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는 것은 우상을 깨는 것”
리영희 프리즘 -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 윤형.김현진 지음/사계절출판사 |
“난 모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인 문부식·김은숙 두 사람의 재판에도 나는 증인으로 불려나갔어요. 내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들이 진술했으니까. 역시 <전환시대의 논리>가 그들의 반미의식의 원천이라고 검찰이 몰아붙이더군. 여기서도 나는 나의 책들이 이 나라의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실감했어요.”(리영희 「대화」 중)
리영희 선생은 문부식·김은숙의 ‘그런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수유 + 너머 R 연구원 고병권씨는 ‘리영희 프리즘’ 기념 연속 강연에서 리영희의 생각이 작동하는 방식, 그의 생각이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향신문·사계절출판사·인권연대 공동주최의 이 강연은 지난 27일 서울 동교동 ‘아트앤스터디’에서 열렸다.
고씨는 권력으로부터는 ‘범죄를 야기한 범죄’ 즉 ‘메타 범죄’의 주범이자 ‘의식화의 원흉’으로 탄압받으면서, 70~80년대 청년·학생·지식인들에게는 ‘사상의 은사’ ‘시대의 계몽자’로 불렸던 리영희를 통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주제를 풀어갔다.
고씨는 공통의 감각과 통념에 기대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했다. “‘빨갱이들이 문제야’ ‘여자들이 정치에 나서 설치면 안된다’ 같은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조건반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자본론」의 몇 개 구절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재단하거나 ‘미국은 혈맹’ 같은 프레임에 가두는 것도 조건반사이자 사고 정지의 결과물이다.
고씨는 “데카르트 철학의 제1원리인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도 우리 정신에서 일어나는 작용 일반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리영희의 ‘생각한다’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생각한다’는 무엇일까.
“‘리영희와 더불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할 때는, 매너리즘으로 견해를 갖는 것과 다른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사건의 영향으로 이전처럼 사물을 보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고씨는 “리영희 선생은 지식·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였다”며 “선생은 문부식의 ‘방화’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각성을 전달했기에 동의할 수 없는 투쟁도 리영희 때문에 일어나는 게 가능했다”고 했다.
고씨는 ‘리영희’를 읽으며 이성·계몽·신화·의식화·민주주의 같은 말을 다시 음미했다고 한다. 고씨는 “리영희 선생이 싸우려고 한 적의 이름은 ‘우상’과 ‘신화’였다”며 “선생은 ‘권력 철학’이라며 니체를 싫어했지만 우상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두루 통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우상’은 ‘생각 없음’ ‘생각하지 못하게 함’이다. 우상은 복종을 요구하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자체가 불경하며 파헤치는 순간 신성 모독이 된다. 그래서 우상을 문제 삼은 것을 문제 삼게 될 때 그 재판은 ‘종교재판’의 형식을 띤다. 리영희도 70년대 인신이 구속되고 사상을 탄압받던 자신의 상황을 갈릴레이나 브루노의 종교재판에 비교하곤 했다.
‘생각한다’는 것은 또한 “어떤 전제나 토대에 입각해 추론하는 일이 아니라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고씨는 니체의 ‘바닥에 구멍을 뚫는다’는 말과 리영희의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다’(89년)라는 글을 인용하며 “리영희 선생은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근거 아래로 뚫고 내려가 ‘모든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폭로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은 용기가 전제된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이성의 사용을 공적인 경우와 사적인 경우로 나눴다. 성직자는 사적 사용으로 교황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기계의 부품’처럼 처리할 수 있다. 그게 부당한 명령이라면 공적 이성을 가진 자로 발언해야 한다고 했다. 고씨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를 예로 들며 “칸트는 계몽이 곧 성숙이라고 했는데, 근거의 근거 없음을 문제 삼는 계몽과 성숙의 비밀은 지능이 아니라 감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리영희의 사유를 ‘인간주의’라고 불렀다. 그에게 인간의 반대는 동물·식물도 아닌 ‘노예’였고, 자유가 인간 존재의 전부였다. 고씨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노예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것, 사고 정지, 조건반사의 상태에서 벗어나 집단적 각성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노예로부터 자유인으로 변화하는 이 집단적 과정을 민주화라고 할 때 리영희의 인간주의에 대한 물음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이며 이 물음은 끝나지 않았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김종목 기자 <20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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