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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게임하는 인간 호모 루두스 & 버스트 & 두뇌를 팝니다

지난주 <프리딕셔니어>에 이어 이번주에 게임이론 혹은 인간행동 예측에 관한 책이 3권이나 쏟아졌다. 게임이론은 개인적으로 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서 책이 나올 때마다 눈여겨 보고 있는데(다 읽는다는게 아니라 이런 책이 나왔구나 하는 정도), 비슷한 시기에 연관되는 주제의 책이 이처럼 몰려서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여름철 독서용으로 이 주제가 어울린다고 출판사들이 생각한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여하튼 미래를 점친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폰 노이만이 그랬고, 우리가 잘 아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시가 그랬다. <버스트>의 작가 바라바시 역시 프로필을 보아하니 '헝가리가 낳은 천재'라는 소릴 들을만 하다.
여하튼 이렇게 한꺼번에 나오셨으니 한바구니에 모시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세권을 혼자서 한꺼번에 감당하기엔 버거워서 <두뇌를 팝니다>는 선배에게 맡겼다. 기사에 물릴 그래픽이 고민이었는데 상당히 도식적인 방식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위키피디아를 통해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과 경제적 행위(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 원문이 그대로 올라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여기서 일단 수식을 캡쳐했다. 그리고 <버스트>를 상징하는 네트워크 도식을 하나 건지고, 그 다음엔 인간을 상징하기 위해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건졌다. 이제 이걸 적절히 합성해 달라고 편집자에게 요청했더니 편집자는 이걸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것으로 만들었다. 흑흑, 정말 빈곤한 상상력이다. 여하튼 2주 연속 게임이론 책들을 봤더니 좀 어질어질 하다. 그들의 구라빨이 장난이 아니다. 허기사 인간행동을 예측한다고 하는 천재들이니 오죽하겠는가.

철학자 칼 포퍼는 1959년에 쓴 에세이('예측과 예언')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 바로 예측의 꿈이다. 눈앞의 미래를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꿈, 그렇게 알아낸 지식에 맞게 정책을 조정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다. 우리는 일식을 아주 정확히, 그것도 아주 한참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혁명을 예측하는 것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포퍼는 곧바로 인간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괜히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고 답했다.(<버스트> 100쪽) 그러나 포퍼가 말한 꿈의 실현이 눈 앞에 와 있다고 믿는 이론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게임이론이다. 인터넷 네트워크의 확산과 함께 발달하고 있는 네트워크 이론도 인간행동의 과학적 예측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인간행동의 법칙규명을 모토로 내건 이론들의 과거·현재·미래와 이런 이론들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와 정책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나는 네가 할 일을 손바닥 보듯 알고있다


게임 이론을 통하여

게임하는 인간 호모 루두스 - 10점
톰 지그프리드 지음, 이정국 옮김/자음과모음(주)

 구 소련 태생의 미국 생화학자이자 유명한 공상과학소설가였던 아이작 아시모프(1920~92)가 1950년대에 발표한 공상과학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는 ‘심리역사학’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심리역사학은 인간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하나의 수학방정식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정치·경제·사회적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한마디로 인간 역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학문인 것이다. 여기서 예측은 단순한 짐작이 아니라 수학공식을 통해 계산된 것이다.
 당신은 ‘인간행동을 지배하는 법칙’ 또는 ‘인간행동을 지배하는 비밀코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서 법칙은 ‘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어진다’는 유의 생물학적 법칙이 아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함에도 특정한 상황에서 반드시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물이건 온도가 0도 아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고, 100도 이상 올라가면 기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일례로 선거만 봐도 정치학자들이 아무리 분석과 가설을 내세워봤자 빗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달리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은 명색이 사회 ‘과학’이라고 불리면서도 계량적 정확성이나 미래 예측력이 떨어진다는 조롱을 받아왔다.
 그런데 자연계의 물리적 법칙과 마찬가지로 인간행동에도 법칙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게임하는 인간 호모루두스>의 지은이 톰 지그프리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그는 언젠가는 게임이론이 모든 과학의 문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게임은 대표적으로 많이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나 ‘치킨 게임’과 같은 것이다. 게임이론은 규칙이 정해진 게임에서 두 명 혹은 다수의 ‘선수’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는 전략적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폰 노이만과 존 내시를 중심으로 현대 게임이론의 기원을 소개하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는 게임이론의 실태를 살폈다. 냉전시절 미국은 소련에 대한 대응전략을 게임이론에 기대 개발했고, 경제학도 주가예측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게임이론을 적극 수용했다. 현대의 진화론도 게임이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워낙 취재가 조밀해 게임이론에 관한 최첨단 지도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과연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지은이는 게임이론이 아직도 진행 중이며 논란이 많은 분야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 지은이의 믿음에 동참할지 말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영향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선순위를 엿봐서

