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생명평화연대가 진행중인 즉물즉설 행사를 취재하러 갔었다. 내 순번이 돌아와서 간 자리였는데 이날 강사였던 마사키 다카시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유인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존재한다면 마사키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용조용했지만 그가 하는 말들에는 뼈대가 있었으며, 저돌적 추진력을 지닌 인물임을 짐작케 했다. 지면에 소개됐던 내용 외에 그날 녹취한 전문을 첨부해본다. 압축할 수 밖에 없는 지면에선 그의 주옥 같은 말들을 다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꽤 긴 글인데 시간이 넉넉할 때 한번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일본의 인도 철학자이자 농부, 생명·평화운동가인 마사키 다카시(正木高志·64)는 지금 대한민국 땅을 걷고 있다. 그는 2007년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인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의미로 100일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일본 땅을 순례하는 '워크나인(walk9)'을 이끌었다. 마사키는 한국·일본의 젊은이 20여명과 함께 지난 9월9일 서울을 출발, 100일 일정으로 남한땅을 시계방향으로 순례하고 있다. 일제의 한국 침략을 사죄하고 아시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마사키는 한국순례 52일째 되던 지난달 30일 '생명평화결사'가 진행하고 있는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의 네번째 강사로 나섰다. 그는 "폭력과 비폭력은 같은 평면 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의식상태에서 비폭력의 의식상태로 상승하는 것, 그게 바로 비폭력"이라고 말했다.
-워크나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워크(walk)는 말 그대로 걸어서 순례한다는 뜻이다. 나인(9)은 일본 헌법 9조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자연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심었다. 자연의 어머니가 나를 안아준 후 나는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자연의 어머니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전쟁이었다. 일본 헌법 9조는 아시다시피 군대 보유를 금지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2년 전 헌법 9조 폐지에 관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하고 걷는 일이라 생각했다."
-헌법 9조가 있지만 일본은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고 우경화되고 있지 않은가.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는 천황제가 살아 있다. 한 가지 비전을 찾아보자면 지금 젊은이들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기보다 지구인으로 태어났다는 의식이 훨씬 강해 보인다. 나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지구인이다. 동아시아인이다'라는 식으로 새로운 비전을 갖도록 한다. 국가는 전쟁에 지지 않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국가에 자기 정체성을 둔다면 전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자연과 지구에 진짜 정체성을 두고 생명의 기반 위에 사회를 두는 쪽으로 의식을 전환했을 때 국가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동아시아 평화의 핵심이 남북간 평화라고 보는데.
"세계가 온통 전쟁 중이다. 어디서부터 변할 수 있을까. 저는 남북 화해가 세계 평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을 위한 조건이 있다. 일본 헌법 9조다. 지금 일본에서 헌법 9조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반반으로 나온다. 투표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헌법 9조의 존폐가 달려 있는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의 힘으로 헌법 9조가 지켜진다면,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한·일 젊은이의 화해가 시작되면, 중국과 일본 젊은이들도 화해할 것이다."
-한국에도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도시 문화에 대한 선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나는 30년 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다. 당시는 사람들이 나를 바보 취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롤모델처럼 되고 있다. 10년 전부터 일본의 젊은이들이 시골로 향하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만난 젊은이들이 농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도시 문명은 끝이 나고 대자연에 뿌리를 내린 새로운 문화가 이미 싹 트고 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서울을 떠날 것이다." <2009.11.2>
<마사키 다카시 즉물즉설 전문>
-무슨 생각으로 워크나인을 하는가?
"모든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을 위해서, 인간들이 전쟁을 하지 않게 하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고 걸었다. 바닷가와 언덕을 걸으면서 바다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등 뭇 생명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봤다.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 산과 바다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 행진의 의미였다. 그 순례는 정말 즐거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웃는 일이 많았다. 이렇게 파괴된 바다를 보면 정말 슬퍼지다가도 조금 있으면 아주 아름다운 바다가 나타나서 기쁘기도 하고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이번 워크나인은 두번째다. 처음부터 이 워크나인은 아주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실은 그 역사문제를 깊이 인식했기 때문에 걷자라고 했던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서 걷는 이 행위가 정말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생각한 것처럼 진짜 힘들다. 하지만 이게 수월한 일이었다면 이미 평화는 우리에게 와 있었을 것이다. 이 힘든 가운데 화해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워크나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제가 평화를 희망한다기 보다는 평화를 찾기 위한 '핀홀'(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걷고 있다."......
