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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트렌드]인문서 ‘정의란 무엇인가’ 기염

신간을 검토한지 1년이 넘었다. 아직 베스트셀러를 점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지만-사실 이 경지에 오르는게 쉬운건 아니다-대략 해당 출판사에서 미는 책,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올라올 만한 책 정도는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출판면을 꾸밀 때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서점 메인에 올라가는 책이라고 나쁜 책은 아니겠지만, 반대로 꼭 좋은 책이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알아서 살아나갈 책보다는 '어포머티브 액션' 차원에서 인기가 좀 떨어지겠지만 의미가 있는 책들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시장 반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책은, 이런 표현은 좀 뭣하지만 당의정 같은 게 씌워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눈길과 손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선전에 대해 나름 책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도 놀라고 있다. 괜찮은 책이고,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나갈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대체로 의견을 들어보니 이 정부의 역할이 큰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정의'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인문서적을 몇년만에 베스트 1위에 올려주셨으니 참 고마우신 분들이라고 해야할까?

-인문서로는 8년만에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불의'한 사회적 현실 반영 20대·여성들에 어필
정의란 무엇인가 - 10점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

출판계에서 2000년대 들어 소설과 자기계발서가 주름을 잡아온 베스트셀러 목록에 정치철학 분야의 인문서가 종합 1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인문서가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8년 만이며, 철학서로는 10년 만의 일이다. 특히 책이 가장 안 팔린다는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어서 놀라움을 더한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대형서점들은 지난 8일 번역서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지난 1주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이었다고 각각 발표했다. 전국 10개 대형서점의 판매현황을 집계한 한국출판인회의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경숙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지난 30년간 베스트셀러 집계를 해온 교보문고를 기준으로 보면 인문서가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2002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 이래 처음이다. 철학서가 1위에 오른 것은 2000년 김용옥이 쓴 <노자와 21세기 2>가 마지막이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실제 강의를 단행본으로 엮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5월말 출간됐다. 출고기준으로 13만부가 제작돼 11만부가 판매됐다. 이 책을 출판한 김영사는 “이번주 들어 매일 1만부가량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문서의 주요 독자층이 30~40대 남성인데 비해 <정의란 무엇인가>는 20대와 여성 독자층이 두터운 것도 특징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선전은 ‘정의’라는 키워드가 민감하게 다가오는 사회 분위기, 미국 최고의 명문이라는 하버드대가 부여한 권위, 어려운 주제를 예화를 들어가면 풀어나간 저자의 글솜씨,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 등이 어우러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단 <정의란 무엇인가>는 출간 당시 경향신문을 비롯해 일간지 북섹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김영사는 샌델 교수의 실제 강의 모습을 5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든 뒤 노트북 컴퓨터에 담아 대학 구내 서점들을 비롯한 지역 거점 서점 50여곳에 설치, 홍보활동을 펼쳤다. 우석훈 박사, 금태섭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 김민웅 교수 등이 참여한 대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책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도서’, 삼성경제연구소의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14선’에 오른 것도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제목의 책이 주목을 받은 것은 역설적으로 ‘부정의’ 혹은 ‘불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국가적·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출판계 내외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철학 전공 대학 교수는 “예화가 풍부하게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쉽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라면서 “그럼에도 이 책이 많이 팔린다는 것은 ‘인저스티스(불의)’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블로그에 인문서 서평을 꾸준히 쓰고 있는 이현우씨도 같은 분석을 내놨다. 이씨는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에 있는 ‘정의’라는 키워드 자체가 우리 사회의 화두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민주주의가 화두였다면, 이제 형식적 민주주의로 충분한 게 아니고 뭔가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겨났는데 여기서 ‘정의’라는 말이 크게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01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