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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김대중 저서에 대한 엘레지 정서

오랜 준비 끝에 <김대중 자서전>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책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한 요일이 하필 출판면 마감과 겹치는 목요일이라 기자회견에는 가지 못했지만 기사를 두꼭지 써야 했다. 그 탓에 점심조차 걸러야 했지만 1, 2권 합해 1200여쪽에 달하는 책을 2시간만에 휘리릭 볼 수 있었다.(거듭 말하지만 읽는게 아니라 보는거다. 일테면 선택적 책읽기인 셈이다.)

꼼꼼히 보진 못했지만 휘리릭 본 느낌으론 대통령이 되고난 이후를 다룬 2권보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까지 다룬 1권이 더 재미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삶 자체가 더 드라마틱한데다,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의 삶은 워낙 많이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글을 읽는 맛도 1권이 더 낫다.

책값이 5만원이 넘어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책값은 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말 그대로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라 할 만하다. 백무현 화백이 그린 <만화 김대중>과 함께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시대의창에서 8월중에 김삼웅씨가 쓴 <김대중 평전>을 낸다고 한다. <김대중 자서전>의 대표집필자인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도 개인적으로 평전을 써서 내년쯤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침 <기획회의>가 김대중의 <옥중서신1>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청탁을 해왔다. '출판계의 엘레지 정서가 남긴 것'이란 특집의 한 꼭지였는데 이번호에 실렸다. 김대중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록삼아 갈무리 해놓는다.


