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고 나를 마치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사실 내가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구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지만...)
[책동네 산책]책 안 읽는 나라, 전자책 통할까
아침저녁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승객 서너명에 한 명꼴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다. 서있든 앉아 있든 상관없다. 십중팔구 인기리에 방영 중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이어폰을 꽂지 않은 채 드라마 속 대사와 배경음악으로 소음마저 ‘나눔의 정신’을 실천 중이신 악취미의 소유자를 만나면 낭패다.
부글거리는 속을 간신히 달래며 눈을 돌리니 회사원으로 보이는 양복쟁이는 ‘맞고’에 열중이시다. 오호라! 바야흐로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시대로구나.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신은 대한민국에서 드라마와 영화와 게임으로 육화(肉化)했도다. 각자의 손에 들린 ‘똑똑한 전화(스마트폰)’는 전화이기를 거부한 지 오래다. 출퇴근하느라, 등하교하느라 경배의 기회를 놓쳐버릴 뻔했던 신을 만나게 해주는 제사장이다.
그런데 새로운 제사장이 등장했다. 드라마와 영화, 게임에 밀려 위기에 빠진 책을 복권시킬 기대주란다. 감미로운 어감까지 배어나는 ‘전자책(e북)’이다. 이제 책을 여러권 짊어지고 다니느라 어깨가 빠질 이유도, 읽은 책을 쌓아두느라 책장이 내려앉을 이유도 없다. 양장본 책 한 권 무게의 전자책 단말기에 수십권의 책이 들어간다. 더구나 값도 싸다. ‘할렐루야!’
전자책은 이미 미국을 휩쓸고 있단다. 인터넷 서점의 원조격인 아마존닷컴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 종이책보다 더 많은 전자책 콘텐츠가 선물용으로 판매됐다고 자랑이다. 한국인들이 만져보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던 아이폰을 한국에 출시하는 ‘은총’을 베풀었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최첨단 개인용 컴퓨터의 일종인 ‘아이패드’를 전 세계인들에게 2010년 새해 선물로 선사했다.
언론들은 아이패드가 전자책 시장을 정통으로 겨누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패드의 홍보 브로슈어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언론 기사들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아이패드의 세련된 디자인은 소비자들을 매혹시켰다. 그들은 이미 아이패드의 매끈한 터치스크린을 쓰다듬으며 황홀경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한쪽에선 세계가 전자출판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느냐는 우려와 호통이 들린다. 지난 5일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 전자출판 정책연구 태스크포스팀과 한국전자출판협회의 취지도 그것이었다. “세계는 전자책이 대세다. 그런데 한국은 뒤져 있다. 제도나 산업 기반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출판계의 ‘막연한’ 불안감도 문제다. 따라서 법과 제도의 정비, 정부의 지원과 함께 출판계의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발제자가 던진 대강의 요지다. ‘막연한’ 불안감에 빠져 있는 것으로 지적된 출판계도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전자책이 사람들로 하여금 드라마와 영화와 게임에 쏟는 열정의 반만큼이라도 책에 쏟을 수 있게 만든다면 정말 좋겠다.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책을 읽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그토록 선풍적인 인기라는 전자책이 그간 한국에서 정착되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는 뭘까. 새로운 전자기기에 대한 열광에선 미국인 뺨치는 한국인들 아닌가. 킨들이 없어서?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엣지’있고 성능좋은 국산 전자책 단말기는 이미 유통 중이다. 전자책 콘텐츠가 없어서? 적긴 하지만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정답은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이 쥐고 있다. <20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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