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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 마감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문화부 출판담당을 하면서 알게된 분들에게 얼추 인사를 드렸는데 빠뜨린 분들께 이메일이나 전화로 작별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만간’ 소주 한잔 하자는 이야기로 인사를 마무리하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조만간이 얼마나 흐른 뒤가 될지, 또는 정말로 소주 한잔을 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간 여러 차례 부서이동을 했지만 이번처럼 여운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번 인사가 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야 하는데 꼬리가 길어선지 자잘자잘하게 계속 출판면에 흔적을 남겼다. 지난 토요일자엔 나의 인사이동으로 연재가 끝나게 되는 ‘책동네 산책’ 마지막회를 썼다. 이 코너는 원래 전임 출판담당 선배가 시작한 코너였는데 내가 바통을 받아서 써왔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 출판을 담당할 선배는 이 코너가 오래 되어서인지, 다른 생각이 있는지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세계일보에서 같은 이름의 코너를 만들어서 출판계 사람들이 짤막하게 쓴 글들을 싣기 시작하기래 비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경향판 '책동네 산책'은 사라지게 되므로 세계일보가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2주마다 한번씩 이 코너를 이어가면서 2주의 시간이 그토록 빨리 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잡글이라도 쓸 때는 괴롭지만 써놓고 보면 그럭저럭 보람이 남는 법이다. 갈무리를 하면서 전에 썼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니 지난해 4월17일자에 처음 쓰기 시작해 그간 45꼭지를 쓴 것으로 나온다. 게중엔 이 블로그를 개설한 동기를 소개한 것도 있었다.

지난주 인터넷에 블로그 계정을 하나 텄다.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계정을 텄다’인 것은 일단 공간을 확보했을 뿐 아직 ‘공사 중’이란 뜻이다. 블로그 개설이 처음은 아니다. 몇년 전 기자들에게도 블로그 바람이 불었는데 이때 만들어 제법 진지하게 글을 몇개 써서 올렸지만 얼마 안가 그만 뒀다.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각 글이라도 메모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출판계 사람들을 만날 때 파워 블로거나 블로그 세계의 현안을 모르면 머쓱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로쟈가 뭐뭐라고 썼던데…”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내가 “예? 무슨 ‘쟈’라고요?”라고 되묻고, 상대방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상황을 말한다. 그 순간 ‘나이도 젊은데, 더구나 기자라는 사람이…’라는 상대방의 속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개설엔 어떤 압박감 같은 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6월27일자 '책동네 산책' 중에서)

 전에 출판담당 기자로서의 즐거움, 행복 같은 것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하튼 이렇게 해서 나의 ‘공식적인’ 일기도 끝이 났다. 그래도 손가락 품을 들여 블로그를 운영하는 습관은 남았으니 건진 것은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 블로그 컨셉과 내부 인테리어도 좀 바꿔야 할텐데 더 바빠지기 전에 아이디어를 좀 짜내야겠다. 아! 춥다.

[책동네 산책]읽는 행위는 계속될 것

“2010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군요. 달력이란 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시간에 금을 그어놓은 것에 불과한데 참 묘해요. 흘러가는 시간은 구분선이 없잖아요?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것은 따지고 보면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46억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매일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각별한 감정에 빠집니다.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 농경사회에서 살면서 각인된 본능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래도 연말을 핑계삼아 자주 못 만난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잘한 것, 잘못한 것을 따져보기도 하고 좋잖아요. 아마 연말을 가장 반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서점이나 출판사 사람들 아닌가 싶어요. 서점가는 12월에 들어서자마자 일찌감치 송년 분위기에 돌입했더군요. 인터넷 서점마다 분야별로 ‘올해의 책’ 이벤트가 한창이더라고요.”

“다른 문화상품들, 예를 들어 영화나 음악도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이 열리긴 하지만 책처럼 연말을 시끌벅적하게 보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독자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책’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까지 다양하더군요. 1년에 3만~4만종의 단행본이 나온다는데 연말 이벤트를 통해서나마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것이겠지요. 2009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1년에 평균 12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2010년에 ‘대한민국 평균인’에 들어가셨는지요?”

