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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럴 기회도 사라져 버렸지만 나도 회사에서 내근을 할 땐 인왕산 자락을 종종 산책하곤 했다.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가기도 했다. 직장 근처에 이렇게 좋은 산책길이 있고, 짬을 내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리고 회사 구내식당이 있는 9층 옥상에서 보면 멀리 인왕산이 건네 보인다. 참 좋은 산이다.

그런데 누구는 ‘참 좋은 산’이라고 감탄만 하고 지나가는데 누구는 그냥 산책만 하거나 등산만 하지 않고 열심히 생각을 길어올려 일기를 썼다. 이 책을 쓴 궁리의 이갑수 대표의 내공에 비하는 나는 한참 아래다. 인왕산 자락 산책의 목적을 그날의 스트레스 해소와 다리운동에만 뒀던 게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기사, 쓴다고 해도 그 양반의 내공에 훨씬 못미쳤겠지만. 이갑수 대표는 몇번 만난 적이 있는데 참 맑은 분이다. 장난기도 있다. 리뷰 기사에서 썼지만 그가 운영하는 궁리출판사 사무실은 왠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나오는 출판사 사무실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신혼인 박중훈이 싸온 도시락을 열면 완두통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배들이 놀린다. 그래도 신랑은 좋다고 헤벌쭉이다. 이런 분위기 말이다.

여하튼 이 책을 보면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진심이다. 일기는 커녕 주기(週記)도 쓰기 어려운 게으름뱅이도 꿈을 꾸는 건 자유다.

손을 댄 책 몇권을 가방에 넣고 다니고는 있으나 이 책이 올해에 제대로 읽은 마지막 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의 일기로 한해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웬지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나의 사랑, 나의 인왕산

신인왕제색도 - 10점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궁리
인왕산 일기 - 10점
이갑수 지음/궁리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간 텔레비전에서 여러번 방영됐고, 주인공 중 한 명이 저세상 사람이 됐을 정도로 오래된 영화이지만 한편의 동화처럼 예쁘고 낭만적이다. 아무리 신혼부부에 관한 이야기라지만 어찌보면 닭살이 돋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영화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았던 것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를 꿈꾸는 출판사 직원으로 설정된 덕도 있었을 것이다.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대개 출판사 직원은 일반 샐러리맨에 비해서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있고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의 출판사 사람들은 이런 얘기에 열이면 열 모두 손사래를 치지만 말이다. 그런데 <빛으로 그리는 신인왕제색도>와 <인왕산일기>를 보면 그런 고정관념이 100%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은이는 서울 경복궁 뒤편에 자리잡은 인왕산 발치 통인동에서 출판사를 운영한다. ‘추석 차례상 앞에서 궁둥이 쳐들며 절을 한’ 게 50번을 넘었다니 나이 드실 만큼 드신 양반인데 바람이 나서 바람난 얘기를 새살새살 책으로 풀어냈다. 대상은 바로 인왕산. 점심시간에 자신이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게시판에 메시지를 남긴 다음 DJ가 달아놓은 댓글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모습은 엔간히 철이 든 사람에겐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가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태어난 날 비가 왔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어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그날 비가 왔습니다. 영점사미리가 왔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는 큰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흉을 보려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하는 얘기다.


그는 지난 1년간 인왕산을 바라보며 쓴 글을 월·수·금요일에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화·목·토(일)요일에는 인왕산에 올라 남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썼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인왕산을 올랐고, 오르지 못하는 날은 아래서 올려다 보았다. 사진을 찍은 이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 출판사의 영업부장이다. 그는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렸다는 장소(‘인곡정사’가 있던 자리·현재는 옥인동 군인아파트)를 찾아내 일주일에 3번, 1년간 인왕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담배가게 주인이 13년 동안 매일 아침 자신의 가게 앞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의 영화 <스모크>를 흉내낸 것이다.

