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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살인

 

김선호

 

#1

그 초밥집에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차올랐다. 부장으로 승진 했다는 성취감, 몇 년 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나에게 찾아 왔다는 뿌듯함, 그리고 아내와 이렇게 휴일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기쁨이 제일 컸다.

, 얼마나 힘든 나날이었는가!

지난 20년 동안은 일만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상사에게, 또 회사한테 인정받기 위해 다른 일들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나를 믿어주고 배려해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했다.

20년 동안 수고 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오늘은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직장 동료가 휴일에는 아내와 함께 가보라고 극찬한 초밥집이였다. 젊은 청년이 하는 집인데 맛이 일품이라고 침이 튈 정도로 추천했다.

어서 오십시오!”

초밥 집에 들어서자 주방에서 한 청년이 우렁차게 외쳤다. 다른 종업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가 사장일 가능성이 컸다.

세 사람이 먼저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점심때가 지나 다른 사람은 없고 작고 아담한 가게여서 우리 부부같이 조용한 사람들이 식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일반적인 초밥 집보다는 가격이 싼 편이였다. 잠시 고민을 하다 특초밥 세트를 주문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몇 분을 기다리자 그 청년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들고 와서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아내는 초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가슴 한구석에서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내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런데 주인이 되게 젊네.” 아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그를 보았다. 아무리 잘 쳐줘도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우리 아들이랑 비슷한 나이일텐데.

일을 다 끝냈는지 그는 우리의 옆 테이블에 앉아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가슴에 걸려 있는 배지에 김호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초밥이 참 맛있네요.” 아내가 그를 향해 말했다.

, 네 감사합니다.” 그가 대답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내가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힘들긴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요리를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돈이 필요하기도 해서요.”

호연은 어릴 때 부모님을 잃어버려 고아원에서 생활 했다고 한다. 최근에 고아원에 들어오는 후원금이 줄어들어 생활하기 어려워지자 지인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후원금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호연을 보고 있자니 우리 아들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랑 같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지금도 소름이 돋았다.

쓸데없는 생각은 떨쳐 내자.

우리는 자식이 없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신기하네.” 아내가 말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자, 왜 쓸 때 없는 이야기를 하고 그래.”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려고 할 때 그가 배웅을 나왔다. 다음에 또 온다고 말하고 가려고 했다. 그 순간 호연이 식당으로 들어오려는 사람과 부딪혀 휘청했다. 잠깐 동안 그의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가 올라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앞머리에 가려져 있던, 이마에 선명하게 나 있는 흉터 자국을.

 



#2

민호는 우리의 보물이었다. 민호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부부의 큰 행복이었다. 내가 회사일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민호만 보면 모든 피로가 가셨다.

민호는 웃음이 많고 활동적인 아이였다. 앉아 있기보다는 서 있는 것을 좋아했고, 걷기보다는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성격이 민호에게 화를 불러왔다. 민호가 4살 무렵이었다. 내가 해외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날, 아내와 민호가 나를 마중하러 나왔다. 며칠 동안 보지 못한 아빠를 보고 반가웠던 것인지 민호는 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순간이었다. 민호의 이마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생기는 것은.

어린아이로서는 힘든 수술이었는데 민호는 다시 밝고 활기찬 아이로 돌아 왔다.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흉터도 앞머리를 내리면 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 때 가끔 보이는 민호 이마의 상처는 마음 한구석을 후벼 팠다.

하지만 신이 우리 가족에게 내린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

민호의 다섯 번째 생일 날, 우리 가족은 축하하기 위해 놀이공원을 찾았다. 민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했다. 회사일 때문에 휴일에도 쉬기 어려웠지만 민호의 웃는 얼굴을 보며 역시 시간을 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날이었다. 민호의 이마에 흉터가 생긴 이후 처음 느끼는 완벽한 행복이었다. 민호가 웃을 때마다 나의 스트레스는 날아가는 듯 했다.

이른 아침부터 바이킹과 회전목마, 후룸라이드를 타고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민호가 가자고 졸라 댔던 범퍼카를 타기로 했다. 그날이 주말이고 범퍼카가 아이들에게 워낙 인기 있는 놀이기구여서인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많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상사의 전화였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이 전화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말하고 조용하게 통화할 만한 곳을 찾아 줄에서 빠져나왔다.