“턱걸이는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샌델 얘길 하길래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어봤고,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쉽게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천안함 사건이나 월드컵처럼 독서를 방해하는 사건이나 이벤트가 워낙 많아서 독서량이 전체적으로 줄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1년에 12권을 읽는다는 건 한 달에 한 권꼴로 읽는다는 뜻인데 이런 얘길 들으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 놀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면서요. 제가 보기에 독서도 양극화 현상 같은 게 있지 않나 합니다. 읽는 사람은 더 많이 더 깊게 읽는 반면, 읽지 않는 분들은 점점 더 독서와 멀어지는 현상 말입니다. 특히 디지털 멀티미디어를 일찍부터 접해온 젊은층은 ‘물질’로서의 책에 이전 세대보다 덜 친숙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확산될 전자책이 이들의 독서율을 높여줄지 관심거리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변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행태가 많이 바뀐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란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옛날에 책장 사이에 은행나무 이파리나 나팔꽃잎을 끼워서 말려보신 기억이 있으시죠? 저는 그게 단순히 멋으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책벌레를 막아주는 효능이 있대요. 그런데 이제는 책장에 나뭇잎 넣어서 말리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디지털 시대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멋과 낭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독서도 그렇습니다. 전달하는 매체의 모양이 달라질 뿐 ‘읽는 행위’는 계속되리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낙관론자인 셈입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네요. 아쉽지만 제가 책동네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책동네 산책’ 코너도 2010년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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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사못회전 2010.12.27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여의도 출근? 아쉬 마음도 들지요? 곧 뵈어요. 삼겹살로 환송해 드릴게요.

책동네 산책을 작년 4월부터 썼는데,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돌아가신 분이 세번째로 주제로 올랐다. 다들 책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분들이어서 피해갈 수 없었다.

리영희 선생하고는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이 좀 있다. 신입기자 시절 국제부에서 근무했는데 아프간전에 관한 기사를 보고 리 선생께서 칭찬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감열지 팩스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손수 칭찬하는 메세지를 써서 문화부 팩스로 보내셨다. 문화부 선배가 기념으로 갖고 있으라며 주셔서 고이 보관했는데 얼마전 보니 오래되서 그런지 글씨가 지워져 버렸다. 감열지는 오래 놔두면 그렇게 되나보다.

선생을 직접 뵐 기회도 있었다. 2003년 가을 즈음 선생 댁으로 찾아갈 일이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이 연재중이던 '실록 민주화운동'의 한꼭지가 <전환시대의 논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료사진을 구하려 찾아뵌 것이었다. <역정>을 들고가서 사인을 부탁했더니 거짓말 안보태고 정말로 입이 귀에 걸리시는 모습이었다. "아니 이거. 아직도 이 책이 나오나?"라면서 뇌졸중 때문에 불편한 팔로 사인을 해주셨다.

출판계 주변을 얼쩡거린지 1년8개월. 이래저래 낯을 익힌 분들이 적지 않다. 그중엔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 분들도 적지 않은데 ‘정식’ 인사를 드리지도 못하게 출입처를 옮기게 됐다. 좋아서 기자라는 직업을 하고 있지만 몇번 겪었어도 이럴 땐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격주마다 쥐어짰던 책동네 산책도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 한다. 다음주쯤 2010 송년 지면에 고별 칼럼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 블로그에 출판계 분들이 알음알음으로 들어와 보신 것으로 안다. 그간 내가 쏟아낸 주제 넘은 소리들을 귀엽게 봐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책동네 산책]리영희처럼 읽고 생각하기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상적 은사’ 또는 ‘의식화의 원흉’이 그에게 상투적으로 따라붙었던 수식어다. 정반대의 뉘앙스이지만 이런 수식어는 대체로 그가 쓰고 말한 것들에서 유래한다. 기자로서,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선생은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이 남긴 글들만 생각하기 쉽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글을 쓰기 위해 그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읽고, 궁리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는 것이다.


