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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반죽글

요럴 때 기자하는 재미가... 으쓱

기자를 하면서 가장 즐겁고 짜릿할 때가 '특종'이라는 것을 하는 때다. 다른 기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단독으로 알아내 쓴 기사를 특종기사라고 한다. 반대로 특종기사를 놓치는 것은 기자들 은어로 '물먹는다'라고 한다. 당연히 가장 맥빠지고 기분 나빠지는 상황이다. 개인의 자존심도 상하거니와 심한 질책을 당하기도 한다. 내 기자생활 동안 당연히, 특종은 한손에 꼽을 정도인 반면 물먹은 횟수는 콧수염 숫자보다 조금 적을거다.

2주전 '책동네 산책'이라는 기명칼럼에서 출판계의 과도한 '하버드 마케팅'을 꼬집은 적이 있다. 오늘 연합뉴스가 똑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부장이 이걸보고 나에게 귀뜸해 주었다. 사실 이 아이템은 우리부서의 후배가 귀띔해준 것이다. 이런걸 특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같은 사안을 먼저 다루고 짚었다는 데에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비판성 칼럼이었고, 특정 출판사를 면박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출판사와 책 이름을 가급적 적시하지 않았는데 연합뉴스의 기사는 트렌드성 기사라서 목록을 친절하게 나열했다. 사실 연합뉴스는 워낙에 통신사라서 나보다 먼저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내가 관심이 좀 더 빨랐다. 이런 일이 흔치 않기에 기념 삼아 갈무리 해둔다.

<출판계 ‘하버드 마케팅’ 바람>
 출판계에 ‘하버드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책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가 인문 서적으로는 전례 없는 돌풍을 일으키자 하버드대를 전면에 내세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이전에는 하버드대 학생들의 학습법이나 입시 전략을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철학, 디지털 세대, 행복 등 책 내용도 다양해졌다. 하버드대 학생들과 석학들의 인터뷰를 실은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배게), 디지털 세대를 분석한 ‘그들이 위험하다 : 왜 하버드는 디지털 세대를 걱정하는가’(갤리온), 하버드 클래식 고전 선집 읽기에 도전한 저자의 책읽기 여정을 기록한 ‘하버드 인문학 서재’(21세기북스), 하버드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민음사) 등이 최근 선보인 하버드대 관련 책들이다. 이번 주에 나온 탈 벤-샤하르 하버드대 교수의 ‘완벽의 추구’(위즈덤하우스)는 행복론에 관한 책이다. 책의 부제는 ‘하버드대 최고의 행복 강의’로, 하버드대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처럼 하버드대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하버드대에 대한 일반의 신뢰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위즈덤하우스의 이귀애 마케팅팀장은 28일 "책에 대한 독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하버드대를 부각시켰다"면서 "또 실제로 탈 벤-샤하르 교수의 행복학 강의는 하버드대생 사이에 큰 인기를 얻어왔다"고 말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배경에는 하버드대 마케팅이 절대적인 요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만약 다른 대학의 최고 강의라고 홍보했다면 이렇게까진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 이후 보다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책에 대한 수요가 생겼는데 출판업자들이 다양한 책을 개발해 이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하버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 연구원도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비슷한 유형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하나의 현상처럼 굳어진 지 오래"라면서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따라 하다 보면 책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따라 하기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 9.28, 황윤정 기자)


[책동네 산책]‘하버드 책’과 ‘하버드 맛 책’

내가 아는 선배 한분은 10년 전쯤 쓴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조선인민군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 부제가 ‘김정일 시대의 당군관계를 중심으로’였다.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논문스러운’ 제목을 달고 있던 이 논문이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이름하여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부제는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와 군부의 정치적 역할’이었다. 여전히 딱딱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건 소재 자체의 특성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를 보고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를 생각해낸다는 건 보통의 내공으론 기대하기 어렵다.

내 선배의 경우는 논문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지면서 일어난 일이지만, 책이든 영화든 외국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는 것은 다반사다. 원제목이 원작자의 의도를 가장 잘 담고 있다고 하겠지만 문화와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없는 다른 나라, 다른 언어로 옮아갈 땐 변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원작의 이름과 번역된 제목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감독 장 뤼크 고다르가 찍어 고전이 된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원제목은 ‘숨막힘’이라고 한다. 아마 일본에서 처음 붙였겠지만 ‘네 멋대로 해라’라는 제목은 호평을 받았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원제목이 ‘베를린의 하늘’이었고, 영어로는 ‘욕망의 날개’였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언어권이 바뀌면서 생긴 제목의 차이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제목 바꾸기가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약빠른 계산이 너무 심해 원제목은 코끼리 코를 만지고 있는데 번역서 제목은 코끼리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경우가 쉽게 발견된다. 얼마전 방한한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자신의 저서 <이성, 신념, 그리고 혁명>(Reason, Faith, and Revolution)이 한국에 번역되면서 <신을 옹호하다>란 제목이 붙은 것에 대해 “이렇게 희화화한 제목으로는 책의 논지가 제대로 받아들여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문서로서는 10년 만에 처음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원인을 두고 갑론을박 하지만 쉽게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의 표지에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란 카피가 올라있거니와, ‘하버드’가 한국에서 가지는 이미지와 권위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요사이 나온 신간 가운데 유독 ‘하버드’란 단어가 제목 또는 부제에서 발견되는 빈도가 높아진 것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원제목이나 부제 어디에서도 ‘Harvard’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기’라고 단정하긴 애매하다. 저자나 책 내용에서 어떤 식으로든 하버드와의 연줄은 발견되니까.

이처럼 난감할 땐 식음료 제품명에 관한 규제가 떠오른다. 예를 들어 주스 이름에 ‘사과’를 쓰고자 한다면 원료의 몇퍼센트 이상 사과 주스 원액이 들어가야 한다. 원액은 얼마 넣지 않고 인공 향신료로 사과맛을 낸다면? 그럴 땐 ‘사과 맛 주스’라고 해야 한다. 같은 기준을 요즘 하버드를 키워드로 달고 나오는 책들에 적용한다면 ‘하버드 책’이 더 많을까, ‘하버드 맛 책’이 더 많을까. (2010.9.11)

P.S. 조금 늦게 공개하자면 위에 예를 든 선배는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위원이다. 이분이 북한 관련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알고 있었는데 교보문고에서 아주 눈길을 끄는 단행본 제목을 보고 저자가 이분인줄 알았고, 이어서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쁜 마음에 책을 샀고, 저자 사인까지 받았는데 정작 책은 좀 읽다가 말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2009년 출간으로 돼 있는데 내가 책을 산건 그보다 전이므로 인터넷 서점 정보가 잘못됐거나, 새로 나왔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2010.9.11)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 10점
이대근 지음/한울(한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