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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김성룡 교보문고 대표

한권의 책이 지은이의 머리속에서부터 독자의 손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손길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교보문고는 역사가 깊기 때문에 출판사나 독서가들이나 크고 작은 추억들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서점이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었든 나쁜 기억이었든 말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장을 하기도 했고, 교보문고가 창립 30주년을 맞기도 해서 겸사겸사 인터뷰를 했다. 참고로 교보문고는 1980년 12월24일 창립됐고, 본점인 광화문점이 개장한 것은 이듬해인 1981년 6월1일이라고 한다. 인터뷰 기사에도 나오지만 교보가 축적한 지난 30년 동안의 책 관련 데이터가 개인적으로는 탐이 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교보문고 베스트목록 30년치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해서 책으로 나올 예정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 재미난 '거리'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겠지만.


“책 구매자 정보·반응 출판사에 실시간 제공”
-창립 30주년 맞은 교보문고 김성룡 대표


서울 강북의 중심지인 광화문 네거리에는 볼거리가 많다. 광화문 네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교보생명 빌딩에 주기적으로 내걸리는 표어도 그중 하나다. 리노베이션을 하느라 넉달간 문을 닫았다가 지난달 27일 다시 문을 연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새로운 표어가 걸렸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의 명언을 가져다 각색했다고 하는데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교보문고의 자부심이 은근히 드러난다. 창립 멤버로 입사해 지난 2008년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줄곧 출판 유통의 최일선에 서 있었던 김성룡 교보문고 대표(56)를 만났다.

책 읽는 사람치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얽힌 추억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뀐 광화문점 내부에서 느껴지는 생경함은 크다. 김 대표는 “92년 리노베이션 했을 때도 한쪽에선 서점이 서점 같아야 하는데 너무 모던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아쉽다고 하시는 분들일수록 더 사랑이 많은 분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뀐 교보 광화문점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구서재’(九書齋)와 ‘삼환재’(三患齋) 등 상설 추천도서 코너다. 과거 방식인 베스트셀러 위주의 전시 외에 책 많이 읽기로 유명한 명사들이 주제에 따라 추천한 책들을 따로 모아 전시하는 코너가 대폭 강화된 것이다. 추천된 책들을 살펴보면 신간·구간을 따지지 않고, 판매기록에도 별로 구애받지 않은 느낌이다. 김 대표는 “이미 서울 강남점이나 영등포점에서 소위 말하는 ‘맥락적 책읽기’를 권장하는 시도들을 해왔다”면서 “교보문고가 확보한 ‘북 멘토’ 100여명이 번갈아가면서 주제에 따라 추천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창립 30주년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어떤 책이 얼마나 만들어졌고, 어떤 책이 많이 읽혔는지 등에 대한 방대하고도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쌓였다는 데 있다. 대형서점은 이처럼 체계적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필수적이다. 수백만종에 달하는 책의 재고를 적절히 유지하고, 주문에 재빨리 대응하려면 당연하다. 김 대표는 “30년간 비축된 데이터베이스를 ‘롱테일’(판매량이 적지만 오랫동안 팔리며 수익을 내게 하는 다양한 물품) 개념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말했다.

교보는 현재 자신들이 운영 중인 유통시스템을 대폭 정비해 내년 초쯤 출판사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교보문고를 거쳐가는 책들의 거대한 흐름을 외부에서도 샅샅이 지켜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교보에 책 판매를 위탁한 출판사 등이 자사 책의 판매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운영되고는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어떤 책들이, 어떤 분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를 리얼 타임으로 출판 관계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공유하려는 것”이라며 “독자를 찾고 접근하는 노력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협업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2010년 한국 출판계 최대 화두는 전자책이었다. 오래전부터 전자책 콘텐츠 확보에 매진해온 교보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전용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았다. 시장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은 편이다. 김 대표는 “전자책은 아직도 준비단계고 초기 진입단계”라며 여유 있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채워서 볼 수 있는 콘텐츠와 새롭게 편리해진 단말기가 만난 것이 201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10년을 뜨겁게 달궜던 전자책 논의는 어찌 보면 기계(단말기)에 관한 것이었지 책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기도 하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누가 수확할 것인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유통사는 유통사대로 책의 외연을 넓혀가기 위한 각자의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서점 사장이니 당연할지 모르지만 김 대표의 집무실 책상 위엔 수십권의 책이 어지러이 쌓여 있다. 평균 4~5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고 한다. 그 자신이 ‘책 장사’이기에 앞서 ‘책벌레’인 셈이다. 딸 둘을 뒀다는데 자녀들은 어떨까? “책 보라고 한 번도 말한 적 없어요. 보는 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한 적도 없고요. 다만 제가 책을 읽는 모습을 항상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더군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참 좋은 유산을 물려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