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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책 좋아 하는 사람 치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얽힌 사연, 추억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것이다. 교보문고는 1991년 리노베이션을 해 큰 변화 없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교보문고 광화문점엘 가보면 천장이 거울처럼 돼 있고, 기다란 막대들이 촘촘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이 모습이 익숙해 졌지만 당시엔 이 거울이 익숙해지는데 상당힌 시간이 걸렸다. 내 기억으론 이 거울 때문에 책을 보기가 어렵다 어쩐다 하는 방송 기시까지 있었다.
또 한가지 사람들은 크게 인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 있는데 교보문고 광화문 빌딩의 남쪽, 그러니까 동아일보쪽엔 건물에 면한 자그마한 공터 혹은 공원 같은게 있었다. 지금은 이 자리가 화단인데 이곳이 화단으로 바뀐 것은 2005년이다. 잘 알다시피 2004년은 촛불집회의 해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김선일씨 피살 등으로 인해 과화문과 종로통은 하루가 멀다하고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때 교보문고 빌딩 옆에 있는 이 작은 공간은 시위대에게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2004년 겨울이 지나고 2005년 봄이 됐을 때 이곳에 줄이 쳐지더니 화단으로 바꾸는 공사가 시작됐다. 왜 였을까? 미화를 위한 것이라는게 당시 교보빌딩의 공식 설명이었지만 집회가 빌딩 코앞에서 열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의도가 있음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참, 여러가지가 떠오른다.

[책동네 산책]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서울올림픽으로 세상이 들끓었던 해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처음 가봤다.
미술관·박물관은 고사하고 도서관조차 생소했던, 산골마을에서 서울로 갓 전학 온 나에게 교보문고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세련된 서울사람들이 저마다 서가 앞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시골촌놈은 그 위엄 앞에서 그냥 얼어붙고 말았다.
나이를 더하면서 교보문고를 찾는 횟수가 잦아졌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그림책 코너에 가서 세련된 서울사람들처럼 책을 읽어준다. 이것 저것 사달라는 아이와 승강이도 벌인다. 그러나 여전히 교보문고의 장서량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교보문고가 보유한 ‘책의 바다’가 내뿜는 위용에 단숨에 친숙해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교보문고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광화문 네거리 한 귀퉁이라는 금싸라기 땅에 자리잡은 빌딩 지하에 거대한 ‘열린책방’을 세웠을 때는 돈벌이 이상의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 아래 교보문고를 만든 대산 신용호 회장은 ‘돈벌이로 책방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이 확고했다고 한다. 어느해 교보문고의 결산서류가 올라오자 “이윤을 왜 이렇게 많이 냈느냐”고 화를 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90년대 초반 어린이책 분야에서 귀신 이야기가 판을 친 적이 있다. 일본 독서계에 불어닥친 귀신 열풍이 한국으로 전이된 것이었다. 귀신 책 한두 권만 잘 나간다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이 온통 기괴한 일본 귀신 이야기 책으로 채워졌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었기에 걱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보문고는 과감하게 판매대에서 귀신 책들을 치웠다. 서점의 이윤만 생각했다면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출판사 대표는 “교보가 귀신 책을 내리자 자연스럽게 귀신 책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출판유통시장에서 교보가 차지하는 힘이 순기능을 발휘한 사례다.
지난 30년간 교보문고가 대한민국 출판과 독서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중엔 긍정적인 측면도,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공자는 사람 나이 서른을 모든 기초를 세운다는 뜻의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교보에 서른살은 그 이상이다. 교보문고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계획 중인 광화문점 리노베이션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휴점을 하는 동안 매출이 줄어들까봐 걱정이고, 편한 시간에 찾아가 신·구간이 어우러진 책의 바다를 유영하던 독자들도 몇개월의 공백이 아쉽다.
시대가 변했으니 공간 개선의 여지는 많을 것이다. 교보가 야심차게 준비한 리노베이션 이후의 광화문점 모습이 기대된다. 하지만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것만큼이나 교보가 잊지 않고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장사꾼 마인드로 책장사를 하지 않겠다던 창업정신이 3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이다.
새롭게 단장된 교보가 오로지 사람과 책을 배려한 문화적 공간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2009.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