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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동화책 보는 아빠

[리뷰]어린이 책 모둠

아차, 하는 사이에 8월말부터 어린이 책 리뷰 기사 갈무리를 해두지 못했다. 내가 쓴 글들을 증거보전 차원에서 모아두기로 했으니 짧은 기사지만 갈무리 한다. 두어달 밀린 것을 모아놓으니 꽤 된다. 벌써 기억이 가물한 것도 있다. '망각의 힘'은 대단하다. 읽은지 얼마나 됐다고...

TV 발명의 원천, 호기심 그리고 상상력

TV를 발명한 소년 - 10점
캐슬린 크럴 지음, 정미영 옮김, 그레그 카우치 그림/봄나무
데이글로 형제 - 10점
크리스 바턴 지음, 정지현 옮김, 토니 퍼시아니 그림/문학동네어린이

필로 판즈워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철 지난 과학잡지를 읽으며 과학공부를 했고, 발전기를 직접 수리하며 전자제품의 원리를 깨우쳤다. 그리고 불과 열네살 때 감자밭을 갈다 오랫동안 궁리해오던 텔레비전의 구현 원리를 떠올렸고, 훗날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마침내 텔레비전을 만들어냈다. 판즈워스의 이야기는 사소한 것도 신기하게 바라볼 줄 아는 호기심과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자 궁리하는 상상력이 발명의 원천임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크레용엔 대부분 형광색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한번 접하면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야 마는 형광색은 의사가 되고자 했던 형,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동생, 이 형제가 만들어냈다. 형인 밥은 사고로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의사의 길을 포기한 채 동생 조의 형광색 실험을 돕는다. 조는 마술을 화려하게 해줄 형광색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다. 지하 방에서 책을 읽으며 수없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은 형제는 마침내 낮이건 밤이건 눈에 띄게 반짝이는 형광색 물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밥과 조 형제 역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마침내 성취하고야 마는 집념을 보여준다. (2010.8.28)

수족관 물고기를 실수로 모두 죽였대! 왜?

뻔뻔한 실수 - 10점
황선미 지음, 김진화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대성이는 반장 영일이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자기 엄마가 선물했다면서 교실 수족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당번을 제 맘대로 정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먹이통을 손에 넣게 된 대성이는 영일이를 골탕 먹이려고 먹이통을 감춘다. 가루비누와 코코아 가루를 섞으면 물고기 먹이와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을 안 대성이는 먹이통의 내용물을 바꿔치기해 교실에 갖다 놓는다. 그런데 바꿔치기된 먹이를 먹은 물고기들이 모두 죽고 만다. 충격에 휩싸인 교실. 대성이는 더 큰 충격에 빠진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해주겠다’며 고백을 종용한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먹이를 준 보미를 의심한다. 대성이는 마침내 고백하고, 실수였다고 강변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작품 속 대성이네 옆집에 사는 노총각 고철 아저씨는 대성이만 보면 ‘열 살은 참 불쌍한 나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 그럴 수 있다. 열 살은 여전히 어린이로 취급받지만 ‘어린애’와 청소년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응석받이 개구쟁이로 떼쓰고 실수해도 용인되던 시절에서, 행동의 반경과 깊이가 커지는 대신 행동에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시절로 이동하는 단계다. 주인공 대성이는 결코 물고기를 죽이려 하지 않았지만, 그가 벌인 장난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작가는 대성이의 뿔난 마음을 헤아리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행동까지 눈감아주지 않았다.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까지 독려하며 ‘책임’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2010.8.28)

천국의 섬, 그러나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곳

움직이는 섬 - 10점
최나미 지음, 최정인 그림/한겨레아이들

소설 <파리대왕>, 영화 <배틀로얄>은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외부와 격리된 섬이 공간적 배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천진해야 할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투쟁이 음울한 느낌을 주는 것도 비슷하다.

<움직이는 섬>은 제각각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어린이들이 주인인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파리대왕> <배틀로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아무나 올 수 없는 ‘움직이는 섬’에서 피안을 찾고 싶어하는 아이들, 하지만 결국 세상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서로 간의 다툼, 와해와 치유를 액자소설 형식으로 그렸다.