-선생님에 대해 별로 공부하지 않고 왔는데 워크나인이라는 게 상당히 궁금하다.
"워크는 말 그대로 영어로 walk, 걸어서 순례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 금방 아셨을 것이다. 나인(9)에 대해 설명드리겠다. 9는 일본 헌법 9조에서 나온 9이다. 일본 헌법 9조에 대해 혹시 아시는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시라. 절반 정도 아시네요. 실은 저도 3년 전까지는 그렇게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저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어서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날이 많다. 자연을 걱정해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연의 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나를 안아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간인 제가 있고, 자연이 저쪽에 있어서 저는 분리돼 있었다. 인간인 내가 자연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어느날 자연의 어머니가 나를 안아준 그 순간부터 저는 그쪽으로 가버렸다. 그날 이후로 저는 자연의 입장에 서서 언제나 자연으로서 생각하게 됐다. 자연의 입장에서 봤더니-나는 자연의 존재들을 엄마라고 생각하는데-엄마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인간이 벌이는 전쟁이었다. 저는 어느날 직감적으로 깨달은 적이 있었다. 헌법 9조라는 것은 이전에 전쟁을 치르고 나서 '절대 전쟁을 일으켜선 안된다, 군대를 가져선 안된다, 총을 들어선 안된다'는 평화헌법이었다. 그것이 바로 헌법 9조이다. 아주 짧은 헌법 내용인데, '첫째, 일본은 두번 다시 군대를 가져선 안된다. 일본은 두번다시 국제문제 해결한다는 것을 빌미로 군대를 개입시켜선 안된다'는 것이 바로 헌법 9조다.
제가 직감이라고 말했는데 일본 국내에선 우파가 강력해지고 있고, 미국 쪽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헌법 9조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미국의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무기를 팔기 위해서다. 더 많이 팔기 위해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일본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면도 있다. 그런 압력도 있고 그런 움직임 속에서 2년전 헌법 9조를 없애기 위한 국민투표를 하자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1년이 지나면 언제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직감으로 돌아가면 나는 어느날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고 있었다. 만약 일본에서 헌법 9조가 없어지고 전쟁이 일어나면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직감이 들었다. 원자력이 파괴되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몇십만년 동안 괴로움 속에 살아야 할 것인가 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헌법 9조가 얼마나 중요한가, 헌법 9조를 쟁취하는 쪽으로 국민투표를 이용한다면 평화를 지키는데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가능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걸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화를 기도하면서 걷는 것, 헌법 9조를 지키는 순례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다.
그렇다면 내가 왜 한국에서 워크 나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1년반 전에 오키나와에 갔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국내 영토 가운데 유일하게 전쟁터가 됐던 곳이다. 아주 작은 섬인데 전쟁을 통해서 25만명이 죽었다. 일본군, 미군 합쳐서 군인이 10만명, 나머지 15만명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민간인들이 전쟁에 휘말려 그렇게 많이 돌아가신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는 평화를 기도하는 큰 모임이 있다. 20만명 이상의 유골을 모아서 평화를 기도하는 묘지도 있다. 그곳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거기서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됐다. 지금도 그 대지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영혼들이 많이 있구나. 힘들게 대지 아래서 신음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강렬하게 경험했다. 방금 20만명이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라. 한명 한명의 슬픔과 비참함이 그 밑에 있을텐데, 한명 한명이 무한처럼 퍼져나가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텐데, 그게 대지 아래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책을 한권 사서 돌아와 읽었는데 오키나와에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 1만6000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만6000명 가운데 1만4500명이 전쟁 때 돌아가셨다. 