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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인터넷 서평계를 보호하라

일주일에 3개면씩 나오는 출판면을 꾸미는 입장에서 한정된 지면이 항상 압박감을 준다. 가끔씩은 3개면을 채우기가 민망할 정도로 '괜찮은' 책을 고르기가 어려운 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발의 차이로 서평으로 다루지 못하는 책들이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반대로 꼬집고 비판해 줬으면 하는 책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도 대체로 지나간다. 신문 서평에 대해 간혹 '왜 좋다는 얘기 밖에 없냐?'라고 비판을 하는 경두가 있는데 사실 신문 지면은 독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 의미와 가치가 충분한 책을 소개하기에도 부족하다. 어느 블로거가 책을 씹었다가 논란이 있었던 모양인데 여러모로 생각해봐야할 질문을 많이 던진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출판사들은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부터가 치열한 경쟁이다. 출판사가 직접 광고를 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 내려주는 평가와 입소문이 절실하다. 언론 서평에 목을 매던 이들에게 인터넷, 특히 블로거들의 등장은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아마도 개별 블로그의 카테고리 가운데 빈도수가 매우 높은 것 가운데 하나가 책 읽은 소감을 적는 코너가 아닐까 싶다.
이런 트렌드를 눈치챈 출판사들은 익명의 독자들이 자사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독자들을 찾아나섰다. 인터넷 서점에서 매일 벌어지는 온라인 서평 이벤트가 그것이다. 대형 출판사들은 자체적으로 인터넷 서평단을 모집·관리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책이 파워 블로거가 언급하면서 ‘대박’으로 이어진 사례가 나오자 출판사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블로거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출판계에서 일반화된 블로거 마케팅 행태를 출판사나 블로거들이 돌아볼 만한 작은 소동이 얼마 전 블로그 세계에서 발생했다. 이른바 ‘파워 북로거’로 알려지면서 이벤트 응모 차원을 넘어서서 출판사들로부터 무료로 신간을 많이 받아보고 있는 한 블로거가 특정한 책들에 대해 아쉬운 점, 미흡한 점 등을 신랄하게 꼬집은 글들을 써서 따로 마련한 카테고리에 모아뒀다.
그는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행복했지만 ‘별로’인 책들에 대해선 무시하는 수법을 썼다고 말했다. 공짜로 받은 책을 악평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형편없는 외식을 하고도 ‘맛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책의 문제점을 짚는 글들을 썼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방문자가 “당신이 뭔데 출판사에서 홍보해달라고 (공짜로) 보낸 책을 함부로 서평을 하느냐”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댓글을 달았다.
이웃 블로거들은 분노했다. ‘신간 홍보용으로 받은 책에 대해 악평을 하면 안되는 것인가’ ‘블로거가 출판사의 홍보요원인가’ 등의 비난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열성적인 블로거 7명은 이번 일의 전말을 담은 글을 내게 보내왔다. 이들은 다른 블로거들이 ‘받은 값을 하기 위해 좋은 평을 쓸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는 책은 외면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질문도 답도 블로거들이 했다. 공짜라 하더라도 책이 출판사를 떠나는 순간 평가의 몫은 서평자에게 있다. 혹여 ‘정성 어린’ 악평을 비난한다면 너무 근시안적 사고방식이며, 출판사와 저자가 보기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질 낮은 악평을 해줄 사람에게 책을 보냈다면 마케팅 실패로 봐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은 없지만 블로거 마케팅에 대해 출판사들의 고민도 없지 않다. 일부 영악한 독자들이 블로거 서평단에 들기 위해 깊이도 내용도 없는 서평으로 도배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심한 경우 책을 보내주지 않으면 악평으로 도배하겠다는 취지로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인터넷 서평 카페도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서평들은 책을 매개로 무한히 펼쳐진 소중한 세계이다. 인터넷 서평계마저 화장품과 가전제품, 육아용품 등 다른 상품들에 관한 블로그 상품평들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자정기능을 잃고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버리는 쪽으로 흘러버린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다. <20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