 사랑, 나의 인왕산

신인왕제색도 - 10점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궁리
인왕산 일기 - 10점
이갑수 지음/궁리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간 텔레비전에서 여러번 방영됐고, 주인공 중 한 명이 저세상 사람이 됐을 정도로 오래된 영화이지만 한편의 동화처럼 예쁘고 낭만적이다. 아무리 신혼부부에 관한 이야기라지만 어찌보면 닭살이 돋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영화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았던 것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를 꿈꾸는 출판사 직원으로 설정된 덕도 있었을 것이다.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대개 출판사 직원은 일반 샐러리맨에 비해서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있고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의 출판사 사람들은 이런 얘기에 열이면 열 모두 손사래를 치지만 말이다. 그런데 <빛으로 그리는 신인왕제색도>와 <인왕산일기>를 보면 그런 고정관념이 100%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은이는 서울 경복궁 뒤편에 자리잡은 인왕산 발치 통인동에서 출판사를 운영한다. ‘추석 차례상 앞에서 궁둥이 쳐들며 절을 한’ 게 50번을 넘었다니 나이 드실 만큼 드신 양반인데 바람이 나서 바람난 얘기를 새살새살 책으로 풀어냈다. 대상은 바로 인왕산. 점심시간에 자신이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게시판에 메시지를 남긴 다음 DJ가 달아놓은 댓글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모습은 엔간히 철이 든 사람에겐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가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태어난 날 비가 왔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어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그날 비가 왔습니다. 영점사미리가 왔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는 큰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흉을 보려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하는 얘기다.


그는 지난 1년간 인왕산을 바라보며 쓴 글을 월·수·금요일에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화·목·토(일)요일에는 인왕산에 올라 남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썼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인왕산을 올랐고, 오르지 못하는 날은 아래서 올려다 보았다. 사진을 찍은 이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 출판사의 영업부장이다. 그는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렸다는 장소(‘인곡정사’가 있던 자리·현재는 옥인동 군인아파트)를 찾아내 일주일에 3번, 1년간 인왕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담배가게 주인이 13년 동안 매일 아침 자신의 가게 앞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의 영화 <스모크>를 흉내낸 것이다.

지은이는 매일 아침·점심·저녁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안부를 여쭌 얘기며, 인왕산을 발로 밟으며 건져올린 추억과 사색들, 통인동 골목과 통인시장을 오가며 만난 이웃들 얘기들을 맛깔나게 풀어냈다. 그가 좋아하는 시, 판소리와 국악, 막걸리 얘기가 간간이 등장해 감칠맛을 더한다. 많을 땐 1년에 100번 넘게 오르는 인왕산은 그에게 ‘그 분’이다. ‘그 분’은 어떨 땐 ‘임’이고, 어떨 땐 신령한 존재이다. “나는 인왕산에 오를 때마다 승천하다 말고 잠시 인간 세상에 웅크리고 있는 용의 가쁜 숨결소리를 듣는다.”(2010·7·9) 지은이는 인왕산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본다. 이 사실이 몹시도 신기하다. 나는 너의 옷을 입고 너는 나의 옷을 뒤집어 입고 있다. 이 사실이 몹시 우스꽝스럽다.”(2009·11·18) “나 죽고 난 뒤에 나보다 오래 사는 이가 있어, 혹 그가 나를 추억하면서, 야 인왕산 자락에 살던 그 양반 성질이 얼마나 쌀쌀맞았노. 그 성질머리가 꼭 최근 이 겨울 날씨 같지 않았겠나, 그쟈. 해주신다면 참 고맙겠네, 참으로 고맙겠네.”(2010·1·15)

좋아하는 막걸리 몇잔에 흥이 오르면 판소리 한자락을 뽑아내는 그이지만 실은 무척이나 꼼꼼하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명편집자 출신이다.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젊은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애정은 온통 메말라 버석거리는 세상과 견주어 빛날 수밖에 없다. “저녁 6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그널 음악이 울리자 모두들 퇴근 준비를 했다. 통인시장에 들러 깎은 밤 한 됫박을 사고 큰길로 나와 경복궁역으로 걸어가는데 동대문 쪽 하늘에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도 보름달이었다. 달님한테는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노릇노릇 잘 구운 빈대떡처럼 아주 맛있게 보였다. … 아는 사람 만나면 저 향기로운 달 좀 보라며 소리치고 싶었는데 아는 이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2010·3·30)

