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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의 황선미 작가

문화부에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쓴 인터뷰 기사. 실은 문화부 근무 마지막날 간담회가 열렸다. 보통 갖으면 그냥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날은 무지무지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 황선미씨가 주인공이라 그럴 수 없었다. 어린이 책 편집자들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전화나 이메일을 보낼 때 “이번 책은 누구의 작품이거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읽고 소개를 해줘야 하는 ‘중요’ 작가라는 뜻이다. 황씨가 그런 작가중 한명이었다. 그간 황씨의 동화를 한편 정도 본 것 같다. 몇달 전 리뷰 기사를 썼던 <뻔뻔한 거짓말>이다. <뻔뻔한 거짓말>은 초등 자학년 동화로서 학교가 주요 배경이다. 이 작품은 빈부차에 따른, 가정환경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주요 테마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출간과 관련해 간담회가 사전에 공지되고 며칠전 책이 배달됐지만 너무 정신이 없어 ‘예습’을 할 틈을 내지 못했다. 이럴 때 제일 괴롭다. 어쩔 수 없이 간담회가 열리는 장소로 갔다. 다행히도(?) 차가 많이 막혀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늦어졌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벼락치기’로 작품을 훑어 봤다. 말 그대로 눈으로 훑는거다. 처음 간담회에 갈 때는 기사를 짤막하게 쓰고 말아야지 했는데,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갈등과 상처, 아픔과 외로움에 처한 청소년의 상큼 발랄한 성장기’류의 청소년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작가도 굳이 대상 연령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고, 나 역시도 동의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독자층이 꼭 그에 국한될 작품이 아니다. 청소년에겐 아프고 어렵지만 약이 되는 작품이라고 본다.

논술을 가르치는 친구와 청소년 소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들어본 바로는 청소년들이 보기에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이 너무 시시해서 재미를 못느낀다고 한단다. 그래서 아예 일반 소설을 읽는다는거다.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여하튼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에 끊임없이 찬 바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70년대 성장기 아픈 기억, 요즘 시대는 달라도 같은 이야기”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 10점
황선미 지음/사계절출판사

황선미씨(47)는 1995년 동화작가로 등단한 이래 거의 매년 작품을 발표해 왔다. 특히 2000년에 출간된 <마당을 나온 암탉>은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어린이문학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성인 버전으로도 만들어졌고,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를 많이 썼지만 우화적인 세계에 머물기보다는 현실과 연관된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여성 동화작가들이 대체로 발랄한 상상력을 앞세우는 경향과는 대비된다.

황씨가 최근 출간한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은 ‘첫 청소년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리고 자전소설이다. 작가가 작정하고 자신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황씨는 “사건의 순서가 조금 다를 뿐, 90% 이상이 실제 겪었던 일”이라며 “너무나 아픈 기억이어서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털어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경은 1970년대 중반, 경기도 평택의 황량한 마을 객사리. 11살 소녀 연재는 엄마가 외삼촌 빚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넉넉하던 고향 생활을 뒤로 한 채 미군 부대 근처의 객사리 단칸방으로 이사를 온다. 엄마는 생선행상을 하고, 아버지는 전국을 돌며 막일을 하느라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른다. 의젓하고 공부 잘하는 오빠 밑으로 연재와 두 여동생이 있다. 그나마 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연재네는 외숙모네가 세들어 사는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스산하고 황량하다. 가족은 위태위태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객사리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강퍅하기만 하다. 연재는 그들을 무시하면서도 그들에게 합류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제목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은 ‘나랏님들’이 새마을운동을 한답시고 연재네가 살던 초가집 지붕을 불태우는 바람에 집이 없어져 버리자, 목수인 외삼촌이 얼기설기 판자를 덧대 만든 집을 모티브 삼아 쓰였다. 집 때문에 가족의 유대감이 무너져 버리지만, 반대로 방 한 칸에서 온 식구가 살을 부비며 잘 수 있었기에 서로를 한몸처럼 여겼던 시절의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 독자들은 매우 까마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배경이다. 황씨는 “물론 요즘 청소년들은 70~80년대 사회문제를 알지 못하고 대부분 개인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대배경은 소통을 위한 소도구이자 장치에 불과하다”면서 “자라면서 겪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엔 먹을 것과 입을 것의 결핍이 힘들게 했지만, 지금의 청소년들도 상대적 박탈감, 가족 간 유대 및 공동체 의식의 부족 등으로 인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처량한 얘기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에겐 모두 힘든 시기가 있어요.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거나, 시대 이야기로 읽거나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별개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201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