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책과 사람

주한 미국 대사는 스티븐슨? 스티븐스?

지난 1년 반 동안 수요일은 '장날'이자 '대목'이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목이면 좋을텐데, 실은 일거리가 '대박'이 터지는 요일이다. 목요일 점심 이전까지 출판면을 마감해야 한다. 북리뷰 큰 것 하나, 어린이 책 리뷰 하나, 사진기자, 단신들을 마감해야 한다. 격주로 칼럼이 더해진다. 오래 전부터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내 후배는 나와 함께 출판도 같이 담당하는데 새벽까지 야근을 하지도, 투덜대지도 않고 연이어 다가오는 마감을 잘도 지키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여하튼 징징대면서 매주 수요일 새벽 퇴근을 해왔다.

따라서 수요일엔 개인 약속도 잡을 수 없고, 간담회 등도 되도록이면 가지 않는다. 출판사들도 이걸 잘 알기에 수요일엔 간담회를 잘 잡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주는 차질이 생겼다.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가 책을 냈다면서 수요일 오후에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겠다고 공지한 것이다.
 
평소 같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주한 미국 대사보다 하비브 하우스란 곳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무리인 줄 알면서 직접 가마고 했다. 경향신문은 정동에 있다. 하비브 하우스도 덕수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동에 있다. 1970년대 대사로 근무했던 미국 정치인 필립 하비브의 이름을 따서 하비브 하우스로 불린다.
 
정동길을 산책하다보면 이 하비브 하우스, 즉 미국 대사관저를 지나게 된다. 근데 무지하게 담이 높다. 부지는 무척 넓은데 높다란 담장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호기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정청래 전 의원이 대학생 시절 미국 대사를 만나겠다며 다른 운동권 동료들과 함께 이곳 담을 넘은 적이 있다던데 1880년대부터 사용돼 미국의 해외 공관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길다고 한다. 경복궁과 맞닿은 서울 요지 중에 요지에 성처럼 벽을 두르고 있는 미국 대사관저는 묘한 반발감과 동시에 호기심을 자아낸다.

당연히 서양식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옥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깔끔한 잔디밭과 나무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왜 나는 서양식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맨 앞의 건물은 1984년에 지어져 공사관으로 사용되다가 리모델링 후 게스트 하우스로 상용되고 있다고 한다. 간담회가 열린 건물은 두번째 있는 건물이었는데 역시 한옥 스타일이었다. 아늑한 느낌이었다. 해가 짧아져 어둠이 일찍 찾아온 바람에 정원 풍경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외교관들이야 워낙 친근하게 말을 잘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므로 간담회는 무리 없이 잘 끝났다. 책을 간담회 장소에서 받느라 책 내용 자체에 관한 질문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처럼 간담회 장소에서 책을 받는 간담회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하튼 간담회를 마치고 와서 기사를 마감했는데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주한 미국 대사의 이름은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이다. 캐서린은 많이 들어봤지만 '캐슬린'이란 이름은 내 귀엔 그리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어 이름 '심은경'까지 등장한다. '캐서린'이 아니라 '캐슬린'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이 그만 '스티븐스'를 '스티븐슨'이라고 쓰고 말았다. 한 7~8군데 된다. 죄다 스티븐슨이라고 썼다. 성을 바꿔치기 해버린 것이다.

이건 뭐 전임 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처럼 철자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의 성은 'Vershbow'이다. 그가 부임한 초기에 언론들은 버슈보, 브시바오, 버시바우 등 제각각 썼었다. 그래서 대사관측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브시바오'로 써달라고 언론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교부 기자들과 미국 대사관은 난데 없는 발음법 논쟁을 벌였고 결국은 버시바우로 낙찰됐다. 근데 스티븐스는 어려운 철자도 아니다. 100% 내 잘못이다.

문제는 이걸 발견한 시각이 새벽 2시였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 기사에선 수정을 했지만 인쇄되는 신문에선 수정할 방법이 없었다. 헌데 재미있는 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니 스티븐슨으로 잘못 적은 기사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요즘 크고 작은 오탈자가 많이 난다. '오탈자는 읽는 이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라는 애교 섞인 변명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이다.

“블로그 댓글 달면서 한국어 실력 늘었어요”
-에세이집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 낸 캐슬린 스티븐스 美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57)는 2008년 9월 부임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미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주한 미국 대사가 관심을 끌지 않은 경우는 없었지만 스티븐스 대사에게 쏠린 관심은 인간적인 차원까지 이어졌다. ‘최초의 여성 주한 미국 대사’이자,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미국인’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앞서 근무한 미 대사들보다 훨씬 폭넓게 한국인들을 만나고 있기도 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한국인들의 호기심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가 책을 펴냈다. 제목은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중앙북스). 주한 미 대사관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Cafe USA’와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란 제목으로 개설된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출판사의 권유로 갈무리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17일 저녁 자신의 책 출간을 맞아 서울 정동의 유서 깊은 미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한옥 양식으로 지어져 지붕의 서까래와 들보가 훤히 보이는 접견실에 들어서면서 “안녕하십니까. 환영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는데 많이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한국어로 쾌활하게 인사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먼저 “사실 한국을 떠나면서 (심은경이란)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제가 대사로 부임했을 때 기자들이 찾아내서 돌려줬다”고 말했다. 심은경이라는 한국명은 그가 1975~77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머물 때 얻은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부임 이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블로그에 글을 올려왔다. 그는 “아직 한글 타이핑을 잘 못하고 철자법도 약하다”며 “영어로 쓰고 대사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번역해 올린다”고 말했다. “댓글도 일일이 다 읽습니다. 덕분에 한국어 읽기 실력이 많이 향상됐죠.”

글의 소재는 다양하다. 그는 자전거광이자 여행광이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야외로 나가거나 등산, 여행을 한다. 자전거를 타고 한국전쟁 격전지들을 답사하기도 했다.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 느낀 감정, 찍은 사진들이 글감이 된다. 얼마 전 전남 담양, 증도 등을 다녀와서는 ‘가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지방선거와 천안함 사건, 광복절, 산악인 박영석과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 등 한국인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거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들에 대한 단상들도 빠지지 않는다. “블로그에 글쓰는 것이 일상이 되고 난 이후 대사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글을 쓰려 합니다. 한국의 오랜 친구로서 한국에 중요한 순간이 있을 때 소감을 많이 올리는 것이죠.”

그는 지난달 미국 외교관으로는 두번째로 높은 직급인 ‘경력공사’로 승진했다. 대사로서 운이 좋아서일까,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과시하는 그의 능력이 발휘된 때문일까. “부임할 때 한·미관계를 다음 단계로 격상시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 몇가지 성과가 있었지만 한·미관계를 최고 전성기로 끌어올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