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내가 읽은 책

정치적 용서와 화해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새벽-김대중 평전'

새벽 : 김대중 평전 - 10점
김택근 지음/사계절출판사

 

김대중 평전이 ‘새벽’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됐다. 2010년 방대한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고 그 해 말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한 김택근 전 논설위원이 썼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에 실린 ‘후기’의 끝부분에서 ‘김대중’을 ‘새벽’으로 은유하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책의 제목을 ‘새벽’으로 붙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다시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면 그가 올 것이다. 새벽처럼 돌아올 것이다. 죽어서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주어진 생을 한 점 남김 없이 태웠다. 온몸을 바쳐 평화를 만들고 그 속에 들었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참 아름다운 사람을 역사에 묻고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깨어 있겠습니다.”
새벽에 길을 떠나 민족의 새벽을 불러온 김대중을 역사는 길이 기억할 것이다. (439~440쪽, 후기-김대중을 역사에 묻으며)

 

김대중이 세상을 떠난지 3년이 지났다. 그를 새벽에 비유한 것이 지나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말그대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살아온 김대중의 인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숭고미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가 겪은 ‘5번의 죽을 고비, 6년간의 투옥, 10년 동안의 망명·가택연금’ 자체가 보통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다. 그의 인생이 단순히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만으로 채워졌다 하더라도 후세가 보고 배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겠지만 김대중이 주는 감동은 그 이상이다. 김대중은 신군부에 의해 내란 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1980년 11월25일 이렇게 썼다.

 

용서는 따지고 보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용서함으로써 인격적으로 의로워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해 진다. 용서하지 않고 남을 증오하고 저주한다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고 고독하며 편협하게 만들 뿐이다.
용서만이 진정한 대화와 화해의 길이다. 타인의 결함과 과오에 대한 용서 없이 어떻게 합의에 이르는 대화와 공동의 목적을 위한 화해가 가능할 것인가? (160쪽, 용서의 힘)

 

 

 

대선 정국을 맞아 정치적 ‘화해’와 ‘용서’가 새롭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진원지이다. 쿠데타와 유신, 정적에 대한 암살시도, 인권유린 등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사건들은 그의 딸이 유력 대선후보로 등극하면서 새롭게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쿠데타나 유신에 대해 ‘새롭게’ 논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일본에서 청소년들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대학교수와 교사 등 전문가들이 모여 청소년 폭력의 심각성과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는데 한 중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왜 살인을 하면 안되나요?” 한 중학생의 갑작스럽고 도발적인 질문에 전문가들은 “왜냐하면.....”이라고 말문을 열긴 했지만 답변이 궁색해 쩔쩔 맸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에피소드를 전한 필자는 “아무도 ‘살인은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조건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개탄한 바 있다.

 

‘쿠데타’가 무엇인가. 사전은 쿠데타를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한다. 민주주의와 쿠데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쿠데타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불가피한’ 쿠데타란 형용모순이다. 헌법을 파괴하고 1인독재를 규정한 유신 역시 마찬가지다. 이걸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왜 살인을 하면 안되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김대중은 알다시피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것은 1971년이었다. 김대중은 정연한 논리로 유명하다. 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내세웠다고 한다. 매우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을 연상시켜서 옮겨본다.

 

1인 독재에서 제2의 해방으로(법제 정치), 폐쇄 전쟁 지향에서 적극 평화 지향으로(통일), 예속 외교에서 자유 실리 외교로(외교), 정권 안보에서 민족 안보로(안보), 특권 경제에서 대중 경제로(경제), 불신과 절망에서 희망의 대중사회로(사회·복지), 질식·압박에서 자유·창조로(교육문화). (79쪽, 갑옷을 입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634만2828표, 김대중은 539만5900표를 얻었다. 94만여표 차이로 박정희 승. 그런데 김대중 부부가 행사한 투표용지가 선거관리위원장의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고 무효로 처리되는 등 전국적으로 부정선거가 횡행했다.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지역감정이었다. 한국 정치가 지금까지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역감정의 수렁이 이때 마련됐다고 한다.

 

다시 화해와 용서 얘기로 돌아가면 ‘김대중의 용서’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용서는 논란거리다.

