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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조선풍속사1~3

강명관 교수는 '파워 라이터' 가운데 한명이다. 고전문학과 한문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풍속에 대한 책들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 쉽고 평이하게 주제를 요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작년 돌베개 출판사에서 <열녀의 탄생>이 나왔을 때 선배가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 책은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조선풍속사>는 좀 더 대중의 눈높이에 가까운 책이다. 후배 하나가 이 책이 어떠냐고 묻길래 '책상에 각 잡고 앉아 읽기 보다는 침대에 배깔고 누워 읽거나 KTX 타고 부산 정도 갈 때 챙겨가면 좋을 책'이라고 말해줬다.

<조선풍속사>를 소개하기 위한 들머리로 소개한 <미스터리 모텔> 역시 흥미롭다. 그림책이라고 해서 어린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할까. 상당히 진지한 자세로 모텔을 발굴하고 사물의 용도를 추적하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진지한 표정이 웃음을 자아내는데, 이집트 투탕카멘 왕릉 발굴 사례에서 설정을 빌려왔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차용했고, 책에 실린 그림들도 투탕카멘 왕릉 발굴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금방 연상시킨다.

조선 성균관 유생들 별미로 ‘개장국’ 즐겼다

조선 풍속사 1 - 10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조선 풍속사 2 - 10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조선 풍속사 3 - 10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지난해 국내에 번역된 <미스터리 호텔>(데이비드 매콜리/마루벌)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1985년 유례없는 대격변으로 인류가 절멸한 뒤 4022년 신인류가 땅 속에서 호텔 유적을 발굴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엉뚱한 설정보다 더 엉뚱한 것은 호텔 유적에 대한 신인류의 해석 방식이다. 모텔 안에서 남녀의 시신이 각각 1구씩 발견되는데 아마추어 고고학자는 이를 근거로 모텔은 죽은 자를 위한 무덤 혹은 신전이며, 그 안에서 발견된 모든 물건은 장례 의식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랍장과 그 위에 놓인 텔레비전은 신과 연락하는 제단이며, 욕조는 도자기 석관, 얼음통은 장례 후 내장을 담았던 용기라는 것이다. 섬세한 그림이 압권인 이 작품은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인류가 과거, 특히 고대사를 현재의 시각과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벌어지는 오해를 매우 해학적으로 그렸다. 사실 우리가 선사시대 혹은 고대사에 대해 상상하는 것들 가운데 402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엉뚱한 추리와 비슷한 사례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미스터리 모텔 - 10점
데이비드 매콜리 지음, 조동섭 옮김/마루벌

수천~수백년 전의 과거에 대해서만 그러할까. 나의 고조부·증조부 시절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조선 시대다. 따라서 우리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자료는 풍성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관심이 100~200년 전 조상의 삶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대신 텔레비전 사극에 등장하는 정형화된 인물과 세트장, 소도구들이 우리의 상식을 채운다.
전작들에서 만만치 않은 입담을 과시했던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는 이번에는 단원 김홍도, 기산 김준근, 혜원 신윤복 등이 남긴 풍속화를 소재로 조선의 풍속사를 그려냈다. 3권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신윤복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2001년판을 개정한 것이며, 1권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와 2권 ‘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는 같은 방식으로 새롭게 썼다. 들밥먹기, 대장간, 빨래터, 행상, 주막, 젖먹이기, 바느질, 춘화, 그네뛰기, 선술집, 투전, 사당패, 과부, 기생 등 주제들이 무궁무진 펼쳐진다.

단원의 그림 ‘어살’(漁箭·어전)을 보자. 어살은 싸리나무나 대나무 같은 것을 강, 바다에 울타리 모양으로 쳐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을 말한다. 조선 시대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것 못지않게 어살이 어업의 중요한 방식이었다. 바닷가는 넓게 펼쳐져 있으니 누구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땅이 경작하는 농민의 것이어야 함에도 온전히 농민의 소유가 된 적이 유사 이래 거의 없었던 것처럼, 어살이 물고기를 직접 잡는 어민의 것이었던 적 역시 거의 없다.” 역시 단원의 ‘자리짜기’ 그림을 보자. 아내는 물레를 잣고 남편은 자리를 짜고 있다. 행색이 양반 행색이다. 김득신의 ‘병아리 훔치기’ 그림에도 자리를 짜는 양반이 등장한다. 우리의 상식은 양반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조선 후기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양반이 속출했다. 이처럼 곤궁한 양반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택했던 노동이 바로 자리짜기였다.
기산 김준근은 미술적으론 단원이나 혜원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지은이의 관심사인 조선의 풍속에 대해선 오히려 더 풍부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김준근의 ‘개백정’은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개에 목줄을 씌워 끌고가는 사내를 그렸다. 지은이는 이를 소재로 조선에서 애완견과 식용견의 역사, 지금보다 훨씬 풍부했던 개 요리법 등을 문헌을 통해 소개한다. 조선 성균관 유생들이 가장 반겼던 별미가 개장국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나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혜원 신윤복은 ‘에로티시즘의 화가’다. 그만큼 혜원의 작품은 욕망과 음주가무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통로를 제공한다. 지은이는 기생과 기방을 소재로 한 혜원의 다양한 그림을 통해 기방의 자못 진지한 법도를 설명하는데 미소를 자아낸다. 기방에 들어서는 사람은 이미 기방에 들어가 있는 손님에게 격식을 갖춰 문답을 하며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야 했으며, 기생의 노래를 청할 때도 역시 법도가 있었다. 이런 규칙을 모르면 기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격 부담이 없는 쌈직한 술집을 말하는 선술집에 대한 설명도 솔깃하다. 선술집은 술꾼들이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선술집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선술집에선 백잔의 술을 마셔도 꼭 서서 마셔야 했다. 선술집에서 앉았다가 싸움이 붙기도 했다.
지은이도 인정하듯 조선 시대 풍속화에 대한 해설서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미술사가들이 쓴 것들이라 구도가 어떠니, 색채가 어떠니 하면서 미학적 성취를 논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풍속화라고 하는데 정작 소재가 된 풍속이 어떠하고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설명은 간략하게 취급된다.
지은이는 반대로 풍속화가 개인이나 미적인 분석 대신 오로지 풍속화 속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이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겼으며, 욕망을 어떻게 해소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지은이 개인의 경험이 등장하고, 고문헌이 동원됐다.
풍속이 한참 바뀌어버린 마당에 케케묵은 옛날 얘기를 알아 무엇하느냐고? 아무리 먹고, 입고, 일하고, 즐기는 방식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조상의 풍속은 후손인 우리 삶의 방식에 희미하게라도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20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