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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동화책 보는 아빠

[리뷰]토끼가 그랬어

어린이 책 출판계에서 하는 얘기가 있다. 작가가 소개가 고갈되면 눈을 돌리는 것이 동물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 얘기가 있는데 소재와 영감이 고갈된 감독이 택하는 것이 바로 섹스와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의인화 한 어린이 책이 다 소재가 고갈된 작가의 작품이라고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깔끔하면서도 익살스런 표정을 살린 그림과 절제된 지문이 돋보였다. 리뷰를 쓰다보니 지난해에 나온 <팥이영감과 우르르 산토끼>란 그림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다시 펼쳐보니 기본 뼈대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팥이영감과 우르르 산토끼>는 그림체가 <토끼가 그랬어>와는 많이 다르지만 꾀쟁이 토끼와 사람 사이의 쫓고 쫓기기, 화해와 소통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거의 같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꾀돌이' 토끼에 매번 골탕먹는 소년
토끼가 그랬어 - 10점
양희진 지음, 김종민 그림/아이세움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 10점
박재철 지음/천둥거인

초여름날 녹두는 평상에서 혼자서 집을 본다. 큰토끼 한마리가 살금살금 들어와 할머니가 정성들여 키운 텃밭 콩잎을 뜯어 간다. 녹두가 “야, 너 거기 서! 우리 할머니 콩잎 내놔!”라고 소리치며 맨발로 달려가지만 큰토끼는 요리조리 뛰고 녹두도 토끼를 따라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할아버지 난 화분이 깨지고, 빨랫줄에 걸려 있던 엄마 원피스가 찢어지고, 아빠 자전거가 넘어진다. 큰토끼는 이미 달아나고 녹두는 엉망진창이 된 마당 때문에 혼이 난다. 잔뜩 골이 난 녹두는 다음날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평상에서 토끼를 기다리지만 토끼는 녹두를 비웃듯 빠져나간다. 단단히 작심한 녹두는 만화책과 볶은 콩 한그릇을 들고 평상으로 간다. 역시 깜빡 잠이 든 녹두. 작은토끼는 녹두가 남겨둔 볶은 콩 그릇에 손을 대는데….
동서양 옛 이야기에서 토끼는 종종 꾀돌이로 등장해 사람과 동물을 골탕먹이곤 한다. 기상천외한 거짓말로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별주부전’의 토끼가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토끼가 악한 것은 아니다. 알고보면 정이 많은 동물로 의인화된다. 이 책의 토끼들은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녹두에게 슬며시 마음을 열어보이며 다가간다. 하지만 녹두가 토끼를 친구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놓은 사이 토끼는 녹두를 다시 한번 감쪽같이 속인다. 익살스러운 그림과 운율감을 살린 글이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팥이영감’ 또는 ‘녹두영감’으로 불리는 우리 옛 이야기를 각색한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천둥거인)라는 책이 있는데 <토끼가 그랬어> 역시 이 옛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20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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