저는 그 부분을 읽는 순간 제 혼이 얼어붙을 정도로 그분들의 죽음과 슬픔이 전해졌다. 일본의 일반 시민이 그렇게 죽는 것도 비참한 일이지만 일본에 끌려와서 그렇게 죽는 것은 정말 비참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일본에서 일본을 걸어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평화와 헌법 9조를 지키자고 말하는데 한국에 가서 이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7월 처음 한국에 왔고 9월에 다시 와서 순례 준비를 했다. 이제 와서 100일 동안 순례를 하고 있다. 이번에 특히 같이 걷고 있는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 가운데 내 생각에 공감하는 30대 젊은이 세명이 전부 준비를 했고, 그분들이 주체가 되서 걷고 있다. 지금 그 젊은이들은 전쟁을 완전히 모른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전쟁을 거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 9조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분들이다. 헌법은 국가의 것이다. 일본 국민 입장에서 전쟁을 어떻게 볼지 열심히 생각해본다. 일본은 이전 전쟁에 대해 학교에서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다. 저한테 있어선 워크나인이 사죄의 순례라고 할 수 있지만 저와 함께 걷는 젊은이들은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100일의 순례 기간 동안 오늘이 52일째다. 딱 반정도 걸은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게 평화를 위한 걷기를 하고 있는데 평화를 위한 걷기 속에서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에선 아주 긴 시간동안 학교에서 아주 이상하게 역사를 가르쳐 왔다. 그 결과 두 나라는 아주 가깝지만 서로를 정확하게 볼 수 없게 마인드 콘트롤 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인데 특히 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적 경험은 우리들 잠재의식 속에 확실하게 숨어 있다. 이 점이 바로 아주 긴 시간 동안 평화를 실현시키지 못한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건 표면적인 것이고 정말 아주 깊이 들어가면 서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 부분이 제법 두터운 벽이 되어서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저희들이 걷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시면 평화를 화두에 놓고 한국 사람 일본 사람이 하루종일 같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다. 통역하는 분이 1분 있다. 그분도 충분하지 않고 문화나 말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게다가 불행한 역사가 있다. 말이 안통해서 오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나쁜 쪽으로 오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우리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말 하면 '응응, 그래' 하면서 열심히 듣는다. 근데 싫어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면 '맞어 맞어' 하면서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순례는 처음부터 아주 큰 갈등들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었다. 바로 그 오해를 낳은 현실에서 서로 믿고 이해할 수 있는 그곳까지 100일에 걸쳐서 함께 순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힘들지만 아주 해볼만한 일인 것이다. 전원이 어쨌든 절대로 갈 것이다 라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참 훌륭한 일이다.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있는데 이건 국가간 문제하고 비슷하다. 100일에 걸쳐서 정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어둠속에서 아주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거기서 작은 빛이 비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터널을 뚫는 순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하나 말씀드리면 '니쿠자가'라고 하는 일본 음식을 아시는지? 감자하고 돼지고기를 간장으로 졸인 요리다. 설탕을 조금 넣어서 달짝지근하게 만드는데 굉장히 맛있다. 처음 감자하고 돼지고기를 같이 졸인다고 생각해보시라. 감자와 돼지고기가 따로 논다. 계속 졸이면 감자의 각진 부분이 부드러워지고 돼지고기에서 맛있는 국물이 나와 스며든다. 100일 동안 계속 졸이는 것이다. 고기에서 얼마나 맛있는 국물이 나오겠는가. 감자에 완전히 스며들 것이다. 감자가 아주 맛있어진다. 지금 이 요리의 반 정도 왔다. 그런 순례를 날마다 하고 있다. 반이므로 아직 맛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100일 지나면 반드시 맛있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언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됐는지,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나눴으면 한다.