지은이는 매일 아침·점심·저녁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안부를 여쭌 얘기며, 인왕산을 발로 밟으며 건져올린 추억과 사색들, 통인동 골목과 통인시장을 오가며 만난 이웃들 얘기들을 맛깔나게 풀어냈다. 그가 좋아하는 시, 판소리와 국악, 막걸리 얘기가 간간이 등장해 감칠맛을 더한다. 많을 땐 1년에 100번 넘게 오르는 인왕산은 그에게 ‘그 분’이다. ‘그 분’은 어떨 땐 ‘임’이고, 어떨 땐 신령한 존재이다. “나는 인왕산에 오를 때마다 승천하다 말고 잠시 인간 세상에 웅크리고 있는 용의 가쁜 숨결소리를 듣는다.”(2010·7·9) 지은이는 인왕산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본다. 이 사실이 몹시도 신기하다. 나는 너의 옷을 입고 너는 나의 옷을 뒤집어 입고 있다. 이 사실이 몹시 우스꽝스럽다.”(2009·11·18) “나 죽고 난 뒤에 나보다 오래 사는 이가 있어, 혹 그가 나를 추억하면서, 야 인왕산 자락에 살던 그 양반 성질이 얼마나 쌀쌀맞았노. 그 성질머리가 꼭 최근 이 겨울 날씨 같지 않았겠나, 그쟈. 해주신다면 참 고맙겠네, 참으로 고맙겠네.”(2010·1·15)

좋아하는 막걸리 몇잔에 흥이 오르면 판소리 한자락을 뽑아내는 그이지만 실은 무척이나 꼼꼼하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명편집자 출신이다.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젊은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애정은 온통 메말라 버석거리는 세상과 견주어 빛날 수밖에 없다. “저녁 6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그널 음악이 울리자 모두들 퇴근 준비를 했다. 통인시장에 들러 깎은 밤 한 됫박을 사고 큰길로 나와 경복궁역으로 걸어가는데 동대문 쪽 하늘에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도 보름달이었다. 달님한테는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노릇노릇 잘 구운 빈대떡처럼 아주 맛있게 보였다. … 아는 사람 만나면 저 향기로운 달 좀 보라며 소리치고 싶었는데 아는 이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2010·3·30)

2010년이 저물어 간다. 지은이는 2011년에도 인왕산에 오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흉내내어 이렇게 말해볼까. 나에게 늙음이란 더 이상 저 인왕산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2009·11·25) 이 책이 12월에 출간됐기 때문일까? 남의 일기를 보면서 ‘내가 올 한해 무슨 일을 했나’, ‘내년엔 무슨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옳거니! 어릴 적 해가 바뀔 때마다 했던 결심,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한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내년엔 꼭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2010.12.18)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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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존 레논이 죽은지 30년째 되는 날이다. 오늘자 여러 신문에, 그리고 지난 며칠간 여러 지면에 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공교롭게도 눈이 많이 내릴 것이란 오늘은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시인이자 대중음악평론가인 성기완은 <레논 평전> 추천사에서 레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중학생이었던 그는 냉랭한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친구로부터 “존 레논이 총에 맞아 죽었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성기완은 “1980년이었고 한국에서도 까딱하다간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의 차려 자세는 더욱 뻣뻣해졌다. 그 간극을 똑똑히 기억한다. 조회와 차려 자세와 훈시말씀과 존 레논 사이의 거리를”이라고 회상했다.

<레논 평전>의 저자 신현준은 레논이 살아있었다면 올해로 70살이 됐을 것이면서 그가 만약 살아있더라도 왕년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동료였던 폴 메카트니, 또는 밥 딜런, 믹 재거가 70살이 가까워 오지만 누리고 있는 인기에 못미쳤을 것이란 얘기다. 레논이 ‘모든 사람에게 원만하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대화와 소통에 무한한 영감 ‘레논의 위대성’

레논평전 - 10점
신현준 지음/리더스하우스

정식으로 데뷔하자마자 세계적인 스타로 뛰어오른 비틀스는 1963년 11월 영국 여왕과 공주가 참석한 ‘로열 버라이어티 쇼’에 나갔다. 존 레논은 마지막 곡인 ‘트위스트 앤드 샤우트’를 소개하면서 “싼 좌석에 앉으신 분들은 모두 손으로 박자를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로열박스를 향해 꾸벅 인사한 뒤 “그 밖의 분들은 몸에 차고 계신 보석을 짤랑짤랑 흔들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날의 해프닝은 노동계급 출신의 신예 록 스타가 날린 삐딱한 농담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레논의 의식세계가 이날처럼 주류계급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후 그의 삶은 평탄했을지 모른다. 레논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사이에서 끊임없이 불화를 겪으면서도 ‘이상’을 향한 꿈을 놓지 않았다. 이런 갈등을 여느 대중스타들처럼 적당히 숨기지 않고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했다.