버스트 - 10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동아시아

 2002년 국내에 소개돼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링크>의 지은이가 2010년에 쓴 최신작이다. 네트워크 이론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두 사람도 6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는 가설로 유명하다. 지은이는 <링크>에서 세포에서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네트워크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밝혀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링크>는 전형적인 크기가 없는, 다시 말해 크기의 분포에 제한이 없는 네트워크는 ‘멱함수 분포’(극소수만 크기가 크고 나머지는 크기가 작은 분포)를 보인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 구글, 야후 같은 엄청나게 많은 링크를 보유가 사이트가 몇개 있고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한 링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새 책에서 바라바시는 인간의 행동에도 같은 패턴이 발견된다고 밝혔다. 부제가 말해주듯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이 있다는 것인데 이름하여 ‘인간역학’(Human Dynamics)이다.
 그는 ‘인간행동은 긴 휴지기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격렬히 활동하는 짧은 기간이 오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이메일 발송을 예로 들어보자. 평소 이메일 발송을 거의 하지 않거나 한두건 발송하다가 어느날엔 수십통의 이메일을 발송하는 패턴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자신의 ‘보낸 편지함’을 열어 보낸 시각을 한번 체크해 보기 바란다. 지은이는 마찬가지로 휴대전화 사용, 프린터기 사용, 학생과 교직원의 도서관 대출에서도 비슷한 ‘폭발성’(burst)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링크>에서 보여준 네트워크의 특징이 공간적 요동 현상에 따른 것이라면, <버스트>에 등장하는 현상은 시간적 요동 현상에 따른 것이다. 주식 가격의 폭등 또는 폭락, 어느날 갑자기 터지는 네티즌의 댓글, 예기치 않게 터져나온 촛불시위 등도 버스트의 예이다.
 만약 인간의 행동이 철저히 무작위적이라면 이런 패턴은 발견될 수 없다. 그럼 이런 폭발성을 낳는 이유는 무얼까? 지은이가 찾은 답은 인간의 우선순위 설정이다. 인간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늘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우선순위가 개입되는 순간 행동이 폭발적으로 몰리는 시기가 등장하고 어처구니 없이 큰 예욋값이 나타난다.
 한편 바라바시는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내가 일주일 뒤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을지부터 한달 뒤 오전 10시에 어디에 있을지까지 남이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정교한 데이터만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 스마트폰, CCTV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기기들은 축적한 개인의 행적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지금도 특정인의 미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런 체제가 ‘빅 브러더’ 사회가 될 우려를 제기하면서 ‘미래의 프라이버시권’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누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누군가가 나의 미래행동을 들여다보는 것 역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형식도 특이하다. 지은이는 헝가리 태생인데 16세기 십자군을 이끌었던 비운의 헝가리 장군의 인생행로를 팩션 형식으로 삽입해 넣었다. 역사의 무작위성과 인간 행동의 예측성을 교차해서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다. <링크>를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꼭 챙겨봐야 할 책이다.


과학집단의 머리로

두뇌를 팝니다 - 10점
알렉스 아벨라 지음, 유강은 옮김/난장

 아마도 게임이론에 가장 관심이 높은 집단은 군부일 것이다. “핵공격을 하게 된다면….” “핵 억지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탄두가 필요할까?” 이런 가상 질문을 통해 군부는 군사전략을 세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군인들 스스로가 게임이론에 매달려 연구하기는 어렵고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과학자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그런 역할을 맡아왔다. 전쟁전략 수립뿐 아니라 경제·사회분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쳐왔다.
 책은 랜드연구소의 탄생과 걸어온 길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를 분석했다. 랜드연구소는 1948년 창립된 이래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정계와도 끈끈하게 연결돼있다. 수학자 존 내시를 비롯해 케네스 애로, 폰 노이만, 프란시스 후쿠야마, 브루스 호프먼, 잘마이 칼릴자드 등이 이 연구소 출신이다. 럼스펠드와 곤돌리자 라이스 전 장관도 연구소 이사를 역임했다.
 문제는 랜드연구소가 내놓은 이론이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앞세우는 강경일변도의 핵 경쟁을 가속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강경한 군인들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구소련을 무너뜨릴까 연구해온 군인들이 2차대전 중 야전의 지휘참모부를 성공적으로 도왔던 것 같은 과학집단을 만들기 위해 연구소를 세웠다. 미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주도 아래 해병대 출신의 콜 붐 같은 보수주의자들이 주축이 됐다. 당시 군부는 구소련이 공산주의를 확산시키기 전에 미국이 핵공격을 해야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랜드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군사적 측면을 넘어 신자유주의의 확산에도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해 만든 애로의 합리적 선택이론은 심리현상을 아예 무시하고 모든 행위를 수치화함으로써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레이건 정부의 방향과 맞아떨어져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핵선제공격의 이론적 바탕을 제시했던 체계분석이론은 복잡한 계산의 필요성 때문에 컴퓨터 개발을 앞당기기도 했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은 핵 전쟁을 당연시했다. 이 밖에 패킷 이론은 인터넷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위험성을 경고한 군산복합체의 주체는 바로 랜드연구소다. 랜드연구소는 베트남 전쟁에서 ‘더러운 전략’을 제시했고, 이는 내부 분석가 엘스버그에 의해 뉴욕타임스에 그 내용이 폭로되기도 했다. 연구소는 정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해왔다. 게임이론에는 정의와 도덕보다 승리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