"저는 작년 7월 처음 한국에 왔다. 저는 예순넷이다. 스무살때부터 세계를 여행을 다녔다. 스무살부터 서른두세살까지 인도는 오랫동안 여행을 다녔다. 인도가 제 전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미국, 여기저기 다녔다. 유럽에 갈 때도, 미국에 갈 때도, 심지어 인도를 갈때도 서울을 경유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 제가 한국에 와본 적이 없었다. 경유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년에 처음 와서 젊은이들 만났고, 만나서 여러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다고 했더니 그 젊은이가 어째서냐고 하더라. 그래서 생각해봤다. 왜 내가 안왔을까. 이렇게 여행을 많이하고 매우 가까이 있고 심지어 통과도 여러번 했는데 왜 그랬을까. 깊이 생각했다. 곁에 있으니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리 없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모른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보이는 척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부분을 열심히 생각하고 생각해서 <나비문명2>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왜 나는 모른척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까. 저는 일본에선 매우 리버럴한 사람이다. 저 혼자 그러고 있었을 까닭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직면하는 것이 무섭다기 보다는 직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의 교육안에 한국을 외면하게 하는 그런 장치가 분명히 심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 이야기를 조금 해야할 것 같다.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를 만든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만든 사람은 조선 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실은 혹시 알고 계시는가. 지금부터 2300년전에 일본에선 조몬인이라고 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 시대는 아직 한국이나 중국에서 일본과 교류가 없었다. 1만년 이상 아주 긴시간 동안 조몬인이라는 사람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2300년전 조몬인의 인구가 7만3000명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1000년이 지났다. 1300년전 일본 인구가 540만명이었다. 이 때부터 국가가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다. 2300년전부터 대륙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이동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반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게 4세기에서 7세기에 걸친 시기다. 지금 2300년전 조몬인이 7만3000명이었다고 했는데 대륙에서 한명도 오지 않고 자연적으로 증식했을 때 얼마나 늘었을까 연구한 인류학자가 있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굉장히 신뢰받는 통계인데 56만명이라고 말한다. 아까 560만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400만명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역사를 말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반도에서 왔다. 가야국이 멸망하고 나서 대거 일본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7세기에는 백제 사람들이 일본으로 온다. 신라가 3국을 통일했을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온다. 신라에서 나와서 일본으로 온 사람들이 신라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세운 나라가 일본이었다. 미 합중국을 만든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국을 세운 건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는 것을 익히 안다. 선주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만든건 조몬인이 아니었다. 조몬인은 죽임을 당하거나 해체됐다. 일본인이라고 하면 조선 반도에서 온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진짜 역사다. 일본 역사는 <일본서기>라고 하는 오래된 역사책에 적혀 있다. <일본서기>는 백제, 가야에서 온 사람들이 나라를 세울 때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책이다. 일본국은 672년 만들어졌다. 바로 그때 천황이라고 하는 것도 태어났다. 천황이 역사책을 쓰라고 칙명을 내린 것이다. 이 역사책은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의미를 만들어낸 책이다. 이 책은 일본 세운 사람들이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이라는 것이 한줄도 나와 있지 않는다. 옛날부터 일본에 일본사람들이 잇었다고 쓰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거나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이건 전혀 거짓말이다. 이 역사책이 만들어진 것인데 700년인데, 701년에 일본에서 중국으로 사신이 간다. 이 책을 들고 중국으로 사신이 간다. 그때부터 완전히 거짓말이 적힌 역사책이 중국으로 전달된다. 신라에 져서 일본으로 온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실을 역사책에 적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갖기 싫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살았고 이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일본이라고 쓴 것이다. 이 책이 씌인 것이 700년이고 1000년이 지났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일본에 아무도 없었다. 아주 어려운 한자인데다 궁전 안에 있었다. 일본인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300년전 에도시대에 이르렀다. 노리나가란 사람이 나타나서는 일본서기라는 책하고 고사기라고 하는 오래된 역사책을 섞어서 역사책을 만든다. 그리고 그 작업을 이어서 한 사람이 히라타 아츠타네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일본서기에 적힌 일본의 역사를 진실이라고 전제를 하면서 일본 역사를 다시 썼다. 그렇지만 이 역사책은 거짓말로 점철된 책이다. 신라에 대항해서 원한을 가지고 일본에 온 사람들은 조선반도에 대한 원망이 있었겠죠. 그 책에는 다시 복수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천황을 모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복수하자고 적혀 있다. 아츠타네라고 하는 사람이 세운 역사관을 '황국사관'이라고 한다. 황국사관이 메이지 시대의 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이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책을 만든다. 그 역사 교과서를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읽고 배우면서 전쟁도 하고 강제 연행도 하면서 반복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본의 모든 교과서는 황국사관을 바탕으로 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저는 이것을 '백제의 카르마(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저는 우리가 한국을 외면한 것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본다. 이 카르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다. 진짜 평화가 필요하다. 이 이상 전쟁은 절대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카르마를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는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장 최근에 잘못한 일본이 사죄하는 것, 가장 가까운 역사에 잘못을 저지른 일본이 사죄하는 것이 처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인이라면 반드시 복수하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헌법 9조에는 두번다시는 전쟁해선 안되고 군대를 가져선 안된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어날 국민투표에서 헌법 9조를 지켜내는 것이 지금까지의 카르마를 해소시키는 길이기도 하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자,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헌법 9조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고, 무의식적으로 일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전화를 신청하려고 할려면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생년월일을 쓸때 연호를 써야 한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일본 친구들도 무기력감을 많이 피력했다. 최후는 천황제라고 하더라.