 

만약 그때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더라면?

만약 그날이 주말이 아니었더라면?

아니면 만약 범퍼카를 타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 보다 전화통화가 길어졌고, 통화를 마치자마자 급히 돌아왔다. 아내와 민호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던 도중 바닥에 주저 않아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나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급히 달려 왔다.

왜 그래, 민호는 어디 있어?”

민호 손을 잡고기다리다가사람들한테 밀려서.”

?!”

찾아 다녔는데찾아 다녔는데.”

그 날, 나는 미친놈처럼 민호를 찾아 다녔다. 놀이공원의 미아보호소를 수백 번 들락거리고, 놀이공원 관리소에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헤집고 다녔다. 놀이공원이 폐장한 이후에도 주변을 수십 번은 돌았다.

 

첫 번째 주에는 놀이공원 경비가 나를 쫓아낼 때까지 찾아다녔다.

 

두 번째 주에는 경찰서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112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가 짜증낼 때까지 전화했다.

 

세 번째 주에는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고 눈앞이 헤롱거릴 정도로 인터넷을 뒤졌다.

네 번째 주까지도 회사에 가지 않았다.

 

네 번째 주의 마지막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휴대폰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만약 다음 주에도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퇴사한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있었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4

다시 회사에 나갔다. 상사의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했다. 민호의 생일로부터 6개월쯤 지났을 즈음, 겉으로 비춰지는 나의 일상은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민호를 잃어버린 그날부터 정신병 환자처럼 행동했다. 발작을 일으키고, 매일 밤 민호를 부르며 통곡하다 정신을 잃었다. 밥도 먹지 않아 초췌해졌다.

민호를 찾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아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아내는 민호가 가지고 놀던 인형을 담요로 감싸 안고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인형을 뺐으면 울면서 나한테 매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민호를 부르며 민호랑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내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회사일도 만만치 않은데 아내까지 신경을 쓰려니 내 눈에서 다크서클이 사라질 새가 없었다.

하루는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전화가 왔다. 오랜 친구 녀석이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며 나오라는 것이었다. 거절하려고 했지만 잠시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가보기로 했다.

동창모임에 나온 친구들은 회사 얘기, 가족 얘기, 승용차 얘기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며 술을 마셨다. 한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시절 꽤 친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다. 그는 사람의 뇌에 전자기적인 자극을 주어 무엇이든 그것에 관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다. 무슨 SF소설도 아니고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가 꽤 술에 꽤 취한 상태라는 것도 그의 말을 흘러듣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현듯 아내가 생각이 났다.

 

만약 정말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아내를 민호의 기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 후 동창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정신은 온통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쏠려 있었다.

 

동창모임 바로 다음 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 네가 전화하다니 별일인데?”

기억정말 지울 수 있는 거 맞아?”

?”

동창회에서 네가 그랬잖아.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내가정말로 그런 말을 했냐?” 그의 목소리에 당황이 묻어나왔다.

아니야?”

그것보다, 그런데, 너 말고 내 말을 믿은 사람이 있어?”

다들 안 믿는 눈치던데.”

침묵이 이어졌다. 숨을 가다듬는 듯 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그럼 됐어. 그리고기억은 지울 수 있어불법이긴 하지만.”

불법이란 말에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정말 지울 수 있어?”

그럼! 우리 조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줬는데.”

정확하게 무엇을 지울 수 있어?”

사물, 사건, 인물,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뭐든 상관없어.”

부작용은?”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없어. 그래서 너의 문제는 뭔데?”

나는 민호와 내 아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네 아내가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니 그 기억을 지워 달라?” , 그런 셈이지.”

, 역시,”

역시라니?”

우리에게 기억을 지워달라고 오는 사람은 대부분 과거의 실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거든.”

잔말 말고. 그래서 지우려는 데 얼마나 들어?”

그건 기억이 얼마나 방대한지에 따라 다른데. 그런데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인물에 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 제일 복잡해. 네가 말하는 데로 아내의 기억에 서 네 아들의 기억을 지우면 아들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기억에 모순이 생기지 않게 네 아내의 삶을 통제해야 하고.”