선생은 환갑을 몇 년 앞둔 88년 <역정>(창비)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오래전 읽는 이 책에서 내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모두 ‘읽기’에 대한 선생의 집념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나던 시절 선생은 안동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선생은 집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언제인가 징역을 살 때는 학창시절에 하다 만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가족에게 <레 미제라블> 원서를 넣어달라고 해서 읽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내가 기자가 된 것은 그가 현직기자에서 물러난 지 30년 가까이 흐른 뒤이지만 ‘기자 리영희’가 남긴 전설은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통일원 자료실’ 얘기일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과거엔 기자 또는 학자라고 해도 북한 또는 공산권에서 나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북한 관련 연구자가 통일원 자료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자기가 열람하는 자료마다 ‘리영희’란 사람이 앞서 열람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유심히 봤더니 거의 모든 자료의 열람카드에 리영희라는 이름이 써 있었다고 한다. <리영희 평전>(책보세)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자신이 그간 쓴 현대사 인물에 관한 10여권의 평전을 선생이 모두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까지 지적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글을 쓰거나 말하기에 앞서 ‘팩트(fact)’부터 챙기는 선생의 습성을 보여준다. 선생의 평론집 <스핑크스의 코>(까치)에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바쁘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96년에 쓴 글인데 젊은 여성들이 소비주의에 휘둘리는 세태를 꼬집는 내용이다. 선생은 그 해 겨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죽부츠가 크게 유행한다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들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결혼식 참석차 명동에 나간 김에 가죽부츠의 인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길 한쪽에 서서 지나가는 여성 20명의 구두를 살폈다고 했다. 그 결과 8명이 가죽장화를 신었더라면서 40%라는 수치를 도출한다. 이처럼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글에서조차 선생은 근거를 제시하고 싶어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선생의 글들은 차분한 분석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웅변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사평론집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오래됐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 <스핑크스의 코>처럼 십수년 전 나온 선생의 평론집은 지금 읽어도 시의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우리가 선생에게서 ‘리영희처럼 쓰기’뿐 아니라 ‘리영희처럼 읽기’와 ‘리영희처럼 생각하기’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201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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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기엄마 2010.12.15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읽는다는 거 정말 힘들지요. 애기엄마의 경우 동화책은 많이 읽지만요^^ 문화부를 떠나신다니 안타깝네요. 정치부에서도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아카넷이 번역출간한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의 맨 앞에는 아래 글에서도 인용한 것처럼 매우 재미난 편집자의 서문이 달려 있다. 당시는 내가 출판담당을 하기 전이었고, 출판 편집자라는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매우 인상깊게 남아 있었고, 출판담당을 하고 난 뒤 편집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길 몇번 꺼낸 적이 있었다. 아래 글을 쓰려고 책을 다시 꺼내서 편집자 서문을 훑어봤는데 다시 봐도 역시 흥미진진했다.

[책동네 산책]전자출판시대의 편집자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 10점
이사야 벌린 지음, 박동천 옮김/아카넷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박동천 옮김, 아카넷)을 책장 한구석에서 다시 꺼내볼 생각을 한 것은 알고 지내는 출판 편집자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날 어느 작가와의 출판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꽤 유명한 그 작가는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10년 전 책을 한 권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원고가 나오지 않았다. 지루한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사이 작가는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냈다. 편집자는 자신이 입사하기도 전에 맺어진 계약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강하게 채근한다는 차원에서 계약 해지를 언급했더니 당장 그러자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작가는 10년 전 받은 계약금을 출판사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이자를 쳐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편집자는 작가에게 화를 내거나 흉을 보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쉽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소주 한잔을 권하면서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 얘기를 꺼냈다. 국내에 <자유론>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 출간된 벌린의 책은 1969년 처음 나온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을 기반으로 하는데 2002년 수정증보판을 번역했다. 벌린 얘길 꺼낸 것은 자유에 관해 그가 내세운 유명한 개념인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를 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벌린 사후에 나온 <자유론>의 맨 앞에 편집자 헨리 하디의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은 편집자의 숙명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하디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 나오기까지의 지리한 우여곡절을 자세하게 밝혔다. 1909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벌린은 그의 가족이 러시아를 거쳐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았고 옥스포드의 교수가 됐다. 그는 울프선 칼리지 초대 학장, 영국 학술원 회장 등 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다가 1997년 작고했다. 벌린이 자신의 저술에 대해 보인 극도의 엄밀성과 게으름은 출판사와 편집자들을 괴롭혔다. 벌린을 사사했고 벌린의 저술에 관한 위탁관리자 가운데 한 명인 하디는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에 보관돼 있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에 관한 자료철은 좌절, 오해, 이중적 화법, 우유부단, 변덕, 비현실적 기대 등으로 가득 차 있는 비화의 보고와 같다”고 말했다.

논문을 모아 단행본을 내자는 아이디어가 벌린과 출판사 사이에서 1953년 거론되기 시작한 이래 16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책이 나왔다. 지연과 독촉, 태만과 읍소, 사과와 협박 등은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으레 오가는 것이지만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의 경우 상상을 초월한다. 벌린은 서문을 보내놓고 철회하기가 다반사였다. 이미 인쇄기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책의 편제를 바꿔달라고 할 정도였다.