"말씀처럼 저도 일본의 연호는 정말 싫다. 소화, 평성이라는 것은 적지 않는다. 언제나 서기 몇년이라고 쓴다. 말씀하신대로 그런 식으로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살아 있다. 그것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비전은 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기 보다는 지구인으로 태어났다는 그런 의식이 훨씬 강해 보인다. 지구인으로 태어난 젊은이들이 일본인이라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위압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 워크나인을 같이 순례하는 젊은이들도 그런 친구들이다. 그래서 저는 천황제를 아직도 신앙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에겐 아무 말도 안한다. 얘기만 하면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천황 얘기로 풀기보다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지구인이다, 동아시아인이다'라는 식으로 새로운 비전을 갖도록 한다. 저보다 윗세대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일본인이라고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저 스스로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존 레논을 좋아한다면 같은 마음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식, 우리는 세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는게 1960년대부터라고 본다. 제가 그때 20대였다. 인도를 여행하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지구인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것, 그리고 대지를 배경으로 한 그런 의식을 키워온 것이다. 지금 햇수가 많이 지났지만 저는 제법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지구인으로서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젊은이 몇몇, 중국 젊은이 몇몇, 한국 젊은이 몇몇이 따로 있다면 모르는데 같이 있으면 새로운 뭔가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젊은이들이 함께 교류하고 섞이는 데에서 천황을 넘어서는 뭔가가 태어날 것이라고 본다. 국가는 전쟁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전쟁에 지지 않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국가에 자기 정체성을 둔다면 전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가 자연의 품속에 있는 것처럼 국가도 자연의 품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연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다. 자연이 없으면 국가같은 것은 있을리 만무하다. 대자연, 지구에 진짜 자기 정체성을 두는 것, 생명이라고 하는 기반 위에 사회를 두는 것, 그 의식 전환을 했을때 국가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지금부터 젊은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자랑을 하자면 지금 워크나인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보인다."
-농사 짓는 분들이 환경농업, 유기농업 하시는 분들이 어엽다고 하는데 유기농에 희망이 있는지 어떤 농사를 지으면 좋을지?
"저는 스물살 때부터 인도를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했다. 도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도 태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여행을 했다. 아이가 네살쯤이었다. 한번 또 인도를 갔다. 제가 병이 났다. 게다가 아이도 병이 났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가족을 데리고 인도를 가는 것은 아주 무모한 것이다. 인도에서 배운 삶의 방식대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취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교사가 되어볼까? 더 생각해보니 아마 석달도 못갈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운전수는 어떨까. 아마 그것도 세달을 못갈거야. 결국 저는 취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인도에서 확실히 배웠던 것들, 이것이 내 안에 있는 것을 펼쳐 나가는 그런 삶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취직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은 너무 어려웠다. 인도에서 일단 아내와 아이를 일본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프랑스로 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날 갑자기 빛이 내게 비쳤다. 그것이 뭐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누구도 취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생각해보니 벌레도, 나비도, 아무 동물들도 취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살아가는 것이다. 왜 인간만 취직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내가 지구에 산다면 살수 있겠구나. 