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남자)의 사고방식이 자신(여자)의 사고방식과 너무 다르다며 요즘들어 부쩍 혀를 내두르고 있는 처가 이 기사를 어떻게 볼까 조심스럽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다. 토요일자에 실렸는데 일요일 밤 막걸리를 마시면서였나? 처가 한마디 했다. "남자들은 정말 다른가봐. 당신 저 기사 보면 남자들은 로망이라고 하는데 집에 있는 여자들은 얼마나 속터지겠어." 그렇겠지. 하지만 저렇게 떠날 수 있는 사내들은 별로 없다. 뭇 사내들도 속터지긴 마찬가지다.
2008년 12월, 서울 인사동의 선술집 구석방.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이 함께 야영과 등산을 즐기는 멤버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다가 한마디 던진다.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땅을 벗어나서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히말라야의 사나이 박영석이 냉큼 거들고 나선다.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사실 박영석이 맞장구를 치지 않았어도 허영만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사내들의 머릿속엔 바람을 받아 터질 듯 돛이 부풀어오른 요트가 푸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광경이 그려졌을 것이다.
‘낯선 야생’에서 철부지 중년들의 ‘1박2일’
ㆍ‘남자의 로망’ 요트 타고 떠날까?
ㆍ남성 14명 ‘집단가출’ 의기투합… 서해∼남해∼동해 바닷길 일주
ㆍ배멀미에 굶고 잠도 못 자고… “고생도 재미” 감동의 파노라마
ㆍ‘남자의 로망’ 요트 타고 떠날까?
ㆍ남성 14명 ‘집단가출’ 의기투합… 서해∼남해∼동해 바닷길 일주
ㆍ배멀미에 굶고 잠도 못 자고… “고생도 재미” 감동의 파노라마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허영만.송철웅 지음/가디언 |
2008년 12월, 서울 인사동의 선술집 구석방.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이 함께 야영과 등산을 즐기는 멤버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다가 한마디 던진다.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땅을 벗어나서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히말라야의 사나이 박영석이 냉큼 거들고 나선다.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사실 박영석이 맞장구를 치지 않았어도 허영만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사내들의 머릿속엔 바람을 받아 터질 듯 돛이 부풀어오른 요트가 푸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광경이 그려졌을 것이다.
중년 남자 14명의 집단가출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모든 사건은 술자리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철부지라고 했던가? 맞다. 그런데 슬픈 건 나이들어선 철부지처럼 행동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랬다간 손가락질 받거나 심할 경우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제대로’ 철부지들이다. 만화가, 산악인을 비롯해 고층빌딩 유리창닦이, 보험사 영업사원, 건설현장 반장, 치과의사, 목수, 사진작가, 고무공장 사장 등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돛단배, 즉 요트는 처음 타보는 초짜라는 점에선 같았다. 오랜 산행경험으로 체력과 우정이 다져진 사람들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들은 15년 된 낡은 요트를 장만, ‘집단가출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빌리자면 ‘ㅋㅋㅋ’이다.
집단가출호는 2009년 6월5~7일 경기 전곡항을 떠나 굴업도를 거쳐 다시 전곡항으로 돌아오는 1차 항해를 한 이래 2010년 5월까지 매달 한 번씩, 한 번에 2박3일 동안 12번에 걸쳐 항해를 했다. 서해에서 출발해 남해와 제주도를 거쳐 동해로 북상, 속초를 찍고 울릉도와 독도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한반도 남쪽 바다를 여러 구간으로 나눠 해안선을 따라 순례한 것이다.
요트는 ‘귀족 스포츠’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사실 정교한 기술과 팀워크, 강인한 체력과 빠른 판단력 등을 요하는 극한(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깝다. 그럼에도 또는 그렇기 때문에 요트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사나이들의 세계’ 운운하는 말과 요트는 잘 어울리는 짝이다. 더구나 요트 하면 비키니 차림의 미녀가 떠오르는 것은 남자들 머릿속에 박힌 회로의 자연스러운 작용이다.
그러나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법. 드넓은 바다, 상쾌한 바람, 비경을 간직한 섬, 낚시로 직접 건져올린 싱싱한 먹거리,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달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이들은 밤마다 모기떼의 습격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물어뜯겨야 했고, 날이 좋으면 뙤약볕 아래에서 통구이가 됐으며, 날이 궂으면 바람과 비와 파도에 젖어 동태가 되기 일쑤였다.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게 또 있으니 바로 멀미다. 8000m가 넘는 산들을 화장실 드나들 듯했던 박영석조차 배멀미를 피해가지 못했다.
철부지들의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난 말야, 요트 타면 와인도 우아하게 마시고 편안하게 책도 읽을 수 있고, 뭐 그럴 줄 알았어. 근데 이거 갈수록 개고생이네? 굶고, 젖고, 잠 못 자고….”(허영만) “우리가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줄 남들이 알까? 다들 무슨 크루즈 여행인 걸로 생각하더라고.”(정상욱) “저는 요트 사면 예쁜 여자는 덤으로 따라오는 줄 알았어요. 잡지에 나온 요트 사진 보면 다 그렇던데… 흐흐.”(이진원) 이 대목에서 누군가가 태연하게 말한다. “항해는 생고생이 재미지~. 집 나오면 개고생인 거 이번에 처음 알았냐?” 다시 한번 ‘ㅋㅋㅋ’다.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오는 장면은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데 ‘감동의 파노라마’다. 거센 폭풍우를 뚫고 해냈다는 이들의 성취감과 동료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의 것처럼 느껴진다. 생뚱맞은 얘기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방송 프로그램 <1박2일>의 인기가 왜 식지 않는지 깨달았다. 1박2일은 시커먼 남자들이 ‘야생’으로 달려가 철부지 짓들을 벌이는 내용 아니던가.
말하자면 이 책은 ‘평범한’ 중년 남자들이 벌이는 ‘1박2일’이다. 포복절도할 상황을 시치미 떼고 덤덤하게 써 내려간 글쓴이의 솜씨가 미소를 짓게 하고, 역시 무덤덤한 듯 그려진 허영만의 삽화들이 급기야 ‘킥킥’, ‘큭큭’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사진작가 이정식의 사진이 수려하지만 ‘비키니 미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20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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