레논은 80년 12월8일 총격으로 사망했다. 2010년은 그가 사망한 지 30주기가 되는 해이자, 그가 살았다면 고희가 되는 해이다. ‘신화’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레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빽판 키드’를 자처하는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가 써내려간 <레논 평전>은 ‘진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체제·반종교·반자본주의 메시지가 강하게 담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이 TV 상업광고의 단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은이는 “레논의 삶에서 추출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소재들은 상업적 스타덤으로부터 아방가르드 예술, 혁명적 좌파 정치를 거쳐 페미니즘적 일상생활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논의 위대성은 그가 시공을 초월하는 음악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음악과 인생을 통해 각자의 상상을 만들어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2010.12.4)

**존 레논 30주기를 음미할 수 있는 문화상품 관련 경향신문 기사(링크)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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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방블르스 2011.04.18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레논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라기 보다는 연대기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까만주름 2011.04.24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아마도 레논 팬이신 모양입니다. 전 레논에 대한 사전지식이 그저 상식 수준이어선지 꽤 재밌게 봤습니다. 국내 저자의 책이라 점수를 더 후하게 줬을 수 있겠습니다.

끊임 없이 인용되고, 재해석되고, 변주되는 인물 프로이트. 다시 또 프로이트다. 프로이트가 얼마나 우리 일상에 가까이 들어와 있는지에 관한 일화 하나. 내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지옥의 문'이 열린다고 농담하곤 한다. 여하튼 초등학교에서 취학전 아동 학습법 비스무리한 팸플릿을 하나 나눠줬나보다. 주말에 집에서 뒹굴대다가 이 자료가 눈에 띄길래 펼쳐봤다.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성욕기 등으롷 이어지는 성적 발단단계와 단계별 특성에 대한 설명이 앞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대학 시절 내가 다니던 학과의 학생회실 가까이에 심리학과 학생회실이 있었다. 동아리에서도 심리학과 ‘학우’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프로이트 얘길 하면 웃으면서 자기네도 프로이트 보고 심리학과엘 왔는데 수업시간에 프로이트 얘길 하면 교수님이 화를 낸다고들 말했다. 심리학에선 프로이트는 심리학사의 한 장면을 차지하는 인물일뿐 현대 심리학에선 프로이트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프로이트보다는 실험용 쥐와 더 가까웠다.

이 책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말 그대로 프로이트를 찾아왔던 환자들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중간에 프로이트와 융, 라캉에 관해 설명한 챕터가 들어있다. 얼마전 라캉에 관한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 모음이 출간되기도 했거니와 요사이 각광받는 서양 철학자들이 대체로 라캉을 즐겨 인용한다. 슬라보예 지젝이 그중 하나다. 그래서 프로이트와 융, 라캉에 관한 해설이 개인적으로 매우 유용했다. 푸코나 데리다 등 서양 철학자들은 또한 동음이의어, 이음동의어, 어원 등을 가지고 어떤 현상이나 개념 등을 설명하길 즐기는데 이 또한 프로이트가 앞서서 시도했던 작업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프로이트를 키워드로 한 책을 크게 소개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주에 프로이트를 키워드로 하는 책이 국내 저작이 또 나왔다.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웅진지식하우스)인데 우리 고전 속 등장인물의 심리를 프로이트 이론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런 경우 안타깝다는 말 밖에. 고전을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같은 출판사에서 최근 나왔던 <전을 범하다>와도 맥이 닿아 있는 듯 하다.


'의사' 프로이트의 맨얼굴
-탐정처럼 환자 이야기속 작은 단서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 찾아내

프로이트의 환자들 - 10점
김서영 지음/프로네시스(웅진)

엘리자베스라는 젊은 여성이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찾아와 양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었다. 최근 그녀의 아버지와 언니가 사망했고,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다. 오래전 아버지가 쓰러지자 간병을 하던 엘리자베스는 어느날 다리에 통증을 느꼈으나 충분한 휴식으로 나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엘리자베스는 결혼한 두 언니네 부부를 포함한 가족들과 피서를 가는데 다시 다리 통증을 느낀다. 피서에서 돌아온 후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그러던 중 둘째 언니가 죽었다.


프로이트는 그녀에게 자신의 증상에 관해 사소하더라도 떠오르는 것들을 말해달라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밤에 아버지가 부르면 맨발로 침대에서 찬 바닥으로 뛰어내려야 했기에 항상 발이 차갑다고 느꼈던 것을 기억해냈다.