2010년이 저물어 간다. 지은이는 2011년에도 인왕산에 오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흉내내어 이렇게 말해볼까. 나에게 늙음이란 더 이상 저 인왕산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2009·11·25) 이 책이 12월에 출간됐기 때문일까? 남의 일기를 보면서 ‘내가 올 한해 무슨 일을 했나’, ‘내년엔 무슨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옳거니! 어릴 적 해가 바뀔 때마다 했던 결심,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한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내년엔 꼭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2010.12.18)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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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에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쓴 인터뷰 기사. 실은 문화부 근무 마지막날 간담회가 열렸다. 보통 갖으면 그냥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날은 무지무지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 황선미씨가 주인공이라 그럴 수 없었다. 어린이 책 편집자들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전화나 이메일을 보낼 때 “이번 책은 누구의 작품이거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읽고 소개를 해줘야 하는 ‘중요’ 작가라는 뜻이다. 황씨가 그런 작가중 한명이었다. 그간 황씨의 동화를 한편 정도 본 것 같다. 몇달 전 리뷰 기사를 썼던 <뻔뻔한 거짓말>이다. <뻔뻔한 거짓말>은 초등 자학년 동화로서 학교가 주요 배경이다. 이 작품은 빈부차에 따른, 가정환경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주요 테마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출간과 관련해 간담회가 사전에 공지되고 며칠전 책이 배달됐지만 너무 정신이 없어 ‘예습’을 할 틈을 내지 못했다. 이럴 때 제일 괴롭다. 어쩔 수 없이 간담회가 열리는 장소로 갔다. 다행히도(?) 차가 많이 막혀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늦어졌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벼락치기’로 작품을 훑어 봤다. 말 그대로 눈으로 훑는거다. 처음 간담회에 갈 때는 기사를 짤막하게 쓰고 말아야지 했는데,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갈등과 상처, 아픔과 외로움에 처한 청소년의 상큼 발랄한 성장기’류의 청소년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작가도 굳이 대상 연령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고, 나 역시도 동의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독자층이 꼭 그에 국한될 작품이 아니다. 청소년에겐 아프고 어렵지만 약이 되는 작품이라고 본다.

논술을 가르치는 친구와 청소년 소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들어본 바로는 청소년들이 보기에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이 너무 시시해서 재미를 못느낀다고 한단다. 그래서 아예 일반 소설을 읽는다는거다.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여하튼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에 끊임없이 찬 바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70년대 성장기 아픈 기억, 요즘 시대는 달라도 같은 이야기”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 10점
황선미 지음/사계절출판사

황선미씨(47)는 1995년 동화작가로 등단한 이래 거의 매년 작품을 발표해 왔다. 특히 2000년에 출간된 <마당을 나온 암탉>은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어린이문학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성인 버전으로도 만들어졌고,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를 많이 썼지만 우화적인 세계에 머물기보다는 현실과 연관된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여성 동화작가들이 대체로 발랄한 상상력을 앞세우는 경향과는 대비된다.

황씨가 최근 출간한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은 ‘첫 청소년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리고 자전소설이다. 작가가 작정하고 자신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황씨는 “사건의 순서가 조금 다를 뿐, 90% 이상이 실제 겪었던 일”이라며 “너무나 아픈 기억이어서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털어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경은 1970년대 중반, 경기도 평택의 황량한 마을 객사리. 11살 소녀 연재는 엄마가 외삼촌 빚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넉넉하던 고향 생활을 뒤로 한 채 미군 부대 근처의 객사리 단칸방으로 이사를 온다. 엄마는 생선행상을 하고, 아버지는 전국을 돌며 막일을 하느라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른다. 의젓하고 공부 잘하는 오빠 밑으로 연재와 두 여동생이 있다. 그나마 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연재네는 외숙모네가 세들어 사는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스산하고 황량하다. 가족은 위태위태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객사리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강퍅하기만 하다. 연재는 그들을 무시하면서도 그들에게 합류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제목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은 ‘나랏님들’이 새마을운동을 한답시고 연재네가 살던 초가집 지붕을 불태우는 바람에 집이 없어져 버리자, 목수인 외삼촌이 얼기설기 판자를 덧대 만든 집을 모티브 삼아 쓰였다. 집 때문에 가족의 유대감이 무너져 버리지만, 반대로 방 한 칸에서 온 식구가 살을 부비며 잘 수 있었기에 서로를 한몸처럼 여겼던 시절의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 독자들은 매우 까마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배경이다. 황씨는 “물론 요즘 청소년들은 70~80년대 사회문제를 알지 못하고 대부분 개인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대배경은 소통을 위한 소도구이자 장치에 불과하다”면서 “자라면서 겪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엔 먹을 것과 입을 것의 결핍이 힘들게 했지만, 지금의 청소년들도 상대적 박탈감, 가족 간 유대 및 공동체 의식의 부족 등으로 인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처량한 얘기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에겐 모두 힘든 시기가 있어요.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거나, 시대 이야기로 읽거나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별개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2010.12.17)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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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을 작년 4월부터 썼는데,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돌아가신 분이 세번째로 주제로 올랐다. 다들 책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분들이어서 피해갈 수 없었다.