……

여보세요?”

그럼 좀 생각해보고 전화 할게.”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이런 삶을 유지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아내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평생을 이렇게 산다는 것은 결코 좋은 삶이 아니다. 불법이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호의 기억을 지운다면 아내는 평상시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민호를 찾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호를 죽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들인데, 그럴 수 있을까?

 

아들을 죽이고 얻는 평화가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아내의 기억을 지우는 쪽으로 끌려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욕구가 너무 강했다.

 

결심을 굳힌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을 잡았다. 마침내 약속된 날이 다가왔다. 아내는 한손은 집밖으로 나서는 나의 손에 이끌리면서도 다른 손은 아내는 인형을 꽉 안고 있었다. 아내는 움츠리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순간 뭐라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아내는 아예 나오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호 보러.”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나를 따라 나섰다.

나는 그 날, 아내에게 있던 민호를 죽였다.

 

#5

아내의 기억을 지운 후로부터는 신기할 정도로 속전속결이였다. 민호에 관한 모든 기록이나 흔적을 지우고 이사를 했다. 새로운 동네에는 모르는 사람들뿐이었으니 우리에게 민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다만 아내가 민호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것을 통제해야 했다. 아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냈다.

아내가 민호를 찾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아내의 기억 속에 민호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니까. 아내에서서 민호를 지운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기도 했지만, 그 비수도 점점 무뎌져 갔다.

아내의 발작이 없다보니 나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회사는 승진으로 보상했다. 평탄한 나날이 이어지고 시간이 지나자 나도 민호를 서서히 잊게 됐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우리에게 불행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호연과 마주쳤다.

 

#6

그 초밥집에서 다녀온 이후에도 호연과 이마의 흉터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부모님을 잃고, 이마에 큰 흉터가 있는 아이가 둘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생각이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호연이라는 청년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며칠 후 초밥집을 혼자서 다시 찾았다. 이야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점심 때가 지난 시간에 갔다. 손님은 없었고, 호연은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 또 오셨네요.”

그가 꽤 반가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마도 우리가 오는 것을 기다렸을 것이다.

, 그래요.”

음식이 나오고 호연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을 어떻게 잃게 됐는지는 민감한 부분이라 이야기하는 것을 꺼릴 줄 알았더니 오히려 나에게 술술 털어 놓았다.

부모님을 어떻게 잃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호연이 말했다.

그냥 사람들에 밀려서 이리저리 움직였고, 정신 차려 보니 경찰서더라고요. , 워낙 어렸을 때여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하자 고아원에 가게 됐고요.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자라면서부터 점점 머릿속에서 부모님을 잊게 됐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살 만 하더군요.”

호연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 아들이 죽지 않고 어디선가 계속 살았더라면?

 

가끔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소망이겠지요.”

지난 20년 동안 잊고 지냈던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괜찮으세요?” 호연이 물었다. 내 안색이 창백해졌던 모양이다.

마침 그때 손님이 들어왔다. 주방으로 달려가는 호연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집에 가는 도중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겨우 앞이 보여 집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그 순간, 혐오감이 벅차올랐다.

 

아들을 죽이고 얻은 거짓된 삶,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내 표정이 평소와 달라 이상했는지 아내가 물었다. 나는 아내를 뒤로하고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잠시만 좀 내버려둬요!”

아내가 문밖에서 몇 번 더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자 그것도 곧 사라졌다. 그동안 내 머리는 터질 듯 굴러가고 있었다.

아내한테 말해 봤자 소용없어, 아내는 민호를 기억하지 못하니까.

만약 호연이 내 아들이 아니라면? 나만 곤란한 상황이 될 뿐이야.

 

호연을 무시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어. 계속 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니까.

그때 기억을 지우지 말아야 했어.

 

아니야, 아내한테서 민호를 지운 건 잘한 일이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살지 못했어.

 

하지만 민호랑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민호가 아닐 수도 있어.

 

설령 아니라고 해도 다시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마음속에서 이 사실을 그대로 말하자와 말하지 말고 그냥 살자, 두 가지 목소리가 다투고 있었다. 둘 다 좋은 방안은 아니었다. 3의 방안을 찾아야 했다. 이 모든 일이 아내의 기억에서 민호를 지운 것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박혔다.