자급자족을 하면되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기농이나 환경농을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게 아니고 취직을 하기 싫어서 여행을 접고 큐슈에 살기 시작했다. 농사짓는 것 정말 좋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진짜 잡념이 전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고 논 한마지기가 있었다. 농사 지으려면 땅도, 집도, 기술도 있어야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시작했다. 지금시대는 화전농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엔 빌린 땅에 야채를 심었다. 우선은 야채장사부터 시작했다. 벌써 30년 전이다. 유기농 야채를 기르고 자연의 물건을 만들어서 그것을 파는 작은 가게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현미라든지 이런 걸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현미로 밥을 짓고 유기농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만들었다. 가게는 마을 한가운데 있었고 농장은 산에 있었다. 집도 전부 손으로 지었고 아이 교육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 자급자족했다. 초등학교는 보냈는데 그 뒤로는 전부 집에서 했다. 처음엔 자급자족이 목적이엇기 때문에 유기농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농약을 어떻게 쓰는지 몰랄기 때문에 결국은 자연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차를 재배한다. 농장이 2.5헥타르 정도 된다. 그 이웃에 국유지이지만 우리가 나무를 심은 산이 6헥타르 정도 된다.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생활한다. 30년에 걸처 이런 농장 만들었지만 진짜 항상 즐거웠다. 물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그게 기쁨이었다. 그 안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차를 기르는 일은 겨울이 아주 여유가 많다. 그래서 제 생활은 4월에서 9월까지 농사가 중심이 되는 생활을 하고 10월에서 그 다음 4월까지는 완전히 여유가 있다. 겨울이 되면 해마다 인도를 갔다. 땅위에서 자급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지금까지 제가 가장 기뻤던 일은 나무를 심고 나서이다. 나무를 심는 일을 하고 나면서 제 인생이 진짜 변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참 즐겁지만 쌀이 되기도 하고 야채가 씩이 트기도 하고 참 즐겁지만 나무를 심는 일은 또다른 기쁨이 있다. 나무를 심으면 산도 바다도 다들 기뻐한다. 그 기쁨을 제가 진심으로 느낀다. 노래가 자연에서 내가 달려왔다. 한개 불러볼까요? 악기가 없어서... "하늘을 위해서 나무를 심자, 물고기를 위해 나무를 심자, 아이들을 위해서 산에 나무를 심자, 세상이 변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자, 우리는 숲에서 왔다. 우리는 숲의 자식들이다."
저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이면 제 가족과 친구들과 날마다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새들이 찾아오고 여우가 찾아온다. 섬세하게 들어보면 나무들이나 동물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느낀다. 자연속에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어쨌든 하루라도 빨리 서울을 떠나시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데서 우쭐할 때는 없었는지. 평화운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평화를 깨뜨린 적은 없는지?
"물론 저도 결함투성이다. 예를 들어 지금 제가 워크나인의 주례를 하고 있다. 이것은 상생과 평화를 기도하는 순례인 것이다. 이 순례를 통해서 저는 한걸음이라도 이기심에서 좀 벗어나는 것, 그것을 제 내면에선 가장 중심에 놓고 움직이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것을 하다보면 그걸 하고 있는 에고(자아)가 너무 커진다. 에고가 커지게 되면 결과만 찾게 된다. 뭐든지 결과 결과 하면서 성과만 찾게 된다. 지금 말씀 하신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인도에선 카르마 요가란 것이 있다.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다. 카르마와 요가는 별개의 것이다. 요가는 자기를 없애는, 비우는 일이다. 이 둘을 같이 하는 것을 카르마 요가라고 한다. 자기가 뭔가 일을 하는 것으로 그 결과를 신에게 전부 바치는 것, 그 카르마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 감수성이다. 이런 생각을 소중하게 간직하면 결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진다. 제가 정말 일하고 있는 장기를 두는 것이라고 본다. 장기의 말 하나하나는 승부에서 이겼다 졌다와 전혀 상관이 없다. 장기를 두는 것은 신이다. 저는 그 장기의 말처럼 누군가가 하고 있는, 움직이고 있는 존재다. 장기의 말이 내가 이겼다고 우쭐대거나 그걸 계속 날마다 되풀이 하면서 생각한다. 날마다 생각하지 않으면 밭에 잡초가 나오는 것처럼 금새 내 마음에 에고가 번성하게 된다. 카르마 요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사회활동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탐구를 해나가는 것, 그것을 동시에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 평화를 위한다고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다. 특히 이런 일이 참 중요한 일이다. 저도 날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면서 공책에 적고 있다."