어느날 이웃 청년과 파티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 날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사실도 말했다. 피서지에서 둘째 형부와 단둘이 산책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한 언니가 부럽다’고 느꼈던 것도 떠올렸다. 그리고 둘째 언니가 죽었을 때 ‘언니가 죽었으니 이제 내가 형부와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을 스쳤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엘리자베스의 ‘의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죄책감이 ‘무의식’에서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망각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기억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스트레스가 마음의 병을 낳았고 이는 몸의 병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분석이었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환자들 스스로가 ‘자유연상’을 통해 진실의 문에 다가가도록 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프로이트는 그녀가 어느 파티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위키피디아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라는 말로 프로이트에 관한 설명을 시작한다. 그렇다! 프로이트는 52년 동안 주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환자들을 상대했던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면서 상세하게 기록해 나갔다. 이렇게 축적된 사례들이 영어판 기준 8000여쪽에 이르는 프로이트 전집에 오롯이 담겼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사실을 까먹고 정신분석학자로서의 프로이트만 떠올리곤 한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프로이트 전집에서 환자들의 이야기 150가지를 추출했다. 프로이트를 키워드로 나온 책들은 부지기수이지만 그가 분석한 환자 사례들만 모은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정립한 개념과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례들을 프로이트가 어떻게 분석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문 연구자가 전집에 방대하게 펼쳐진 사례들을 1권으로 요령껏 압축했기에 프로이트 입문서로 제격이다.

책에는 도라라는 가명으로 불린 여성 히스테리 환자, 쥐를 이용한 고문 행위를 두려워한 남성 강박증 환자(쥐 인간), 말을 무서워하는 아이 한스 등 많이 알려진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기본이요, 단순한 말 실수나 거짓말, 프로이트 자신에 관한 분석도 담겼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의사과학’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그러나 “정신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인간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키는 것”이라면서 “프로이트는 이러한 목표에 충실한 의사였다”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구체적인 정신분석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 기법들을 우선 나 자신의 말과 감정, 기억에 적용해 봄으로써 나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12.4)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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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4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까만주름 2010.12.14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누군가와도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타이밍이 안타깝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목과 소재로 보면 얼마전 나온 <전을 범하다>와 <프로이트의 환자들>과 중첩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책 한권 한권의 내용이다 다 제 생명을 갖고 있겠지만 인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죠. 앞으로도 재미난 책 만들어주세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여전히 옛날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출판사 이름으로서 ‘창작과 비평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창비’라는 이름이 쓰인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출판을 담당하기 전에는 ‘창비’가 그냥 ‘창작과 비평’ 또는 ‘창작과 비평사’를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알았다. 출판사 이름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창비’로 줄여서 개명한 게 한참 전이란다.

‘창비’란 이름에 관해 들었던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창비의 어린이 책 편집자로부터 들은 얘긴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단다. 출판사 이름을 묻길래 ‘창비’라고 했더니 “아, 나 그 출판사 안다”고 답하더란다. 반가워하는 편집자에게 이어서 들려온 소리는 “참고서하고 문제집 만드는 곳 아니냐”는 것이었다. 어라? 참고서? 문제집? 편집자는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가 ‘창비’란 이름을 듣고 머릿속에 떠올린 출판사는 ‘비상’이었던 것이다.

어정쩡한 세대인 나는 창작과 비평, 줄여서 창비에 대해 그닥 깊은 인상은 없다. 내가 문학평론 같은 것에 그닥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여러 계간지들이 시도됐으므로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었다. 다만 창비에 대해 그 명성은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캠퍼스를 누볐던 그 유명한 ‘창비 아저씨’ 정도? 귀 얇은 내 친구 녀석이 그걸 사가지고 하숙방, 자취방으로 끌고다니느라 고생께나 하는 걸 본 기억도 난다.

그런데 계간지가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른바 ‘종합 계간지’가 별로 남지 않았다. ‘녹색평론’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고, ‘황해문화’가 통권 69호를 기록중이다. 물론 이런저런 계간지, 특히 요사이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계간지들이 운영되고는 있는데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계간 ‘비평’이 지난해에 휴간 형식으로 사실상 종간됐고, ‘당대비평’은 이제 그 이름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한참 전에 사라진 ‘이론과 실천’이란 계간지도 있었구나! 창작과 비평이 기초체력을 보유한 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 대견하고 반갑긴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창비의 ‘시각’과 ‘입장’이 정답은 아닐 터인데 서로가 비평 혹은 비판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그룹이 만드는 계간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P.S. USB메모리에 담긴 디지털 영인본은 매우 강력하다. 목차와 필자만 일별하더라도 1960년대 이래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20만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창작과 비평’ 44년… ‘통권 150호’ 발행

창작과 비평 150호 - 2010.겨울 - 10점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창비(창작과비평사)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하 계간 창비)이 통권 150호를 발행했다. 1966년 1월 창간호를 낸 지 44년 만이다. 지난 2006년 창간 40주년 기념호를 내면서 ‘운동성의 회복’과 동아시아 차원의 매체간 연대를 내세웠던 계간 창비는 통권 150호 발간에 즈음해선 ‘창비사회인문학평론상’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사회인문학’ 비평가를 발굴·육성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적 인식과 현장의 실천 경험, 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을 추구하는 ‘창비표 글쓰기’를 확산시킨다는 취지다.