 

내 기억에서 민호를 지운다면?

 

생각해보니 이점이 많았다. 더 이상 민호를 생각하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아내의 기억을 지웠다는 것도 잊어 죄책감을 없앨 수 있다. 호연을 만날 때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보다 나은 방안은 없었다.

20년 전과 같이 나는 그 친구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기억을 내 지워달라고 했다.

……

왜 그래?”

정말그래야겠어?”

뭔 소리야, 내가 말했잖아,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내가 20년 전에도 말했듯이, 사람에 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나도 괴로워서 그런다.”

뭔 소리야?”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기억을 지웠다가 나한테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거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제는 내 친구까지 그러니알았어. 일정을 잡아 줄게.”

 

이번에는 내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 나는 다시 민호를 회상했다. 이제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니. 불법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기억을 지운 결과가 이거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것이 최선의 방안이야.

 

내 마음 속에서 이런 소리들이 울렸다. 드디어 수술대에 올랐을 때 의문이 생겼다.

 

나만이 유일하게 민호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데, 나까지 잊어버린다면 민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정말, 살인이 아닐까?

 

나에게 이런 살인을 할 자격이 있을까?

 

이제 나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7

잠에서 깨어 보니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고 결과는 곧 통보해 준다고 했다.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무언가 긴 꿈을 꾼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초밥집이 보였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 발은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또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호연이 언제나처럼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끝)


※2018년 제26회 숭실문학상 황순원 소설 문학상 부문 장려상 수상작

Posted by 까만주름

올해 순서가 돌아오는 마지막 칼럼이 신문에 실렸다. 연말이기도 하고, 몇번 아니지만 올해 썼던 칼럼들이 모두 딱딱하고 강한 비판이 담겨 있었기에 마지막 칼럼은 조금 가볍고 훈훈하게 써보고 싶었다.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한해를 정리해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어수선하기만 하고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올해 나에게 돌아올 마지막 순번을 마감하고 나니 홀가분하긴 하다. 지난주 교보문고가 내놓은 올해 베스트셀러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가 떴길래,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집계 업무를 하시는 분과 잠깐 얘길했는데, 자신은 이미 2015년은 지났고 2016년에 가 있다고 농담했다. 그 기분을 알겠다. 아듀, 2015!


올해 걸은 곳 가운데 중국의 만리장성도 있었는데 만날 여행만 다니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뺐다. 그러고보니 작년엔 점심시간에 통인동, 서촌 골목을 자주 걸었는데 올해는 그쪽으론 발걸음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내년에도 많이 걸으려고 한다.


예전에 '걷기'를 주제로 한 원서를 읽다 만 적이 있다. 지은이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산다고 했는데 조미난 조크를 했다.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은 이동할 때 주로 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탄다. 그게 아니면 뛴다. 나처럼 걷는 사람은 이상하게 본다.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에겐 걷기, 산책 문화가 없다.'


