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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흐름]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일기몰이 이유는?

장하준 교수가 몇주 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국내에 출간한 것을 계기로 기자간담회를 했을 때 당연히 가 봐야 했으나 다른 취재 일정이 있어 가지 못했다. 후배를 대신 가서 기사를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읽어본 장 교수의 책은 정승일씨와 공저로 펴낸 <쾌도난마 한국경제>가 다 였던 것 같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국방부 불온도서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지만 읽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나쁜 사마리아인>과 취지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놀란 가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보고 놀라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처음 봤을 때 참 잘 쓰인 책이구나 싶었는데 한순간에 그야말로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는 책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봤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내가 서평을 쓰지 않았기에 아직 절반 가량 밖에 읽지 못했다. 시내버스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보고 있는데 몇가지 감탄을 자아내는 책이다.

가장 먼저 얘기할 것은 무지 쉽다는 점이다. 문장이 평이해 역설적으로 지루할 정도다. 매일 일간지에 실리는 칼럼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좀 긴 칼럼이라고 보면 된다. 흔들리는 시내버스 안에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읽어도 내용이 파악된다. 이처럼 쉬운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내용은 매우 짜임새가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 책을 보고 '출판 편집자의 승리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편집자가 정교하게 구상한 틀거리에 맞춰 장 교수가 원고를 쓴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었다. 문장이 평이하고 구성이 짜임새 있어서 그렇지 내용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개발도상국에서 발전의 문제 등 장 교수가 전부터 해오던 얘기들은 당연히 포함돼 있지만 우리가 경제상식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조목조목 깨뜨리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부분들 가운데서는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것과 지식정보산업화라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 등이 눈에 띈다.

크게 봤을 때 이 책은 두가지 용도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일반 대중들의 경제지식을 높여주는 교양서로 읽힐 수 있다.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으나 웬만한 경제원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다 들어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하준 교수의 뼈 있는 해설은 체계있게 경제원리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전문가들은 논쟁적으로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장 교수가 비판하는 우파 경제학자들은 물론이요, 좌파 경제학자들도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 논평하고 논쟁할 거리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장 교수와 함께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썼던 정승일씨는 프레시안에 실린 서평에서 '386 좌파'와 장 교수와의 논쟁점을 정리해 뒀다. 이래저래 이 책이 잘 나갈 계기는 많다.

2010년이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출판계는 올해 법정 스님의 책들로 와글거리다가, <삼성을 생각한다>로 술렁댔으며,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될 것 같다.

장하준 새책이 날개 돋친 이유 “시장만능에 지쳤으니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10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시장만능·부자감세 등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알기 쉬운 논리로 비판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이…>는 인문서로는 8년 만에 처음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며 큰 화제를 낳았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뒤를 이어 연말 서점가를 대표하는 책으로 올라섰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들이…>의 초반 판매 속도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빠르다. <그들이…>는 지난달 29일 출간돼 30일부터 서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판매 시작 5일 만인 지난 3일 교보문고·예스24·인터파크·알라딘 등 대형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부키출판사에 따르면 <그들이…>는 15일 현재 7만5000여부(출고기준)가 팔렸다. 하루 평균 5000여권씩 팔려나간 것이다. <정의…>는 지난 5월 발간돼 한 달 반 만에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른 뒤 12주 동안(누적) 종합 1위를 지키며 60만부가량 팔렸다. <그들이…>의 초기 구매 독자층은 30~40대가 65~70%이며, 성별로는 남성이 70%를 차지한다. 부키는 “20~30대 여성 독자층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통념”이라며 “30~40대 남성 주도로 1위에 올랐다는 것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선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들이…>에서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 우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례로 장 교수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스며든다는 ‘트리클 다운’ 원리는 허상에 불과하다면서 ‘펌프 이론’을 제안했다. 부가 위에서 아래로 물방울처럼 떨어질 것을 기다리기보다 복지국가라는 펌프를 통해 콸콸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탈산업사회는 신화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능사는 아니다’ 등 보통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경제 상식을 허무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들이…>의 어조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직설적이지만 경제판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견될 수 있다. <정의…>를 읽으며 정치·사회분야 ‘정의’의 문제를 고민했던 한국의 독자들은 이제 <그들이…>를 통해 경제분야의 정의를 탐구하고 있는 셈이다. 때마침 정치권에서 부자감세 논란이 벌어지면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모순을 비판한 인문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모순이 팽배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권우 안양대 교수는 “<정의…>나 <그들이…>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인문학적·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부자감세만 예를 들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랜 역사와 논리가 깔려 있다”면서 “이런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고민과 성찰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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