-일본인, 한국인을 넘어서 지구인, 동아시아인이라고 하는 것 동의한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핵심이 남북간 평화라고 보는데 그에 대한 관점이 궁금하고,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활동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에서 평화의 가장 중심이 되는 화두다. 세계가 온통 전쟁중이다. 세계가 평화로 바뀌어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그것이 변할 수 있을까? 저는 그게 남북의 화해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그래서 38선이 없어지는 것, 그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위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 바로 일본 헌법 9조가 정말 중요해지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이 운동이 평화라고 하는 희망이, 평화를 위한 희망은 동아시아에 있다고 본다. 저는 처음 작년에 한국에 왔을때 여기 평화의 길이 있구나라고 확신했다. 지금 일본에서 헌법 9조를 남길까 없앨까 여론조사를 하면 반반으로 나온다. 우습게도 좌파신문이 해도 우파신문이 해도 다 반반으로 나온다. 또한가지 일본의 정치상황은 20년간 일본의 젊은이들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금 20~30대는 거의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투표를 한다면 5%는 잡는다. 5%가 있으니까 5%가 어디로 갈지, 헌법이 지켜질지 없어질지 좌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만 만나러 다닌다. 이 젊은이들의 힘으로 헌법 9조가 지켜진다면 그 젊은이들이 한국 젊은이들과 하나가 되어서 한국의 젊은이들 안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한국 젊은이와 일본 젊은이의 힘으로 남북 화해가 시작된다면,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중국 젊은이들의 힘으로 중국 젊은이들의 힘이, 저는 중국과 일본 젊은이들이 화해를 할거라고 본다. 그러면 지금 티베트가 있는데 거기가 평화로워진다. 티베트 사람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길 것이다. 달라이 라마도 티베트로 돌아갈 것이다. 그 꿈이다. 저는 한국에 와서 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저는 그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귀농해 30년간 열심히 일해오셨는데 한국도 귀농하려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못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를 대지만 대도시 문화에 비해 뒤떨어질 것이다, 교육도 서울이 더 개방적이다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매혹적이고 우월적인 도시 문화에 대한 선망 같은 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30년 전이었다. 제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게. 당시는 사람들이 저를 바보 취급했다. 진짜 어디가서 이상한 짓 하고 와서 여기서 농사짓는 것 아니냐면서 경찰이 보러오기도 했다. 근데 저는 지금 일본에선 인기가 많다. 일본 젊은이들이 일종의 롤모델처럼 되고 있다. 일본에선 10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시골로 향하고 있다. 진짜 도시를 떠나서 시골로 가고 있다. 평화로운 문화는 시골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모성적인 그런 것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로 그곳에 평화라고 하는 나무의 싹이 자라난다. 그냥 내버려둬도 서울에 등을 돌리고 떠날 것이다. 저는 작년 처음 한국에 와서 좀 놀란게 있다. 제가 만난 젊은이들이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젊은이들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10년전을 생각해보라. 10년 전엔 그런 젊은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새롭게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문화가 싹트고 있다. 도시 문명은 끝이나고 대자연에 뿌리를 내린 새로운 문화, 이미 싹이 트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주 큰 어머니가 우리를 시골로 시골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사모님이 농사짓는데 얼마나 협조적으로 잘 하셨는지? 사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달라.
"제 아내는 저보다 훨씬 더 농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귀농생활에 진짜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다. 시골에서의 생활이라는 건 엄마들이 훨씬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애들이 정말 건강해진다. 먹을 것만 하더라도 안전하고, 그 안전한 것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 역시 지금 젊은이들을 보면 여성들이 더 시골로 가고 싶어한다."
-순례를 하고 농사를 짓는 힘이 아내와 아이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이야기좀 부탁한다.
"이 이야기는 제 아내와 아이들이 와서 해야할 것인데. 진짜 저는 아내와 아이들과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진심으로 저는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 아내가 가장 기뻐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중학교 이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떻게 교육했는지?