[로그인]연말 골목길을 걸으며


골목을 걷는다. 도열한 연립주택들 사이로 난 길은 응달 쪽은 서늘하고, 양달 쪽은 햇살이 따갑다. 아이가 앞서 걷고 아내가 나와 보조를 맞춘다. 아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지하철역 3개 거리를 왕복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아이는 옷가게를 구경하다가 엄마를 졸라 <스타워즈>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후드 점퍼를 하나 사고, 내내 먹고 싶다던 돈가스를 무한리필 식당에서 물릴 정도로 먹었으니 넉넉하게 소득을 올린 셈이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좀 이른 듯싶지만 올 한 해를 결산해본다. 달력이라는 게 묘해서 12월31일에서 1월1일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처럼 지구가 자전을 한 바퀴 하는 것에 불과한데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를 결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따져보니 올 한 해 셋이서 꽤 여러 곳을 걸었다. 집 근처 불광천 산책로를 거의 매주 걸었고,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설악산 백담계곡과 지리산을 걸었다. 아이가 돌을 넘겼던 해의 여름 나는 아내와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가 어느 세월에 커서 함께 지리산에 오나’라고 했는데 그 ‘어느 세월’이 지난 것이다.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세상에서 좋은 것은 없다’는 농경시대 속담의 뒷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를 앞세우고 겨울 햇살이 사선으로 떨어지는 골목을 걷고 있자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안타깝게도 소시민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다. 올 한 해 나라 밖 세상은 더욱 불안하고 위험해졌다. 시리아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참상,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경악스러운 테러들, 미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총기 난사 사건들은 인류가 절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들게 한다. 나라 안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우리가 발 딛고 선 ‘고장난 저울’은 더욱 기울어졌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저울은 수평을 유지했을 때 제 기능과 역할을 완수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의 저울은 기울어져 있고 추는 저울을 쥐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정한다. 그런 저울은 현재를 망칠 뿐 아니라 미래까지 깡그리 망쳐버린다”고 했다. 고장난 저울 위에 선 청년들은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섬뜩한 아우성을 쏟아냈다. 꼰대 기성세대는 “우리 젊었을 땐 절망을 선택할 수조차 없었다”며 이들을 쥐어박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 1년 남았는데도 코밑이 제법 거뭇한 저 아이도 서서히 ‘무한 경쟁의 불구덩이’에 내던져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우울은 증폭된다. 아이의 입에 금수저를 물려줄 재력도 없고, 세속적인 기대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권유하기엔 용기도 상상력도 부족한 아빠이기에 더욱 면목이 없다.


김경집은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산다.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의 삶은 보다 나을 것이라는, 나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면서 “지금 우리는 고장난 저울을 버리고 새로운 저울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한 장 남은 올해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단다고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지 않으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느니 하는 말을 쏟아내고,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나선 시민을 IS 테러리스트에 빗대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해가 바뀐다고 행태를 바꿀 리 만무하다. 오히려 그는 국민 편가르기를 강화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자중지란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궁금증만 안겨주는 야당은 견제는커녕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버거워 보인다.


“아빠, 근데 이 길로 가면 집으로 가는 거 맞아요?” 우울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아이가 퍼뜩 깨운다. 나는 “물론이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길은 연결돼 있어”라고 답한다. 그래, 일단 걷자. 때론 딱히 어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는 것도 좋으니까. (2015.12.11)



(2008년 8월 과천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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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산책, 연말

충암고는 나에게도 무척 친숙한 학교다. 나는 중3때 충암중고 길 건너편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왔고, 고등학교도 충암고 맞은 편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 농구가 대유행이었고, 나는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해질녘까지 농구를 했다. 당시 인기있는 농구장은 명지전문대와 충암고에 있었다. 흙바닥이 아니라 아스팔트 또는 우레탄 바닥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대에 농구 좀 한다 하는 중고생과 대학생은 다들 거기서 농구를 했다.


그런데 당시 충암고 건물(충암중 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에 있는 남자 화장실엔 희안한 물건이 있었다. 소변통이었다. 기름통 같은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깔대기를 꼿아놓았는데 아이들이 그 깔대기에 오줌을 싸면 큰 트럭이 와서 정기적으로 수거해갔다. 그 오줌을 수거해다가 무슨 약재인가를 만든다는게 당시 들었던 소문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충암은 명문으로 분류됐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것이 그 학교의 실력을 나타대는 징표로 여겨지던 시절 충암고는 길 건너 우리학교보다 서너배나 많은 학생들을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충암은 야구와 바둑도 유명했다. '돌부처' 이창호가 충암을 다녔고,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충암 출신도 여럿 있다.


최근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들에 관한 기사를 보면 오줌통은 사라졌지만 학교 건물이나 운영은 낙후되다 못해 퇴락하고 있는 듯 하다. 충암고 사태를 접하며 가장 분개했던 것은 그 학교에 배정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였다. 한국에선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배정해주는 학교에 가야 한다. 본인이 원치 않았는데도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학교에 다녀야 학생들은 뭔가.


2005년 겨울과 2006년 봄 한나라당은 장외에서 지독하게 싸웠다. 종교계를 선동해 개정 사립학교법 반대에 나서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마저 사학법에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 실력은 이때부터 정착됐다고 본다.


차장급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로그인] 칼럼을 몇차례 썼는데 죄다 비판조에다 우울한 내용 일색이다. 입맛이 쓰다.



