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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동화책 보는 아빠

[어린이책 리뷰]무릎딱지

출판사 분이 이 책을 들고 찾아왔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이 책을 건네받았다. 출판사 분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이 책의 표지를 넘겼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휘리릭 페이지를 빨리 넘겼다. 눈동자에 습기가 차는 것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좀 딴 얘기지만 책을 들고 와서 소개를 하다가 눈물을 찔끔한 분이 한분 있었다. <곤충의 밥상>이라는 책을 낸 상상의 숲 출판사 대표였는데 그 책의 원고가 너무나 감동스럽다고, 처음 원고를 받아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면서 그 당시가 다시 떠올랐는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하튼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게 그리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 문화에서, 어린이 책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다행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눈치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어린이 책을 많이 보게 되면서 놀란 것은 소재의 다양성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생기 발랄하고, 엉뚱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얘기들이 어린이 책의 단골 소재이지만 이혼, 사별, 장애, 빈곤, 폭력 등 어두운 소재를 정면에서 다루는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소재를 다룬 국내 어린이책은 좀 불만스럽다. 대체로 진부한 구도이거나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많이 봤길래 함부로 폄하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것은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물은 다 만족스럽다는 것도 아니다.

<무릎딱지>는 엄마의 죽음이 소재다. 소재 자체가 아이에겐 충격적일 수 있고, 자칫하면 이야기가 신파로 흐를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눈물을 글썽이게 할 지언정, 통곡하지는 않게 한다'고 표현해야 할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긴장감을 잘 조절하고 있다.
 
나한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엄마. 나도 아빠도 괜찮은 척 하지만 집안엔 무거운 공기만 흐른다. 시간이 흐르며 내 몸에서, 집안에서 엄마의 향기가 희미해진다. 그래서 문을 꼭꼭 닫아걸었더니 아빠는 덥다고 야단이다. 바보 아빠. 마당을 달리다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났다. 무릎에 빨간 피가 흐르니까 엄마가 나타나 나를 안아준다. 그래서 나는 딱지가 앉으면 일부러 딱지를 떼서 피가 나게 한다.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 할머니가 왔다. 할머니는 닫힌 창문을 모두 열고 먹을 것을 준다. 할머니는 엄마가 내 가슴 가운데 오목한 곳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어느새 딱지가 떨어졌지만 피는 나지 않는다. 그래, 엄마는 항상 나와 함께 있다.

때론 그림책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그림도 감동적이다. 붉은색과 옅은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만으로 그림을 이어가는데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이 스토리를 보며 일렁이기 시작한 마음이 기어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그림들인데 아직도 눈가에 어른거린다. 이런 그림책을 보고 나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런데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내 아이에겐 아직 이 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꼬맹이 녀석에겐 아직 버거운 책이라는 생각에서다. 출판사에선 10세 이상에게 읽히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엄마가 죽었다. 무릎에 빨간 딱지를 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무릎딱지 - 10점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한울림어린이(한울림)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나는 엄마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엄마 냄새는 자꾸 사라진다. 나는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집 안의 창문들을 꼭꼭 닫았다. 아빠는 투덜댔다. 지금은 여름이고,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어제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 상처가 나서 아팠다. 아픈 건 싫었지만 엄마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래서 아파도 좋았다. 나는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 끝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다시 상처가 생겨서 피가 또 나오게. 피가 흐르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빨간색 표지를 넘기자마자 뭔가가 ‘쿵’하고 가슴을 때린다. 엄마가 죽었다니? 농담을 하는 건가? 이어지는 말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체 어린이 그림책이 이렇게 시작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그림책은 엄마의 죽음을 아이가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아이는 분노하고 부정하다가, 혼자만의 공상 속에 엄마를 잡아두려고 집착한다. 결국 할머니의 도움으로 엄마는 항상 내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상처는 치유된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분명 어린이가 두려워하거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눈물은 글썽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주를 이룬 그림 역시 강렬하고 자극적이라기보다는 평온하고 따뜻하다. (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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