계간 창비는 현재 평균 발행부수가 1만2000여부, 정기독자가 9000여명이다. 한번 발행하면 2만부씩 나가던 1970년대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것이지만 다른 인문·사회과학 계간지들이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리지 못해 줄지어 자진 폐간한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초체력을 보유한 셈이다. 국내 계간지 가운데 독보적인 발행부수이며, 비판적 지식인 잡지로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편집주간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계간 창비의 성공비결에 대해 “ ‘창작과 비평’이라는 이름에 절묘하게 들어있다고 본다”면서 “창작과 비평이 결합돼 있으므로 양쪽의 독자들을 포괄할 수 있었고, 저희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비 통권 150호의 주요 아이템이 이 말을 뒷받침한다. 150호는 2000년대 첫 10년 동안의 한국문학에 대한 회고와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한 제언이 특집으로 마련됐다. 백승헌·심상정·이인영·이남주 등이 2012년 대선을 전망하는 대담도 포함됐다. 창간호부터 150호까지 전체내용을 USB메모리 하나에 담은 전자 영인본(20만원)도 출시됐다.


계간 창비는 처음부터 ‘저항’과 ‘참여’에 방점을 찍으며 출발했다. 칠순을 넘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스물 여덟의 패기만만한 평론가였던 시절 계간 창비를 창간하면서 이를 명확히 했다. “메마르고 대중의 소외와 타락이 심한 사회일수록 소수 지식인의 슬기와 양심에 모든 것이 달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식인이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만나 서로의 선의를 확인하고 힘을 얻으며 창조와 저항의 자세를 새로이 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하다.”(1966년 겨울 창간호)

백낙청 교수는 150호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의 주도성이 아주 강했던 잡지가 집합적인 지성이 작용하는 잡지로 진화해 왔다”면서 “창간호에서 밝힌 기대나 포부가 상당부분 실현됐다”고 말했다.

계간지는 1년에 4번 발행하므로 정상적으로는 150호를 내려면 37년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44년이 걸린 것은 초기 정착과정에서 형편이 어려워 합본호를 낸 적이 몇차례 있었고, 80년대 들어 폐간됐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간 창비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자리잡았고, 여러 논쟁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문화권력’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백낙청 교수는 “70~80년대에 문학작품을 진영논리로 평가해선 안된다고 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민족문학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꽤 소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0년대 들어 그런 것을 시정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창비가 줏대를 못 세우고 우왕좌왕한다고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영서 교수는 “창비가 신인발굴과 문학비평의 중요한 담론들을 만들어가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문학과 비문학의 두 바퀴를 굴린다고 했는데 잘 결합시켜서 해왔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창비는 인터넷이 대세를 이루는 매체환경 변화에도 나름대로 적응해 왔다. 호흡이 길고 늦을 수밖에 없는 계간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인터넷 칼럼 ‘창비주간논평’은 매주 시의성있는 쟁점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창비는 매년 주간논평을 골라 ‘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내고 있다. 계간 창비가 새롭게 기획한 창비사회인문학 평론상(상금 500만원)은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논쟁적인 글쓰기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백영서 교수는 “문학평론가를 발굴하는 공모는 많아도 사회인문학 비평가를 찾고 육성하는 일은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서 “주체적 담론 생산에 앞장설 신예평론가 발굴을 위해 공모전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2010.11.30)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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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지난 주말 각 신문 출판면들은 모두 <거의 모든 것의 미래>와 <사회적 원자>를 주목했다. 각각의 책은 큰 각 언론사 출판담당 기자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두 책은 모두 '과학서'이다. 읽기 전에 대강 예상은 했지만 읽어가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이 많이 겹친다. 인용된 연구 사례나 학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커스도 약간 다르고, 스탠스도 좀 다르다. 둘 가운데 하나만 고르기도 그렇고 해서 '책 대 책'이란 컨셉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2권을 동시에 읽고 비교해 보는 것 말이다.

