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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우리말 풀이·사전 <도사리와 말모이…> 낸 장승욱씨

장승욱 선생은 따지자면 언론계 선배이기도 한데 둥글둥글한 인상이었지만 감수성 예민한 꼼꼼한 성격일 것이라는 느김을 주었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서교동 쪽으로 출근을 하기 때문에 청기와 예식장 맞은편 북카페 '잔디와 소나무'에서 만나자고 하길래 뭔가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였다. 이 분은 커뮤니케이션북스의 한 브랜드인 '지식을 만드는 지식'의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었다.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아 간신히 인터뷰를 마친 느낌.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신다. 술 약속은 자꾸 쌓여만 간다.

“어휘·표현 갈수록 단순화… 생각이 빈곤해져요”


“우리말 공부요? 김주영의 <객주>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전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뭘까? 무척 꼼꼼한 성격이리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순우리말 또는 토박이말로 불리는 우리말 풀이와 사전을 겸한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하늘연못)을 쓴 장승욱씨(49·사진)는 ‘성격이 꼼꼼하다는 얘길 듣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이 저더러 ‘꼼꼼하다’고 할 때 그 앞에 ‘무지하게’라는 단어를 꼭 덧붙이더군요.”

장씨의 책은 제목부터 설명이 필요하다. ‘도사리’는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말모이’는 ‘사전(辭典)’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 어휘 2만5000여개를 모아 설명했으니 맞춤한 제목이다. 장씨는 이를 위해 남북한에서 나온 여러 사전을 참고했고 사전에 나오지 않은 말들을 무수히 발굴했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간지와 방송국 기자를 거쳐 지금은 출판사 편집주간으로 일하는 장씨가 우리말에 매달린 것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까지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뭘할까 고민하다가 이 작업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6개월간 도서관에서 집중적으로 어휘를 공부했죠. 그 뒤로 계속 깁고 가다듬고 있는 거죠.” 그간 우리말을 이러저러하게 모아서 책을 낸 게 10권 가까이 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셔온 술 이야기를 모아 <술통>이라는 에세이집을 낸 애주가이기도 하다.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 - 10점
장승욱 지음/하늘연못

우리말 사전을 만든 사람이니 일상에서도 우리말을 고집할까 궁금했다. 예를 들어 그는 책에서 한자말인 ‘내일(來日)’의 우리말이 ‘올제’라고 했는데 평소 말할 때 내일 대신 올제라는 말을 쓰는지 말이다. “입말로 쓰려고 노력은 하죠. 그런데 말이란 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므로 적당한 선을 지켜야죠.” 글을 쓸 때도 우리말 한두개는 의식적으로 넣지만 굳이 우리말만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요즘 우리가 쓰는 말에 대한 걱정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장씨는 “어휘와 표현들이 너무 단순해지는 것 같다”면서 “어휘는 생각을 하기 위한 자료인데 어휘력이 빈곤해진다는 것은 생각이 빈곤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손을 예로 들어볼까요? 손만해도 손아귀, 손등, 손바닥, 손뼉 등 손의 각 부위와 모양을 표현하기 위한 많은 어휘들이 있어요. 이런 표현들을 알고 있다면 생각을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몸에 관한 우리말을 모은 책을 준비 중인 장씨는 우리말 사용에 대해 유연한 편이다. “우리말이 이렇게 좋으니까 한번 봐라, 그리고 가능하면 좀 써봐라 이런 겁니다. 우리말 사용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 신문·방송의 역할은 중요한 것 같아요. 나들목, 둔치, 갓길 같은 말은 전엔 안 썼는데 방송에서 쓰니까 사람들도 쓰잖아요.” (20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