소심한 성격 탓에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담이와 아버지의 폭력에 찌든 진규는 말로만 듣던 움직이는 섬을 찾아나선다.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그들을 발견한 것은 먼저 섬에 들어온 아이들. 이들은 모두 어른들로부터, 가난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밤례 할머니가 먹을 것을 몰래 가져다줄 뿐 섬에는 아이들밖에 없다. 섬을 탐험하고, 나무를 타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모닥불을 피우며 아이들은 신나게 생활을 꾸려간다. 그렇지만 이들은 알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면 섬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다른 상처입은 아이들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험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반가울 리 없다. 아이들 사이엔 섬에서의 생활방식을 두고 점차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좀 더 강한 체계와 규율을 강조하는 아이들과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커지고 아이들의 숙소인 ‘궁전’이 누군가 지른 불에 모두 타버리고 만다. 주인공 담이가 범인으로 몰려 섬을 떠날 위기에 처하는데…. (2010.9.4)

할머니와 손잡고 산과 바다서 먹을거리 사냥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2년간 연재됐던 ‘할머니, 어디 가요’ 이야기를 묶어낸 것이다. 봄·여름·겨울편은 이미 나왔으므로 가을편 출간으로 완간됐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일곱살 옥이. 옥이와 옥이 할머니는 산과 들, 갯벌과 바다를 내집처럼 드나들며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옥이 할머니는 억척할멈이다. “가을 벌한테 쏘이면 약도 없다”며 마을 사람들이 말리지만 도라지를 캐러 기어이 산에 올라갔다 눈꺼풀에 벌을 쏘이고 만다. 눈이 퉁퉁 부어 자리에 누운 것도 달랑 하루. 이튿날 할머니는 옥이에게 “가자”라고 말한다. 갯벌에 ‘황바리’(작은 게의 한 종류)를 잡으러 나서는 옥이와 할머니. 이렇게 잡은 황바리로 게장을 담근 할머니는 역시 옥이를 앞세우고 시장에 내다 판다. 드디어 추석 전날. 서울에서 구두 공장에 다니는 아빠와 읍내에서 미용실을 하는 엄마가 왔다. 안그래도 풍성한 가을 먹을거리로 배가 부른 옥이는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에서 풍겨오는 달고 고소한 냄새에 또 배가 부르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갇혀 사는 도시 어린이들에겐 딴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질 정도로 자연에서 실컷 보고, 먹고, 노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0.9.11)

백범할아버지께 배우니 현대사가 ‘쏙쏙’

김구.전태일.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 이야기 - 10점
함규진 지음, 돌 스튜디오 그림/철수와영희

역돌:안녕하세요, 백범 할아버지! 채팅으로 다시 뵙네요~.

백범:그래, 반갑구나, 역돌아. 허허허.

역돌:두번째 메일도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평양에 갔다가 돌아오실 때요. 그때 마음이 무척 안 좋으셨죠?

백범:그랬지…. 나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조선말기의 부패를 보았고, 백성의 고통도 보았지. 그리고 일본의 침략과 나라의 멸망도 보았고. 하지만 가장 슬펐던 것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심으로 호소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던 그때였단다. 다시는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단다. 나라가 망할 때보다 더 서러웠어.

김구와 전태일, 박종철은 각각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국면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백범은 분단, 전태일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이를 위한 희생, 박종철은 민주화 운동과 연관된다. ‘역사’라고 하면 여느 아이들과 다름 없이 어려워하는 아이 역돌이가 어느날 인터넷 채팅방에 들어갔더니 자신을 ‘백범 김구’라고 소개하는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연이어 전태일형과 박종철형이 채팅방에 들어온다. 이날 이후로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e메일이 백범·전태일·박종철로부터 배달되고 채팅이 이어진다.어린이용 역사책 시리즈가 간략하게 압축하거나 껄끄러운 부분은 건너뛰게 마련인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무대로 종횡무진의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를 위한 노력 등이 가지는 의미를 어린이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2010.9.11)

이사 놀이도 지쳤어,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줘

이사 로봇, 우리 집을 옮겨 줘 - 10점
야다마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노란우산

하늘에서 비 대신 돼지가 내리고, 장난 삼아 쓴 ‘내일 일기’가 그대로 실현되는 등 엽기적이고 코믹한 상상력의 진수를 보여줬던 ‘동글이의 엽기 코믹 상상여행’ 시리즈 신간이다.


어느날 동글이네 가족에게 건설회사 사장이 찾아온다. 동글이네 집 밑에서 폭탄이 발견됐다면서 폭탄을 제거할 동안 이사를 가라고 권유한다. 당장 어디로 이사할지 난감해 하는 동글이네 가족에게 사장은 장소만 지정해주면 ‘이사 로봇’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이사 로봇을 사용할 기회는 열 일곱 번.


