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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반죽글

아프간 소녀

지난주 스티브 매커리라는 사진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쪽에 별로 아는게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그 작가가 찍은 사진들을 보다보니 눈에 매우 익은 사진이 한장 보였다. 소련의 침공, 뒤 이은 내전, 그리고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까지 현대에 들어서도 질곡이 계속되는 아프간의 현실에 대해 매우 강렬한 느낌을 남기는, 그래서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이미지다. 특히 아프간에서 여성이 처한 열악한 상황은 서방매체에 의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198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 표지에 실렸다는 유독 이 사진이 기억에 남는 것은 워낙 이 사진이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내가 과거 국제부에 근무하던 시절 썼던 기사 때문이다. 이 소녀의 신원이 밝혀졌다는 외신보도를 정리한 기사였는데 찾아보니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일어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공포질린 아프간 소녀’ 신원확인
 보는 이를 전율케 하는 크고 푸른 눈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 이 소녀의 눈망울에 가득찬 공포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1985년 아프간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소개됐으나 신원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 소녀가 오사마 빈 라덴의 딸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고 영국 주간 ‘업저버’가 지난 3일 보도했다.
 현재 30대 초반인 그녀의 이름은 ‘알람 비비’. 친척들은 비비가 2주전까지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에 있었으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추정되는 서양인들이 찾기 시작하자 두 아이를 데리고 깊은 산중으로 숨었다고 밝혔다. 한 친척은 “그녀는 미국이 자신을 신문하거나 알 카에다 요원들이 수감돼 있는 쿠바로 데려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잘랄라바드 인근 아감에 살던 비비는 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페샤와르로 피란길에 올랐다. 이곳 난민캠프에서 그녀는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의 렌즈에 포착됐으며 서양 구호단체가 세운 학교에서 영어도 배웠다. 92년 소련의 위성 정권이 붕괴하자 돌아간 고향에 남은 것은 지뢰밭뿐이었다.
 그녀가 새 살림을 차린 곳은 토라 보라 산악지대. 공교롭게도 96년 수단에서 추방된 빈 라덴 일행 역시 이곳을 새 근거지로 삼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새 이웃과 접촉했고 빈 라덴의 딸들을 포함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자 비비의 가족은 다시 한번 난민 캠프로 향해야 했다. <2002.2.6>
 
오랫만에 보니 페샤와르, 잘랄라바드, 토라 보라 등의 지명도 감회가 새롭다. 가보진 못했지만 미군의 아프간 침공이 있던 시절 매일 전황을 업데이트 하면서 접했던 지명들이기 때문이다. 당시엔 이 소녀의 이름을 '알람 비비'라고 썼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잘못 알려진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녀의 이름은 '샤르밧 굴라(Sharbat Gula)'라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그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니, 매커리를 비롯한 서방의 매체가 그녀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일, 그녀가 걸어온 삶 등이 그런데로 잘 정리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