(2010년 5월 20일 일본 아오모리 대형 등롱)


[로그인]충암고 사태와 박근혜의 염치


 최근 서울의 사립 충암고에서 드러난 급식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은 처참하다. 서울시 교육청은 감사를 통해 이 학교가 식재료 살 돈을 미리 빼돌리거나 구입한 식자재를 빼돌리는 등 급식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밝혀냈다. 이 학교는 식재료가 모자라고 음식을 조리할 인원도 부족하다보니 조리가 간편한 튀김요리를 주로 학생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입한 식용유의 최대 절반을 빼돌려 내다 팔았으니 당연히 식용유가 부족했다. 너무 오래 사용해 새카맣게 된 식용유로 반찬을 튀겼다는 증언을 전해듣는 학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이 학교는 설립자인 부친에 이어 이사장을 맡던 모친이 사망하자 아들이 1975년부터 이사장을 맡아왔다. 그는 1999년 학교 난방시설 공사에서 3억5000만원을 빼돌리고, 조카를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병무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이 일로 그는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명예이사장' '학원장'으로 불리며 학교에 남았다. 그의 뒤를 이은 손자마저도 2011년 교육청 감사에서 수많은 비리가 적발돼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역시 행정실장으로 자리만 옮겼다. 현재는 손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3대를 잇는 완벽한 '족벌체제'다.

 이처럼 강고한 족벌체제에서는 학교 내의 감시와 자정기능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이 학교 교사나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시커먼 기름으로 튀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학교 교사와 교직원 가운데 학교 급식을 먹은 비율은 타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사장의 비리가 드러나면 그의 아들이, 아들이 분탕질을 치다 걸리면 딸이 돌아가며 요직을 맡는 상황에선 문제제기를 하려면 밥그릇이 날아가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선 외부의 감시를 강화하고 세습의 고리를 끊는 게 중요하다.

 10년 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조준한 법이 마련됐다. 2005년 12월9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학 운영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였다. 사립학교 이사 가운데 4분의 1을 이른바 '개방이사'로 채우도록 했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회가 개방형 이사 후보를 2배수 추천하면 이사회가 최종 선임토록 했다. 이사회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신설됐고, 이사들의 인적사항도 공개토록 했다. 결정적으로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는 해당 학교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법이 겨냥한 것은 명확했다. 족벌이 장악한 사학에서 자행되는 비리였다.

 그런데 개정 사학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망가뜨리는 법"이라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57일간 장외투쟁을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학비리에 대한 일제 감사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요지부동이었고, 노 대통령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 법안 설명을 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사석에서 "노 대통령이 박 대표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학법은 2007년 7월 다시 개정됐다. 사실상 '박근혜표 사학법'이었다. 개방이사 선임 절차가 사학 측에 유리하게 완화됐고, 친·인척의 학교장 취임 제한도 예외조항이 마련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2005년 사학법의 핵심조항들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충암고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해당 학교와 감독당국이 져야 한다. 그러나 10년 전 비리족벌사학을 퇴출하기 위한 길을 넓혔던 사학법을 끝내 무산시킨 박 대통령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새카맣게 탄 식용유로 튀긴 음식을 먹는 사태가 그가 그렸던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인지 답할 의무가 있다. (2015.10.23)


Posted by 까만주름

1월말에 <빅데이터 인문학>이 출간됐으니 사실상 이 책으로 올해를 시작했는데 벌써 10월 말로 흐르고 있다. 이 책 번역을 하느라 생전 취재만 하던 대담에 사회자로 참여해보기도 하고, 나보다 훨씬 학식이 높으신 분들 앞에서 강연을 해보기도 했다.


쑥스러워서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이 책을 번역했노라 널리 알리진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책을 접한 지인들이 전화를 해오곤 한다. 며칠전에도 좀 늦은 저녁 회사 대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네가 <빅데이터 인문학>을 번역했니?"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정말인 모양이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술을 겸한 저녁자리였는데, 내가 이 책을 번역했단 사실을 아는 분이 내 얘길 꺼냈던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 자리엔 다른 분들도 여럿 있었다 하는데 그 덕분에 책이 몇권 팔렸을 것이다.^^


추석 전에 현대자동차 사외보를 제작하는 곳에서 원고청탁이 왔다. 10월호의 테마가 '언어'인데 그중 한꼭지로 '빅데이터로 보는 언어의 진화'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항상 잊지 않기위해 유의하는 게 '나는 빅데이터 관련 서적을 번역했을뿐 내가 빅데이터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이 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청탁을 수락했다. 얼마전 책자가 왔는데, 이 잡지 자체가 '비주얼'을 상당히 신경쓰는 잡지여서인지 예쁘게 편집이 됐다.