리영희 선생하고는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이 좀 있다. 신입기자 시절 국제부에서 근무했는데 아프간전에 관한 기사를 보고 리 선생께서 칭찬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감열지 팩스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손수 칭찬하는 메세지를 써서 문화부 팩스로 보내셨다. 문화부 선배가 기념으로 갖고 있으라며 주셔서 고이 보관했는데 얼마전 보니 오래되서 그런지 글씨가 지워져 버렸다. 감열지는 오래 놔두면 그렇게 되나보다.

선생을 직접 뵐 기회도 있었다. 2003년 가을 즈음 선생 댁으로 찾아갈 일이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이 연재중이던 '실록 민주화운동'의 한꼭지가 <전환시대의 논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료사진을 구하려 찾아뵌 것이었다. <역정>을 들고가서 사인을 부탁했더니 거짓말 안보태고 정말로 입이 귀에 걸리시는 모습이었다. "아니 이거. 아직도 이 책이 나오나?"라면서 뇌졸중 때문에 불편한 팔로 사인을 해주셨다.

출판계 주변을 얼쩡거린지 1년8개월. 이래저래 낯을 익힌 분들이 적지 않다. 그중엔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 분들도 적지 않은데 ‘정식’ 인사를 드리지도 못하게 출입처를 옮기게 됐다. 좋아서 기자라는 직업을 하고 있지만 몇번 겪었어도 이럴 땐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격주마다 쥐어짰던 책동네 산책도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 한다. 다음주쯤 2010 송년 지면에 고별 칼럼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 블로그에 출판계 분들이 알음알음으로 들어와 보신 것으로 안다. 그간 내가 쏟아낸 주제 넘은 소리들을 귀엽게 봐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책동네 산책]리영희처럼 읽고 생각하기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상적 은사’ 또는 ‘의식화의 원흉’이 그에게 상투적으로 따라붙었던 수식어다. 정반대의 뉘앙스이지만 이런 수식어는 대체로 그가 쓰고 말한 것들에서 유래한다. 기자로서,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선생은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이 남긴 글들만 생각하기 쉽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글을 쓰기 위해 그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읽고, 궁리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는 것이다.


선생은 환갑을 몇 년 앞둔 88년 <역정>(창비)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오래전 읽는 이 책에서 내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모두 ‘읽기’에 대한 선생의 집념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나던 시절 선생은 안동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선생은 집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언제인가 징역을 살 때는 학창시절에 하다 만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가족에게 <레 미제라블> 원서를 넣어달라고 해서 읽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내가 기자가 된 것은 그가 현직기자에서 물러난 지 30년 가까이 흐른 뒤이지만 ‘기자 리영희’가 남긴 전설은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통일원 자료실’ 얘기일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과거엔 기자 또는 학자라고 해도 북한 또는 공산권에서 나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북한 관련 연구자가 통일원 자료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자기가 열람하는 자료마다 ‘리영희’란 사람이 앞서 열람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유심히 봤더니 거의 모든 자료의 열람카드에 리영희라는 이름이 써 있었다고 한다. <리영희 평전>(책보세)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자신이 그간 쓴 현대사 인물에 관한 10여권의 평전을 선생이 모두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까지 지적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글을 쓰거나 말하기에 앞서 ‘팩트(fact)’부터 챙기는 선생의 습성을 보여준다. 선생의 평론집 <스핑크스의 코>(까치)에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바쁘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96년에 쓴 글인데 젊은 여성들이 소비주의에 휘둘리는 세태를 꼬집는 내용이다. 선생은 그 해 겨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죽부츠가 크게 유행한다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들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결혼식 참석차 명동에 나간 김에 가죽부츠의 인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길 한쪽에 서서 지나가는 여성 20명의 구두를 살폈다고 했다. 그 결과 8명이 가죽장화를 신었더라면서 40%라는 수치를 도출한다. 이처럼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글에서조차 선생은 근거를 제시하고 싶어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선생의 글들은 차분한 분석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웅변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사평론집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오래됐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 <스핑크스의 코>처럼 십수년 전 나온 선생의 평론집은 지금 읽어도 시의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우리가 선생에게서 ‘리영희처럼 쓰기’뿐 아니라 ‘리영희처럼 읽기’와 ‘리영희처럼 생각하기’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2010.12.11)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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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기엄마 2010.12.15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읽는다는 거 정말 힘들지요. 애기엄마의 경우 동화책은 많이 읽지만요^^ 문화부를 떠나신다니 안타깝네요. 정치부에서도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