전자책 시대, 자가출판(self-publishing) 시대가 목전에 도래하면서 출판 편집자의 역할과 영역이 좁아지거나 재조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매체의 성격이 달라지므로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작가 뒤에서 대작 또는 명작의 탄생을 돕고 지휘하는 편집자의 역할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고집불통, 때로는 응석받이 같은 저자 벌린을 편집자들이 인내하면서 적절하게 컨트롤했기에 자유주의의 현대적 고전으로 평가받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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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udra47 2010.11.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등 속에나 묻혀 있는 수고를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7~8년 전쯤이다. 외부필자들이 쓰는 '민주화운동 실록' 연재물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민주화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므로 옛날 자료들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자료 찾는게 항상 큰 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우리 회사 자료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2000년대 이전의 사진들은 인화가 되서 주제별로 캐비넷에 들어 있었다. 이제는 상당히 고전적인 모습이 돼버렸지만 흑백의 사진들을 한장씩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런 사진들을 넘겨다보면 말로만 듣던 '보도지침'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알겠지만 일명 '구리스펜'으로 불리는 빨간색 색연필로 사진 위, 또는 뒷면에 사진이 신문에 실릴 당시 제작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확한 문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국'의 지시사항으로 보이는 것들이 메모돼 있는 사진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몇년전 정부 부처를 출입하던 시절, 문공부에서 오래 근무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 어느 공무원은 '사진과 기사가 게재될 크기에서부터 제목에 들어갈 문구까지 일일이 지시하곤 했다'고 내 앞에서 회상했다. 그 말투에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아 황당하면서도 적잖이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작년에 <책의 공화국에서>란 책을 낸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김 대표와 통화를 길게 한 적이 있었다. 불온서적 판매 금지, 압수 등등의 일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가 되고 난 다음에 자신이 만든 책들을 트럭으로 실어가버렸던 문광부에 그 책을 돌려달라고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책을 되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분풀이, 앙갚음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에게서 뺏어간 책들을 정부가 보관하고 있을리는 만무하다. 여하튼 판매금지, 회수 및 압수, 입소문, 지하서점에서의 판매라는 현상이 반복됐다고 한다.

이 정부 들어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허용 반대 촛불시위, 미네르바 사건, 천안함 사건 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가끔은 대놓고 비판할 자유를 가졌다는 기자들도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하물며 일반인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정말로 분개하는 것은 이른바 보수언론들의 행태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이념적 입장에 관계 없이 언론 입장에선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작금의 현실에선 오히려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누르라고 부채질 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많다.

따지고보면 언론출판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기록'이 다 남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른바 '보수언론'에서 일한다는 사람들도 이걸 잘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얼굴의 두께와 권력의 강도는 정비례한다.

[책동네 산책]권력자만 모르는 ‘억압의 역설’

‘지난 9월30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센터의 초청을 받아 인천공항에 도착한 마쓰모토 하지메씨는 입국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하고 다음날 오전 추방당했습니다. 그의 유쾌하고 기발한 소동과 뛰어난 글발에 매료당한 도서출판 이루는 그의 저작물에 담긴 반자본주의적 속성을 간파하지 못한 바, 그의 저서 <가난뱅이의 역습>이 단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개념 없이 번역 출간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 하여 도서출판 이루는 지난 과오를 씻고자 <가난뱅이의 역습>, 이 몹쓸 책이 죄다 팔려 없어질 때까지 무기한 반값할인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최근 인터넷 서점의 이벤트 코너에 내걸린 재기발랄한 홍보문구다. 주인공 마쓰모토는 일본에서 공권력을 교묘한 방식으로 골탕먹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학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구내 식당에 난입해 데모를 한다거나, 자신이 선거에 직접 입후보한 다음 헤비메탈 밴드를 동원해 극우인사의 유세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록본기 힐스를 불바다로!’라는 과격한 유인물을 뿌려 놓고 노상에서 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왔었고, 경향신문과 인터뷰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행사장 주변에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서울 도심을 걸레로 닦다시피 깨끗이 청소하며 열심히 준비해온 정부 당국으로선 마쓰모토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법도 하다. 행여 그가 도쿄에서 한 것처럼 서울 도심에서 청국장을 끓이며 시위라도 하면 큰일일 테니 말이다.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정부 당국이 간과한 것이 있다. 출판사는 마쓰모토가 다시 방한하면 각종 이벤트를 통해 책을 좀 팔아볼까 하는 기대를 잔뜩 가졌다가 무산되자 고심 끝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정부 당국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마쓰모토의 청국장 끓이기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목표는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뉴스 인물로 띄워줌으로써 그가 책에서 설파한 ‘유쾌하고 기발한 체제 전복 테크닉’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불씨를 더 키운 셈이다.

