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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독자와 출판계에 미치는 거대출판사의 시장논리

이 글을 쓰면서 몇몇 사람이 눈에 밟혀 괴로웠다. 내가 문제 삼은 보도자료를 작성한 홍보 담당자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웅진 임프린트 내의 대표 혹은 편집자 몇몇이었다. 결코 개인을 비난하고자 쓰는 글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쓰긴 했지만 워낙 직언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이 글을 읽을 그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잖이 괴로웠다. 근데 이 글이 나가고 난 뒤 다른 출판사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났을 때 '동감한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다. 동감한다는 그들의 심사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었을수도 있지만 다소나마 위로가 됐다. 결코 악담을 위한 악담이 아니었다는 뜻을 내가 도마 위에 올렸던 그들도 알아주면 좋으련만.

'웅진'(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업본부)이 2009년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 출판사가 자신의 연매출을 보도자료 형태로 홍보하는 경우는 드물다. 웅진은 일찌감치 연매출 1000억원이라는 목표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고 몸집 불리기를 거듭하고 있기에 목표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자축과 자부심의 표출이리라. "3년 연속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는 보도자료 속 표현에서 이런 자부심이 진하게 느껴진다.
"출판사가 무슨 떡복이집도 아니고 많이 팔았다고 동네방네 떠드느냐"고 비꼬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게 뒤틀린 심사로 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웅진은 매출액 통계를 높이기 위해 연말엔 반품을 받지 않는다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의심 역시 언감생심이다. 인위적 매출 조작은 도덕적 지탄과 함께 법적 처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이 얼어붙었던 지난해에 오히려 매출을 크게 늘렸다는 것은 축하해줄 일이다.
그런데 끝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보도자료 말미에 등장한 문장이다. "매년 25% 이상씩 꾸준한 성장세를 거듭해온 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업부분은 올해 매출 목표를 800억원으로 정하고 시장점유율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 보도자료는 홍보 또는 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분야에서 작성했을 것이므로 작성자에겐 이 문장이 별로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규모의 경제가 가져오는 이점이 상당하기 때문에 경영 측면에선 내부적으로 이런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것을 탓할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말은 출판사가, 그것도 대외적으로 공표했다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마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한국의 출판문화를 선도하겠다"고 공표한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웅진의 보도자료에는 출판사들이 흔히 하는 의례적인 이 다짐도 찾아볼 수 없다.
흔히 요즘 출판계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출판사들이 돈 되는 책, 다시 말해 팔릴 만한 흥미 위주의 책을 만드는 데 너무 매달린다는 지적이다. 물론 잘 팔리는 책이 다 나쁜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악재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생존을 도모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출판사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더구나 시장을 주도한다고 자부하는 잘 나가는 출판사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본이 집중돼 체력이 커진 만큼 출판의 외연을 넓히고 전체 파이를 키우기 위한 고민이 맡겨진 것이다.
사회과학 용어 중에 '경로의존성'이라는 게 있다. 한 번 경로가 정해지면 그 관성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바꾸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웅진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외쳤고 경로를 그에 맞춰 설정했기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계속 그 길로 나갈 것이다. 문제는 웅진이 설정한 경로가 미칠 파장이다. 거대 출판사의 행보는 각자의 경로를 설정하고 나아가려는 상대적으로 작은 출판사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적으로도 경로의존성을 부과한다.
출판계도 시장만능 논리에 휘둘리면서 퇴색하긴 했지만 책은 사람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고 이성을 차갑게 만드는 도구이다. 따라서 생산자인 출판사나 소비자인 독자 모두 쉽사리 '책은 상품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행본 출판사로서는 처음으로 연매출 600억원을 달성한 웅진에 축하를 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설정한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목표가 출판계와 독자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길 권해본다. <20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