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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르포물 '가뭄'에 가물가물해지는 우리의 기억

출판 영역을 담당하게 된지 1년이 지났다. 출판을 담당하던 초기에 가졌던 의문을 이제서야 나름대로 규명해 보았다. 사적인 자리에서 몇번 이야기 하기도 했던 것이다. 솔직히 나 스스로도 국내의 탐사물을 손에 들기가 꺼려진다. 심리적으로 괴롭다는 느낌이 들었거나, 들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조지 조웰의 <1984>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원래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요사이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작품들을 간간히 읽는다. 워낙 검증된 작품들이라 그런지 대체로 재미있고 묵직하다.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을 때 문득 이 작품의 제목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말고 오웰의 소설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나는 여느 대한민국 학생들처럼 요약된 지식을 외우는데 제법 수완을 발휘했던 터라 그 유명한 고전을 읽어보지도 않고 시험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읽은 체해왔다는 게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지극히 암울한 오웰의 소설은 가상의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모습을 조금만 깊게 둘러본다면 오웰이 1949년 발표한 작품에서 그린 상황은 오히려 예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근무하는 ‘진리부’의 슬로건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슬로건이 허황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인류역사의 오랜 전통이며 지금 현재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은 위태롭다. 개인의 기억은 불완전한 정보로 인해 단편적이거나 왜곡돼 있을 수 있고, 당사자가 생을 거둠과 동시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기억을 사회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훌륭한 기록문학 혹은 탐사문학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하고 현재의 상황을 미래로 이어준다.
제3세계 인신매매에서부터 다국적 기업의 착취구조까지, 나치와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이라크전까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국내에 소개되는 외국의 르포물·탐사물들이 좋은 예이다. 이런 주제들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안다고도 할 수 없는 지구상의 일들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만든다. 이런 종류의 책들에 대한 국내의 독자층도 꽤 두터운 편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벌어졌던 일 혹은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룬 르포물·탐사물은 흔치 않다. 1차적으로는 작가와 출판사들의 게으름을 지목할 수 있다. 국내에서 벌어진 커다란 사건이나 논쟁적인 사회 이슈에 대해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예리한 분석을 곁들인 책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작가와 출판사 탓만 할 수 없는 게 괜찮은 국내 르포물·탐사물이 나와도 독자들의 호응은 미적지근하거나 차갑다.
왜 우리는 청바지 한 벌에 숨어 있는 저개발국 목화 노동자들의 착취당한 노동, 환경파괴, 다국적 기업의 위선을 폭로한 탐사물은 흥미롭게 읽으면서 용산참사가 왜 벌어졌고, 당시 현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를 밝힌 책은 외면하는 것일까. ‘청바지 한 벌에 담긴 비밀’은 나와 관계가 있는 동시에 멀리에 있다는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용산참사를 비롯한 국내의 이슈를 다룬 책들은 나 자신 또는 몇다리 건너에 있는 사람의 문제라는 밀접성 때문에 편안하게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작가와 출판사가 게으름을 피우고 독자들이 외면하는 사이 개인으로서, 전체로서 우리의 기억은 부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건강하게 힘을 발휘하려면 끊임없이 기록하고 또 읽어야 한다. 오웰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과거를 지배당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당하고, 현재를 지배당하는 자는 과거도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20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