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엘 다녀왔다. 모두 세 본 적은 없지만 그간 지리산엘 간 게 10번 가까이 될 것이다. 지리산은 매번 찾아갈 때마다 색다른 감동을 주지만 이번 산행은 특히나 뜻 깊었다. 산행 코스가 노고단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소위 말하는 '서북능선'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내와 12살 아들 녀석이 함께 했다는 게 여느 산행과 다른 깊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백두대간의 한 구간이라는데 오래 전부터 말로만 들었을뿐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행정구역상 남원시에 속하는 서북능선(이 능선에 올라보니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이 먼발치에서 보였다!)은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보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능선길이다. 난도가 낮다고는 하지만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세걸산-바래봉으로 이어지며 적당한 고저가 있어서 능선 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간 아들. 정확히 10년 전 아내와 나는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다. 아들을 낳은지 1년 후였다.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장인 장모님께 맡기고 2박3일 동안 성삼재에서 시작해 천왕봉까지 갔다가 칠선계곡으로 내려왔다. 그때 아내와 '언제 우리 아이가 커서 지리산에 함께 올 수 있을까?'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드디어 그런 날이 온 것이다. 녀석은 1박2일간 24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걸으며 많이 힘들었을텐데 하산길 급경사에서 발가락이 아파 잠시 짜증을 낸 것을 빼곤 힘들단 내색을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커 있었다. 힘들기는 커녕 에너지를 주체 못해 앞으로, 앞으로 돌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계절이 되면 전국 산천이 단풍으로 벌겋게 물들지만 지리산의 단풍은 본격적이라고 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렇지만 비가 뿌릴거란 예보와 달리 너무도 맑았던 하늘에서 내리 쬐는 볕은 이미 가을로 풍만해 있었다. 가을산은 굳이 화려한 단풍이 아니더라도 볕과 바람이 온갖 색으로 가득 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야봉
고리봉에서 보이는 구례 전경
고리봉에서 보이는 만복대. 첫날 저 만복대를 넘어 아래 있는 정령치까지 갔다.
지리산 북쪽사면.
만복대에서 본 노고단.
반야봉
정령치에서 보이는 반야봉과 지리산 주능선. 누군가 난간 위에 올려 놓고 간 소주병이 저 좋은 석양의 절경을 혼자서 즐기고 있었다.
하룻밤을 머문 심원마을의 민박집. 함께 간 어른들의 계속되는 야간 음주에 끼어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먹던 아들이 꽁치 김치찌개를 끓이는 아저씨의 조수가 되어 진지한 자세로 조리를 돕고 있다. 고맙게도 붙임성 좋은 아들.
아랫쪽이 첫째날 걸은 코스(오른쪽에서 왼쪽 방향), 위쪽이 둘째날 걸은 코스(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이다.
남원 시내. 저기에 내가 태어난 곳이 보인다.^^
이 능선길의 끝에 보에는 게 바래봉이다.
바래봉은 매년 5월 철쭉재가 열린다. 철쭉재가 열리면 발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특히 세걸산 넘어 팔랑치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길은 평전(平田)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평평한 둔덕이었는데 철쭉과 갈대가 지천이었다.
(2015년10월9~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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