출판인들이 군부독재 시절을 회상하며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게 있다. 책이 금서로 지정되면 당장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오히려 입소문이 나면서 책이 암암리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도와주자는 심리도 있었을 테지만 뭣 때문에 금서가 됐을까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책이든 영화든 보지 말라고 하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궁금하다. 정부 당국은 이런 역설을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무턱대고 칼날 휘두르기 좋아하는 정부 당국은 그렇다 치자.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국방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군인들에게 읽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도 안쓰럽다. 알다시피 이 사건의 단초가 됐던 2008년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 23종 목록’은 오히려 여러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그 목록에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포함되는 ‘영광’을 안았던 장하준 교수는 이제 국방부 ‘도움’ 없이도 자신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데 권력자들만 그걸 모른다. (2010.11.13)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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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면 책과 출판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 곧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업계에 있는 당사자들이니 이 주제에 관해 고민을 하고 어떻게 나갈 것인가 탐색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더구나 '된다, 된다' 하던 책의 디지털화가 눈앞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들이 많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특히 올해는 상반기에 천안함 사태, 지방선거, 월드컵 등이 줄줄이 알사탕으로 이어지면서 출판사들의 실적이 부진했던터라 그들에겐 차가워지는 가을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다보면 디지털 세상에서의 책의 미래에 대해 대비되는 입장과 마주치게 된다. 디지털 세계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며 적극 나서는 축이 있는가 하면, '준비는 해야 하는데...'라고 걱정하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축이 있다. 그런데 이건 자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출판사들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지만 규모가 적은 출판사들은 의지와 생각이 있어도 그닥 쉽지 않은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출판물 유통시장 붕괴는 심각할 정도라는게 제3자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출판사 대표들이 가끔 인사차 전화를 걸어와 대화를 하다보면 인터넷 서점을 규탄하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최근엔 리브로가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면서 출판사들을 꽤나 종용했나보다. 그쪽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출판사들이 그가격에 책을 댔기에 그런 할인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질문에 그들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쉰다. 개별 출판사들이 이익을 위해서, 혹은 생존을 위해서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자기네 살을 갉아먹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라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가 잦은 편인데, 이래저래 한숨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주름살이 느는 것 같다.

[책동네 산책]출판계의 가을 ‘산사태’ 
 
#장면1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풍문고와 알라딘이 출판사들에 수억원대의 판촉비용을 떠넘겼다며 시정을 명령했다. 자체 판촉행사를 하면서 출판사들에 떠넘긴 비용이 각각 수천만원과 수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상거래의 기본인 서면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사실도 적발됐다. 거래가격이나 대금지급방법, 반품조건 등이 명시되지 않으면 출판사의 목줄을 쥐고 있는 대형서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장면2 55년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의 문우당서점이 이달 말 폐업한다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부산일보는 부산에서 20여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어느 사장이 “십수년 전 월세 100만원에 월 매출이 1000만원이었다면, 지금 월세는 250만원으로 올랐으나 매출은 그때의 7분의 1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장면3 요사이 독서가들 사이에선 인터넷 서점 리브로가 화젯거리다. 이 인터넷 서점의 주인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정가제를 적용받지 않는 구간도서를 50~70% 싸게 판다면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대규모 할인 덕에 그간 점찍어 뒀던 책들을 기분좋게 ‘질렀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단골손님들이 줄지어 리브로로 이동하고 있는 광경을 보는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속이 탄다.

#장면4 온라인 서점의 폐해를 줄기차게 지적해온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최근호에서 어느 온라인 서점 출신 인사에게 들은 비판을 소개했다. “온라인 서점이 어떻게 혼자서 반값 할인할 수 있느냐! 출판사가 35~40%로 책을 공급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과다할인, 경품제공 등을 문제삼아 온라인 서점을 고발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과도한 이벤트도 출판사 영업자들이 온라인 서점을 강요해 벌이는 것이지 출판사가 원칙을 지키면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장면5 “대한출판문화협회에 2010년 1~9월 납본이 의뢰된 도서를 집계한 결과 매년 상승하던 신간 발행 종수가 지난해에 비해 7.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출판사의 신간 발행 종수를 비롯해 2000년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번역 출판 또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줄어들은 것으로 집계됐다.”(대한출판문화협회 보도자료)

‘독서의 계절’이라는 2010년 가을 벌어진 일들이다. 출판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문턱을 넘어섰다.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이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자는 더욱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들은 “올해 가을은 정말 힘들다”며 아우성들이지만, 그들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전체의 이득을 위해 눈앞의 작은 이득을 참지 못한 대가는 컸다. 소비자들로선 어찌됐든 책을 싸게 살 수 있으면 좋다.

그런데 2010년 가을을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사태 소리’처럼 들린다. 산사태를 일으킨 사람은 그 책임을 추궁당해야 한다. 문제는 산사태는 산사태를 일으킨 사람만 덮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0년 가을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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