문제는 분량이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는 본문만 450여쪽, <사회적 원자>는 250여쪽이었다. 이럴 때 쓰이는 말이 바로 '미친 척'이다. 미친 척하고 하루만에 두권을 읽고 원고지 10장 안팎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도전.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루 만에 읽은 책을 '완전히' 소화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겠지만, 나름 요약해서 소개하고 비교를 했어야 하는데 작업을 하다 만 느낌이다.

덕북에 지난 수요일 역시 새벽 3~4시가 되서야 집에 갈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미친 짓'은 해볼만 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측 과학'의 역사를 훑을 수 있었고(<거의 모든 것의 미래>), 네트워크 이론 및 복잡계 과학 등 최신의 물리학 이론과 실험을 일별할 수 있었다.(<사회적 원자>)

<사회적 원자>의 경우 출판사는 보도자료에서 인간사회에서 빈부격차가 생기는 것은 어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물리적?)으로 당연한 이치임이 밝혀졌다고 부각시켰다. 이탈리아 수학자 알프레도 파레토에 의해 이미 증명된 사안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오해나 이데올로기적 전용이 이뤄질 수 있어 주의해서 받아들일 필요하다고 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빈부격차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증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는 빈부격차가 자연스런 현상이므로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 별로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보수층에서 이런 식으로 전용할 수 있겠다. 이미 전용하고 있다. 반대로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는 자연스런 흐름이므로 인위적으로 평등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부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혹은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인데 왜 내놓아야 하느냐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은 과학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경험하고 목도했듯 과학 역시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두권의 과학책에서 내가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책 vs 책]아직은 결함이 많은 과학…그래도 가능성 있는 과학

거의 모든 것의 미래 - 10점
데이비드 오렐 지음, 이한음 옮김/리더스북
사회적 원자 - 10점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사이언스북스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는 “과학적 사고의 목적은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보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본다’는 것은 과학이 어떤 현상을 지배하는 규칙 또는 법칙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본다’는 말은 이렇게 밝혀낸 과학적 법칙이 다른 조건들이 모두 같다면 영원이 반복돼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쇳가루가 자석에 달라붙는 현상, 물의 온도가 일정한 정도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는 현상 등은 그 원리가 규명됐는데 보통의 상황에서 쇳가루는 언제나 자석에 달라붙고, 물은 0도 이하로 내려가면 무조건 언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말은 과학의 목적이 현상의 규명이자 미래의 예측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21세기 들어 인류가 경험한 굵직한 자연적·경제적 재난만 떠올려보더라도 과학의 예측력은 형편없거나 적어도 매우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이한음 옮김·2만5000원)와 <사회적 원자>(김희봉 옮김·1만5000원)는 이 질문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이룩한 과학적 업적의 파노라마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점성술사들로부터 시작된 예측이라는 작업은 피타고라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뉴턴·아인슈타인 등 인류 최고 천재들의 노고를 거쳐 학문으로 정립됐다.

그렇지만 이 책의 목적은 현대 과학의 예측력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미래의 3가지 분야인 날씨·건강·부(富)의 흐름을 설명하고 예측을 내놓지만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일기예보를 접하고, 전염병에 대해 배우며, 주가전망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매번 실망한다. 그럴 때마다 과학자들은 변수가 너무 많다거나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고 변명한다. 자신들의 예측모형과 방식은 문제가 없는데 부수적인 것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이다. 지은이는 과학자들의 사고방식, 기계론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방식이 문제라면서 예측모형 자체의 결함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원자>의 지은이 마크 뷰캐넌의 관심사는 경제학 등 기존 사회과학적 사고방식을 밀어내고 물리학적 방식으로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사회물리학’이다.

<사회적 원자>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를 하나의 물체에, 인간을 원자에 대입시키면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갓난 아이가 부자가 될지, 특정 기업이 얼마나 번창할지 알아낸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집단 사이의 사건들이 모였을 때 시장의 변동, 유행, 여론의 변화 등에서 나타나는 수학적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 세상도 물질 세계 못지않게 수학적인 정확성을 가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 부의 양극화 현상은 자연계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니 부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두 책은 모두 과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과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에까지 나갔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는 인간이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적절한 준비와 대응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지은이는 그럼에도 예측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적어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우리가 얼마나 미래 예측에 취약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원자>는 인간을 원자와 같은 수준에 놓음으로써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권을 내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인간이 물질세계의 원자와 같다면 자유의지,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뻐길 일은 아닌 셈이다. (20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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