"교육에 관해서도 그렇게 한 것이 잘한 것인지 모른다. 내 책임 속에서 내 행동을 정하는 것, 그것은 참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의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할 때는 정말 어려웠다.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므로. 실험이라기 보다는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였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때 교육주체로서 이대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진짜 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대안학교나 자율학교, 연구회 등을 만들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에서 그런 움직임이 별로 없었고 정말 시작이었으므로 같이 대안학교를 만드는 단계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홈스쿨링을 한거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5~6학년 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일본 헌법 9조는 제3자가 보기엔 평화헌법이 아니다. 지금 헌법으로도 전쟁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호전적이다. 우리나라처럼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는 자주국방을 하는 것이 평화헌법이 아닌가.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일본 헌법 9조는 실질적으로는 별로 힘이 없다. 붕괴돼 있다. 지금 헌법은 60년전 일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대 일본은 전쟁에 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쟁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 당시 힘이 없어서 포기하는 마음으로 전쟁하지 않겠다고 한것이 헌법 9조라고 한다면 지금 와서 전쟁을 할건가 말건가 결정하는 것인데, 젊은이들이 결정한다면 새롭게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평화헌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이길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젊은이들이 우리가 힘이 있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도 하고 하면서 그 다음에 평화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엉망진창이 된 헌법 9조를 지금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 새로운 문화가 중요한 것이다. 저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대단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30년전 1960년대 세계는 큰 물결이 일어났었다. 60년대였기 때문이다. 로큰롤이 있었고, 환경의식, 평화운동이 그때 태어났다. 세계 전체가 커다란 물결이 움직이기 시작한거다. 저는 일본에서 젊은이들의 힘으로 헌법 9조가 지켜난다면 새로운 물결이 아시아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강대국 입장에선 군대를 갖지 않는게 평화를 위해 중요하지만 약소국 입장에선 침탈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강대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군대를 갖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그래서 힘이 비슷해지는게 평화 아닌가.
"약한 나라가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저는 별로 대답을 할 수 없겠다. 그건 아주 큰 문제라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인간의 의식이 예를 들어 폭력과 비폭력은 같은 평면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의식상태에서 비폭력의 의식상태로 상승하는 것, 그게 비폭력인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고치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큰 나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무 이파리를 벌레가 먹는다. 양쪽에서 벌레가 경쟁하면서 잎을 먹는다. 우리는 이 벌레들이 먹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벌레들이 먹으면 나무가 죽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저는 차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벌레가 나와서는 차 잎을 먹는다.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 농약을 뿌린다. 근데 벌레는 어느정도 먹으면 그만 먹는다. 누에고치 상태로 넘어간다. 고치 다음에 나비가 된다. 나비는 이파리를 먹지 않는다. 꿀을 빨아먹는데 그럴 때는 전혀 위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벌레가 폭력적으로 나무를 파괴하는 것 같지만 변화가 생겨날 때는 그런 계절이 오면, 변화의 계절이 오면 잎을 먹던 벌레들이 나비가 된다. 저는 그 문화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벌레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꿈을 꾸면 그 꿈밖에 꾸지 못한다. 나비가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꿈을 꿀 수 있다. 새로운 문화가 일어나는 그 꿈을 저는 꾸고 있다."
-(청중을 향한 질문)"일본에서는 4년에 한번씩 지방의회 선거가 벌어진다. 다음 선거가 2011년에 있다. 지금 1000명의 젊은이들을 녹색후보로 세우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막으려는 운동은 개발이 되고 나서 막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불도저가 달려가고 우리가 따라가는 그런 형국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의회에 들어가서 의안들이 통과되기 전에 점검하고 반대운동을 시작하게 하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2년뒤엔 1000명, 4년 뒤엔 5000명, 10년 뒤엔 5만명 정도로 한다는 그런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을 보면서 강하게 드는 생각이 여러분도 걱정하고 있겠지만 자연파괴가 심각했다. 아주 열기가 높더라. 젊은이들에게 물어봤다. 지방의회 선거같은 곳에 당신이 나가서 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혹시 정치현장에 뛰어들어 해볼까 하는 생각 해본 적 있는지? 아마 2011년엔 1000명이 입후로를 할 것이다. 그 운동이 일본에도 한국에도 함께 일어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