우리의 삶 속에 뿌리박힌 이름 <옥중서신1>
 “기본적으로 볼 때 인물은 역사의 산물이지 인물이 역사의 기축을 좌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선?악간의 큰 인물은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겨 많은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그 중에서도 그 인물이 역사의 가는 방향과 발을 맞추며 백성의 운명에 이해와 애정으로 대한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모를 받게 됩니다.” (<옥중서신1> 453쪽)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2년 11월2일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당시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는 이어지는 글에서 “시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모를 받게 되는” 인물로 중국 정鄭나라의 재상이었던 자산子産이라는 인물을 들었다. 능란한 외교술로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지켰으며,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얻는 성공적인 국내 통치 솜씨를 보였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은 서거했다. 27년이 흐르는 사이 그는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고, 취임 시 물려받은 국가적 금융위기를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남북이 분단된 이래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시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모를 받게 되는’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의 서거 직후 상당수 외국 언론들은 그를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나라를 바꾼 세계 지도자 11명’ 가운데 그의 이름을 올린 것도 한 예다. 어찌 보면 존경받는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고 목표를 설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교육서이자 역사비평서, 신앙고백서, 정치전략서
 <옥중서신1>은 제목에서 보듯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원래 84년에 처음 출간됐으며 2009년에 재출간됐다. 지난해에 새로 나온 <옥중서신1>은 84년에 발간된 <옥중서신>에 들어있지 않았던 편지들이 추가됐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의 편지, 1978년 건강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이송돼 수감됐던 시절 감시원 몰래 쓰느라 못으로 눌러 쓴 편지 등이다. <옥중서신2>는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편지의 첫째 목적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교도소 담장 밖에서 자신의 구명운동을 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부인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 미안함과 걱정을 전하고 있다. 자녀와 친지, 동지들에게 보내는 안부와 충고도 빠질 수 없는 편지의 내용이다. 헌데 가족과 친지, 동지에게 보내는 안부만 담겼다면 그의 편지가 책으로 엮일 이유가 별로 없거니와 우리가 일삼아 그 책을 읽을 이유는 더욱 없을 것이다.
 펼치면 A4용지 한 장 크기보다 작은 봉함엽서에 그야말로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써내려간 그의 편지는 편지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다. 그가 생전에 즐겨 사용했던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첫째, 이 책은 자녀교육서다. 그는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없는 세 명의 아들과 손자?손녀, 조카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가르침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책임감과 성실함을 강조했고, <시튼 동물기>, 박경리의 <토지> 등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거론하며 독서를 독려했다. 아버지에게 독후감을 써서 보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녀도 논리적, 합리적으로 대하고 설득하려 했던 김 전 대통령의 면모는 지금에도 배울 점이 있다.
 둘째, <옥중서신1>은 역사비평서다. 김 전 대통령이 대단한 독서가였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는 1977년 6월23일의 편지에서 “남이 나에게 고통을 줄 수는 있지만 결코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하오. 아무리 지루한 날도 24시간 이상은 아니고 아무리 빨리 가는 날도 24시간 이상은 아니오. 나는 독서와 수양으로 결코 지루하지 않은 24시간을 보내고 있소”라고 썼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 말미에 부인이 넣어줬으면 하는 책의 목록을 수십 권씩 첨부하곤 했는데 역사책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1977년 10월25일의 편지에서 “우리 역사를 읽고 또 다른 민족의 그것과 비교할 때 우리는 우리 민족이 소극적 자기 체질의 수호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적극적 자기 운명의 개척에는 매우 실망적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라고 썼다. 1982년 2월23일의 편지에선 “우리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 하나의 특징은 한 왕조의 존속기간이 세계에서 예가 드물게 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창조성과 활력을 잃은 왕조가 억지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마치 사기(死期)에 처한 큰 짐승이 숨이 끊어지지 않고 풀밭에서 뒹굴면 그 밑에 깔린 잡초(백성)들만 짓밟혀서 희생되는 것”이라며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조선왕조는 성립된 지 200년쯤 지난 뒤인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교체되거나, 아니면 1636년 병자호란 때 교체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매우 담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옥중에서 쓴 편지에 사용한 용어와 시대인식은 70~80년대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역사서라는 것이다.
 셋째, 이 책은 신앙고백서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거론하는데, 역경 속에 던져진 자신의 의지와 결심을 다잡기 위한 자기암시의 일환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얼굴을 언제나 주님에게 돌리고, 주님이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것,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표면적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주님께서는 하시는 모든 것을 서로 작용시켜서 좋은 결과를 이루신다’는 은혜를 반드시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1981년 3월19일의 편지)
 넷째, 이 책은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평화통일을 자신과 민족에게 부과된 최대의 숙제로 설정한 어느 유력 정치지도자의 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매니페스토Manifesto, 즉 정치선언문이다. 옥중서신은 내보내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검열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내밀한 정치전략을 도모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과 나가야 할 방향을 웅변조로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는 1977년 10월25일의 편지에서 ‘우리에서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근대와(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와 현대화(대중민주주의, 복지경제)의 병행실행, 평화적 통일의 성취, 미?일?중?소 4대 강국 사이에 낀 나라로서 적절한 처신을 통한 독립과 평화의 확보 등을 들었다. 1982년 5월25일의 편지를 보자. 그는 ‘인류’의 차원에서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과거를 비판하는 안목으로 만일 오늘의 인류세계가 멸망한다면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가정해서 본다면 우리의 운명은 세계정부의 수립과 부의 균분의 성취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이름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태어나 85년을 살았으니 그의 삶은 짧지 않았다. 싫든 좋든 정치인으로서 그의 발자취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20세기와 21세기가 중첩되는 시기에 대통령 직을 수행했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나는 그가 남북관계는 물론이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부문에 있어 ‘디자이너’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각종 관행과 제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당수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 기원했거나, 그 시기에 큰 변화를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21세기 초반 10년의 틀이 그의 집권기에 주조됐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대중이 한 정치인을 존경 또는 회억回憶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그의 공과를 일일이 저울로 재어본 뒤에 나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떠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유발하기 일쑤다. 많은 이들에게 그는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 기억되지만 일부는 그를 ‘간첩’ ‘빨갱이’로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고백건대 나는 과거에 김 전 대통령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 유명하다는 <대중경제론>도 <3단계 통일론>도 그런 책이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옥중서신> 역시 재출간 된 지난해에야 처음 접했다. 이 책들이 나온 지 워낙 오래되었거니와 그의 생애, 그의 정치적 주의주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그가 쓴 책들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대의창 출판사에 따르면 <옥중서신>은 서거 한 달쯤 뒤에 나오면서 나름 추모 분위기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책들이 간간히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오르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그럴까? 그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에-그를 지지하는 사람에게든, 그를 증오하는 사람에게든-그를 다룬 책을 집어 들고자 하는 충동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닐까. 독자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에 더 알고 싶은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기록을 남기는데 매우 집착했던 그의 성격이 가져온 결과일 수도 있다. 적당히 숨겨놓고 눙치는 것 없이 샅샅이 기억하고 기록했기에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뒷담화적 요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 소비자’로서 나는 김 전 대통령이 고맙다. 스스로 많은 글을 남겼고, 자료들을 많이 남겨두었으니까. 다음달 나올 김 전 대통령의 공식 자서전도 반가운 일이다. 지금 당장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또는 우리의 후손이 그에 대해 알고 싶고, 제대로 평가하고 싶을 때 뽑아들 수 있는 그의 책이 여럿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편으론 김 전 대통령이 참 철두철미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모를 받게 되는 인물’이 되기 위해 마련된 전략 말이다. <옥중서신1>을 보면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 전략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기획회의 276호> (20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