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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가운데 단연 압권인 ‘88만원 세대’를 만든 우석훈 박사와의 일화가 떠오른 건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고려대 학생이 쓴 대자보를 읽으면서였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우 박사를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중·고등학교에서 강연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말해줬다.
정식수업도 졸린 판에 외부강사의 강연시간은 학생들에게 눈치껏 낮잠을 즐기는 시간이나 다름없다. 실제 우 박사는 강연 시작 10분도 안돼 학생 대부분이 눈을 감고 ‘공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강연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의 관심사가 ‘돈’에 있다는 것을 파악한 우 박사는 학생들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드는 비법을 고안했다. 첫인사를 마치자마자 “얘들아, 나 작년에 1억 벌었걸랑”이라고 운을 떼는 것이다.
우 박사는 이 미끼를 던지면 학생들의 집중도가 놀랍도록 높아진다고 했다. 이 소리를 듣고 모두 웃었지만 술자리는 잠시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혀를 차는 사람도 없었다. 혀를 차며 그들을 비난하는 건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사고방식이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고려대 학생이 쓴 대자보에도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G(글로벌)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라고 불렀다.
그가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한국의 대학, 그런 대학을 비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질식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라는 표현이 이를 말해준다.
그렇다. 20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 방식이 반드시 자발적 퇴교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조를 깨뜨리는 논리와 방식을 스스로 깨우치고 실행해야 한다. 우 박사가 예리하게 지적했듯 20대와 세대 간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에 놓인 기성세대의 조언은 공허하거나 음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사이 출판계의 작은 트렌드로 자리잡은 20대들의 책들이 반갑다. 그들의 책은 우 박사가 20대 스스로의 저항과 연대를 제안하며 썼던 표현인 ‘짱돌’과 바리케이트조차 ‘기성세대의 논리’라며 사절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돌파구를 속시원하게 제시하지도 못한 채 조심스러워 한다. 그래도 좋다. 지금 상황에선 이런 글이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세대 내의 연대란 고민하고 자각하고 동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가 말싸움을 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야 첫단추를 끼웠다는 말이다.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고려대 학생도 언젠가는 책을 쓸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가 책으로 쏟아낼 말들을 나혼자 상상하며 벌써부터 기다려본다. <2010.3.13>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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