장소만 지정해주면 어디로든 집을 옮겨준다고? 동글이네 가족 각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다. 동글이는 나무 위, 엄마는 슈퍼마켓 안, 아빠는 강물 위, 동생 영글이는 물속으로 이사가자고 우긴다. 티격태격 공방전이 이어지자 건설회사 사장은 순서대로 이사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옳거니! 이제 동글이네 가족과 동글이네 집은 나무 위, 슈퍼마켓 안, 강물 위, 물속, 땅 밑, 심지어는 자유의 여신상 위와 날아다니는 비행기 위, 달리는 기차 위까지 기상천외한 곳으로 이사를 다닌다.

이사 놀이도 지친 동글이네 가족은 이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이사 로봇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동글이네는 과연 정든 옛 집터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2010.9.18)

***요 책은 내 아이가 너무나 열광하는 시리즈다. 읽어주다보니 나도 빠졌다. 내가 접한 일본 동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각종 마법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어떤 어린이 책 편집자 분에게 내 아이가 이런 류의 일본 동화책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감성적인 모양이라고 했다. 논리적이기 보다는 황당한 스토리에 몰입하는 감성 말이다.

봄볕을 맞아 땅굴을 박차고 나온 두더지의 숲속 모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 10점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원재길 옮김, 로버트 잉펜 그림/살림어린이

‘갑자기 두더지가 솔을 냅다 바닥으로 패대기치며 외쳤다. “짜증나!” “어휴, 빌어먹을!” “봄맞이 대청소가 다 뭐야!” 두더지는 외투도 걸치지 않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올라가자! 올라가자!” 마침내 쑤욱! 햇볕 속으로 두더지의 주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1908년 처음 출간된 베스트셀러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첫 장면이다. 땅 속에 살던 호기심 강한 두더지가 불현듯 땅 위로 뛰쳐나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더지는 영리하고 재치 넘치는 친구 물쥐, 지혜롭고 마음이 따뜻해 강 마을 동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오소리 아저씨를 만난다. 두더지와 물쥐는 모험을 좋아하고 허풍이 심한 두꺼비와 함께 아슬아슬하면서도 유쾌한 여행을 떠난다.

멀게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가깝게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탄생시킨 영국 아동문학의 저력은 대단하다. 숲 속 동물들을 통해 우정과 모험, 평화와 자유를 일깨워주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역시 영국의 자존심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호주 출신으로 1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린 화가 로버트 잉펜의 그림이 담긴 이번 책은 100주년 기념판이다. 소설가 원재길이 내용을 축약하지 않고 충실하게 번역했다. (2010.10.2)


 

아이들에 ‘위기의 지구’ 구원할 착한 소비 가르치기

미래를 여는 소비 - 10점
안젤라 로이스턴 지음, 김종덕 옮김/다섯수레

사실1. 산업화된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국민 1인당 자원을 훨씬 더 많이 소비한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처럼 생활한다면 아마도 지구 같은 행성 5개 이상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2. 미국의 10대 소녀들 가운데 99%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으로 쇼핑을 꼽는다.

사실3. 2010년 1월 기상청이 과거(1919~48년)와 최근 10년간(99~2008년) 24절기의 평균기온을 비교했더니 절기별 평균기온이 과거보다 섭씨 1~3도가량 높아졌다.

과도한 소비에 중독된 생활습관은 어린이·청소년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풍족하게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어찌 보면 소비가 가져다주는 쾌감에 어른들보다 더 깊숙이 발목을 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이 불러올 위험을 미래세대에게 알리고 생활습관을 이른바 ‘착한 소비’로 바꿔주려는 교육도 강조되고 있다. 어른들이 벌여놓은 사태를 떠넘기는 모양새가 우습기는 하지만 미래세대의 인식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자원낭비와 환경파괴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것은 미래세대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어린이 과학책 저술가가 쓰고, 슬로푸드와 로컬푸드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종덕 경남대 교수가 편역한 이 책은 무절제한 소비로 인한 에너지 고갈,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을 망라하고 이를 막기 위한 방안도 설명하고 있다. 번역서이지만 한국의 실정을 편역자가 집어넣었다. ‘청소년 에코액션’ 시리즈 첫 권으로서 <미래를 여는 건축> <미래를 여는 에너지>도 곧 나올 계획이다. (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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