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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공공도서관 예산 깎고 방치하고 "이럴 거면 짓지나 말지"

보통 지자체가 공공도서관을 지을 때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이라고 해서 중앙정부가 일정액을 부담하고 지자체가 나머지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지자체의 규모에 따라 국가가 부담하는 비율이 달라지는데 재정자립도가 높은 광역지자체는 국가 부담이 줄어들고, 기초기자체로 갈수록 국가 부담이 늘어난다. 도서관뿐 아니라 다른 복지비용 등도 이런 식으로 지급된다. 지자체장으로선 자신의 업적이 될 수 있고 국가예산을 따낼 수 있으니 이런 저런 사업들을 벌인다. 문제는 도서관을 지을 때는 이렇게 지원이 되지만 도서관 운영비는 지자체가 자체 부담을 해야 한다는거다. 도서관은 솔찬히 돈이 드는 공간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책을 사다 진열하고 빌려주고 하는 것이 도서관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일정하게 신간들을 구입해야 하며 구간이라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봐서 헐은 것이면 새 책으로 바꿔줘야 한다. 그리고 요즘은 도서관에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원한다. 또한 도서관 운영시간이 밤 늦게까지 연장되면서 그에 따른 인건비, 전기요금 등등도 늘어났다.

그러므로 도서관을 짓는게 능사가 아니라 도서관을 짓기 전 이 도서관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원,그리고 이 재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계산이 필수적이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도서관을 보면서 과연 이런 계산들이 얼마나 됐을까 의구심이 든다.

글에는 쓰지 못했지만 최근엔 도서관 민간위탁 문제가 도서관계의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특히 서울시의 '서울도서관재단' 설립계획이 공공도서관 종사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몇년전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광역지자체로 하여금 '지역 대표 도서관'을 지정, 운영하도록 했다. 알다시피 서울은 중앙도서관이 있지만 국립이다. 그래서 구 서울시청사에 '서울 대표 도서관'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을 대표하는 도서관이라면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인력 규모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낮게 잡아도 60~70명의 사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최고의 미덕으로 인식되는 그놈의 '작은정부' 기조 때문에 공무원 정원을 이토록 많이 늘릴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재단을 만들어서 그 재단에 서울 대표 도서관 운영을 맡긴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에 대해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시절이 될 '서울 대표도서관'을 직영하지 않고 위탁하는 것은 서울시가 공공성을 포기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직영을 하고 싶어도 당장 공무원 사서를 늘릴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공공도서관 민간 위탁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그리 많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민간위탁의 물꼬가 트인 마당에 서울특별시가 대표 도서관을 민간위탁 방식으로 개설한다면 다른 지자체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얼마 전 이사를 앞두고 책을 정리하며 느낀 단상을 '책동네 산책'에 적은 뒤로 출판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사 잘 하셨느냐"는 인사를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괜히 개인사를 공개했다는 민망함에 후회가 되기도 한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연초에 동네 이름이 앞에 들어가고 뒤엔 '센터'가 들어가는 건물이 개관했었다. 구에서 지은 건물이었는데 1·2층엔 입시학원이 입주했고 그 위층으로 경로당, 컴퓨터실, 어린이도서관이 포함된 도서관 등이 들어섰다. 다목적 복지시설인 셈인데 주말마다 요긴하게 이용했다. 딱히 외출할 곳이 없으면 가족이 함께 가서 아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DVD를 감상하는 동안 나는 한 쪽에서 달콤하게 졸음을 즐기곤 했다. 신생 도서관이라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관내 공립학교 도서관과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이 도서관에 없는 자료도 빌릴 수 있었다. 이사를 온 동네엔 이런 공간이 가까이에 없어 무척 아쉽다. 집에 적지 않은 자기 책이 있음에도 아이가 "이제 책 빌리러 안 가요"라고 묻는다. 도서관 이용이 아이에겐 나름의 놀이이자 문화생활이었던 모양이다.
정부는 현재 700개 정도인 공공도서관을 2013년까지 90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여기엔 100~130㎡ 규모의 '작은 도서관'도 포함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언제부턴가 도서관 짓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도서관 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까지 나왔다. 내가 이사온 집 가까운 곳에도 조만간 도서관이 생기길 기대해 본다.
도서관이 늘어나는 것은 시민의 복지를 위해서나 출판계를 위해서나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을 지배하는 양적 성장 우선 논리가 도서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일부 지자체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단체장들이 도서관 짓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도로를 닦고 다리를 세우는 등 전임자들이 업적을 내세우기 위해 단골로 이용했던 사업들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상황에서 '폼'을 잡기 좋은 대상으로 도서관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공공기관 치고 바깥에 예산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곳은 별로 없겠지만 공공도서관 역시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도서관법은 도서관 규모나 보유장서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전문사서도 증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실은 법이 규정한 수준의 30% 정도에 그친다. 전문인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예산이 부족해서다.
지자체의 내년 예산은 거의 확정된 상태인데 공공도서관마다 걱정이 태산이다. 경기침체에 정부의 감세기조가 겹치면서 세수가 줄면, 다른 복지 예산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운영 예산이 가장 먼저 된서리를 맞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도는 기초 지자체에 지원해오던 수십억원의 도서관 지원금을 내년부터 주지 않겠다고 밝혀 반발을 샀다.
어쨌든 도서관이 늘어나면 좋은 일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서관은 재정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공간이다.
도서관에 헌 책, 훼손된 책만 가득하다면 단골 이용자도 발을 끊게 된다. 오죽했으면 취재 도중 전화통화를 한 어느 도서관 관장이 "이럴 거면 도서관을 짓지나 말지 지어놓고 이렇게 방치할 수 있느냐"고 한탄했겠는가. <200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