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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프리딕셔니어

미국의 대학 교수들 가운데는 희한한 이름이 많다. 애덤 쉐보르스키라고 들어보셨는가? 뉴욕대인가, 소속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민주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미국 대학의 정치학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고 구성된 나라이고, 특히나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면 미국 대학에 자리를 잡다보니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가면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각자 모국어 발음이 배어있는 영어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재미난 광경이 연출된다는 우스개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이 이름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과거 대학원을 다닐 때 사회과학 방법론, 상호확증파괴이론 등등을 다루는 책의 각주에서 이 양반의 이름을 봤던 것 같다. 워낙 포스가 있는 이름이다보니 까먹어지지도 않는다. 이번에 책이 한권 번역됐는데 찾아보니 처음 번역되는 것이다. 2007년 한국 정부가 주는 DMZ평화상을 받기도 했다는데 좀 의외다. 이 책에 대한 평은 기사에서 가감 없이 담았다.

“北에 정권유지비 10억달러 주면 핵문제 해결”
-저자 30년간 게임이론 통해 미래예측 적중률 90% 보여
-“현실의 게임구조 변화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주장
-국제정치 분석 명쾌하지만 추론과정 간략, 독자들 ‘갸웃’
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 - 10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지음, 김병화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 <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원제 The Predictioneer’s Game)의 지은이에게 붙은 별명이란다. 이런 별명으로 불렸던, 하지만 사기꾼 혹은 몽상가로 판명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지은이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사진)는 학력과 경력을 감안하면 단칼에 사기꾼 리스트에 올리기엔 좀 그렇다.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석좌교수로서 미국 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통계 분석으로 유명하다. 그의 여러 논문들이 국제정치학 논문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는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DMZ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정통파 학자인 셈이다. 그런데 근엄하신 교수님이 웬 노스트라다무스냐고?
그는 지난 30년간 중동 문제, 북한 문제 등 국제정치 문제에서부터 각국의 선거결과, 톈안먼 사태, 엔론의 대규모 회계부정,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파업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건의 예측을 내놓았고 90%의 적중률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자’를 뜻하는 신조어 ‘프리딕셔니어(predictioneer)’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말 그렇게 미래를 잘 예측했는가와 어떻게 그렇게 했는가가 될 것이다. 첫번째 문제와 관련해 그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국방부 등 정부기관은 물론이요, 민간 의뢰인들에게도 예측 ‘서비스’를 해왔는데 열에 아홉을 맞췄다고 말한다. 비밀이 해제된 CIA 문서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일단 그렇다고 치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를 ‘신 노스트라다무스’로 소개한 미국 언론기사에 소개된 사진. 수학식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다음은 ‘어떻게’다. 그의 예측 방식은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누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라는 주제가 주어진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후계자 문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 선호도, 영향력 등을 조사한다.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감안해 모델링을 한 다음 조사된 정보들을 수치로 환산해 컴퓨터에 입력한다.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의 핵심은 확률과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것을 선택할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선택의 상호작용과 결과를 계산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지은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핵무기를 개발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목적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어 김 위원장이 권력을 보장받는다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가설을 도출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미국과 중국 등이 불가침을 보장하고 김 위원장에게 정권 유지비용조로 연간 10억달러만 제공하면 더 이상 문제가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최근 벌어진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도로 계산된 북한의 도발이며,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도발 이후 한국 정부와 주변국, 북한 내 권력층의 반응을 보면서 판세를 점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는 중동문제에 대해서도 나름 명쾌한 예측과 조언을 내놓는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이라크와 이란은 동반자 관계가 되고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을 5만명 정도 남겨두면 미국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분석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추론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이 간략하게만 소개돼 있어 독자로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매우 복잡할 것이므로 제시한다 한들 머리가 아플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모델과 수치화에 관한 설명에 좀 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결국 지은이의 예측력이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선택을 예측할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게임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이고, 이 구조를 변화시켜 미래를 새롭게 기획할 수 있음을 뜻한다. 지은이는 이를 명백히 염두에 두고 있다. 해묵은 국제분쟁, 지구온난화, 국내정치적 갈등 사안 등을 둘러싼 인센티브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이에 맞게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변화를 주려는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등 행동경제학 계열의 책들이 한 것을 정치학 분야에 적용한 것으로 보면 된다. 요는 편견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때론 불편하고 역겹더라도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현실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백한 현실주의’에 기초한 차가운 대응을 주문하는 것인데 미국의 전략가가 썼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매우 미국적인 냄새를 풍긴다. (2010.7.21)

**이 책의 느낌이 잘 오지 않아 아마존 서평을 좀 찾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금융분석가라는 사람이 신랄한 비평을 올려두었다. 재밌는 건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가 직접 이 글에 댓글을 달아 해명했다는거다. 서평을 할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건데..

**히스토리 채널에서 신 노스트라다무스란 제목으로 방영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