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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도서정가제' 또 부상…이번엔 이뤄질까


‘에코투어리즘’이란 것을 공부하겠다며 신문사를 휴직하고 영국으로 떠난 동료가 한 명 있다. 그는 절판된 책의 초판 모으기가 취미이기도 한데 얼마 전 자신의 블로그에 ‘워터스톤스(Waterstone’s)는 어떻게 영국 출판산업을 말아먹었나?’라는 제목의 영국 언론 기사를 인용한 글을 올렸다.

워터스톤스는 영국 전역과 유럽 일부 지역에 300여개의 서점망을 갖고 있다. 1982년 워터스톤스가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대도시가 아닌 시골엔 서점이 적어 문방구나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책을 팔았기 때문에 워터스톤스가 서점망을 전국으로 확대하자 지식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워터스톤스가 영국 출판계를 말아먹은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가격파괴에 있었다. 영국은 91년 정가제를 권장소비자가제도로 바꿔 도서 할인판매를 허용했다. 워터스톤스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물량공세에 나섰다. 이 때문에 중소서점들은 무너졌고 워터스톤스의 독과점체제가 확립됐다. 그러나 ‘아마존’이라는 강적이 등장했다. 매장 유지비가 들지 않는 아마존의 ‘대박할인’에 맞서려면 워터스톤스도 계속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은 두 가지다. 서점들이 책값을 낮추자 출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덤핑으로 납품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들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구비하다 보니 출판사 역시 팔릴 만한 책 위주로 출판을 하게 됐다. 독자들은 서점에 가봐야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서점에 찾는 책이 없으니 독자들은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시행착오 끝에 워터스톤스를 비롯한 영국의 서점들은 자신의 위상을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정립시킴으로써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영국 언론이 전한 스토리다. 왠지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최근 국내 출판계에도 ‘동네서점’의 위기와 도서정가제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해묵은 주제가 다시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정가제에 따르면 현재 출간된 지 18개월 이내의 신간은 10% 이내에서만 할인이 가능하다. 경품고시에 의해 판매가격의 10%까지 경품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 서점들은 보통 신간서적의 가격을 10% 할인해 주고,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정가의 9%까지 경품으로 제공한다. 결국 정가의 19%까지 할인해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매장 유지비가 드는 오프라인 서점들은 이 수준의 할인이 어렵다. 사실상 도서정가제가 무너진 것이란 비판이 나오지만 인터넷 서점들은 가격 경쟁력 또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며 규제를 거둬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경품규제 자체를 없애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출판학회 주관으로 경품규제와 도서정가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 사회를 봤던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예상대로 입장차가 드러났지만 대체로 경품제공 자체를 없애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문화부에 이 같은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제를 제대로 지키자는 출판계의 결의가 모아진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문제는 출판계와 서점계가 다양하고 건강한 출판생태계를 유지하고 공생을 이루기 위해 사익추구의 유혹을 얼마나 자제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