 

김대중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우와 자식, 비서, 동지들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갔지만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참으로 비범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두환·노태우의 중죄를 용서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용서를 넘어 대통령 재직 시에는 전두환과 만찬을 하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을 집단 학살한 무리의 수괴와 함께 밥을 먹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중략) 용서가 신념이라고 하지만 쿠데타 주범들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죄가될 수도 있었다. 국민의 동의 없이 개인의 신념으로 국사범을 용서해도 될 것인가. (161쪽, 용서의 힘)

 

박근혜도 아버지와 추종세력이 세번이나 죽이려 했던 김대중에게 이미 머리를 조아린 바 있다.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김대중을 찾아왔다. 2004년 8월12일, 박정희가 살해당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한나라당)의 대표였다. 박근혜는 아버지 일에 대해 사과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립니다.”
김대중은 그 말이 무척 고마웠다. 박근혜의 손을 잡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김대중은 박정희가 환생하여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았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김대중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137~138쪽,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

 

박근혜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박근혜 스스로가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는 역사의 더께를 인식은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자신이 부정적 역사의 당사자 또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교과서가 쿠데타라고 하는 것을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로 인식이 분열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엊그제는 “역사인식이 현재의 결정이나 미래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거지”라고 했다지.

 

깊은 사색에서 용서의 힘을 길어올린 김대중이었지만 그가 세인의 평과 달리 유독 박하게 평가하는 인물이 있다.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한 10·26 사태 직후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재규는 1인독재의 극한으로 달려가는 독재자를 암살한 인물이었으므로 그를 ‘의인’으로 평가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김재규를 민주주의의 영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는 쿠데타나 암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모두 민주주의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을 때 김대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중이 독재를 응징하지 않고 독재자가 부하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결코 민주주의에 이롭지 않다고 보았다. (139쪽,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

 

이에 대해 최근 은퇴한 함세웅 신부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다. 10·26재평가와 김재규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이기도 한 함 신부는 은퇴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김재규씨 재판기록에도 나오지만 박정희가 부마항쟁 나는 것을 보고 그랬다고 해요. 100만이든 200만이든 죽이면 된다, 캄보디아 봐라. 그래서 김재규씨가 이래서는 안된다 생각해서 박정희를 쏜 것이기 때문에 10.26은 유신을 끝낸 민주혁명이거든요. 그때 김재규 장군을 구했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을 겁니다”라면서 김재규 구명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함 신부는 김대중에 대해서도 신랄한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김대중이) 참 유식하고 유머감각도 있고 남북관계에 진전을 이룬 것은 훌륭한 업적인데 영남을 품어 안지 못한 것, 김종필에게 경제정책을 맡겨 결국 금권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일이나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어요. 정치자금을 준 김중권씨를 비서실장으로 앉힌 부분도 납득하기 힘들고요”라고 평가했다. ([서화숙의 만남] 은퇴하는 함세웅 신부)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박근혜에게 있어 용서와 화해를 ‘구할’ 대상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버지를 죽게한 김재규. 김재규는 이미 세상에 없지만 박근혜가 김재규를 용서할 수 있을까? 너무도 잔인한 질문이겠지만 용서와 화해라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게 하는 질문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다시 <새벽-김대중 평전>으로 돌아온다. 김대중은 자신이 많은 책을 썼거니와 자서전, 평전이 여럿 나와 있다. 만화 평전도 있다. 이에 관해 내가 쓴 잡문도 몇개 눈에 띈다.

 

<만화 김대중>의 작가 백무현 화백

김대중 저서에 대한 엘레지 정서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평전을 읽으면서 세세한 ‘팩트’보다는 필자의 간결하고 스피디한 문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필자는 등단 시인으로서 경향신문에 몸담던 시절 글 잘쓰는 몇명에 꼽히는 분이었다. 이분이 화제에 올랐을 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 선배의 글에서는 접속사를 찾아볼 수가 없어. 정말 간결하게 쓰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후배들이 배워야 하는 점이야.” 아닌게 아니라 <새벽-김대중 평전>의 문장에서는 접속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한문장의 길이가 30~50자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문장을 짧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내공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현대사를 짧은 시간 안에 드라마틱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현대사 인물을 다룬 평전이 가지는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