글을 쓸 때마다 정갈한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는 자각도 함께 한다.


빅데이터로 보는 언어의 진화

 

언어의 변천을 보여주는 로봇의 등장

 언어의 특성 중 하나는 변화성이다. 상식적으로 500년 전의 우리 조상과 2015년의 우리가 만났을 때 단번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언어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 변화의 내용, 방향,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날씨는 변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날씨의 변화 원리를 이해하고 앞으로 날씨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인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왜 언어의 변화를 궁금해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핵심 수단인 언어는 인류 문화를 총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거대한 소우주와 같다. 화석이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듯 언어와 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는 학자들은 방대한 문헌 기록 속에서 언어의 변화, 그리고 문화의 변화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밝혀냈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 문화의 무궁무진한 보물 창고인 책을 새롭게 읽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제 아무리 책 읽기에 이골이 난 뛰어난 학자들이라 할지라도 한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1만권? 2만권? 사람은 죽기 전에 책 3000권을 읽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 클릭 한 번으로 800만권을 읽을 수 있는 로봇 독서가가 있다. 필자가 번역한 책 <빅데이터 인문학>(원제 <Uncharted>)이 소개하는 구글 북스의 앤그램 뷰어(Ngram Viewer)’가 주인공이다.

 

단순 사실들이 보여주는 언어의 역사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2002년 전세계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스캔해 디지털화 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그 이후 3000만권을 디지털화 했으며,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중이다. 2010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앤그램 뷰어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로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결과를 보여주는 도구다. 800만권의 출판물을 데이터 베이스로 삼아 지난 200년간 출판된 책과 잡지 등에 특정 단어들이 특정 시기에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를 눈 깜짝할 사이에 보여준다.

 앤그램 뷰어는 개별 단어들이 사용된 단순 빈도를 보여준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사람들이 자본주의(capitalism)’사회주의(socialism)’ 가운데 어떤 것을 더 많이 사용해왔는지, ‘천당에 간다(go to heaven)’는 말과 지옥에 간다(go to hell)’는 말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자주 쓰였는지, 책에 과학(science)’라는 단어와 종교(religion)’라는 단어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자주 등장했는지를, 지난 200년간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한국(Korea), 중국(China), 일본(Japan)의 사용빈도나, 피자(pizza)와 스파게티(spaghetti)의 사용 빈도를 비교해 볼 수 있다. 1800년 이래로 170년이 넘도록 인류는 암(cancer) 보다 열(fever)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했으나, 1973년 역전돼 2000년에 이르러선 암이 열에 비해 3배나 더 자주 언급됐다는 사실도 앤그램 뷰어의 빅데이터 분석이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다.

 

인류의 두뇌를 스캔할 수 있는 하나의 툴

  우리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새로 사용되는 용어들이 많아졌다고 직관적으로 느낀다. 실제로 그럴까? 1900~1950년 사이 영어로 출판된 책에 사용된 어휘의 전체 규모는 55~60만개 사이에 머물렀다. 그런데 1950년을 기점으로 영어 어휘의 규모는 크게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현재 영어 어휘의 규모는 1950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매일 20개 이상, 매년 8400개 가량의 새로운 단어가 영어 어휘 목록에 추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어휘가 언제까지 이렇게 늘어날 것인가? 이 질문은 학자들이 매달려 있는 주제이다.

 이쯤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언어의 진화는 대체로 수량, 즉 숫자 세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빅데이터는 엄밀히 말하자면 01의 조합으로 변환된 전자적 정보의 집합이다. 구글 북스는 책이라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저장매체에 기록된 정보를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전자적 정보로 변환시킨 것이다. 사실 구글 북스가 구축한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언어의 변화상은 경천동지할 것들은 아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며, 빅데이터가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수량적 변화를 가지고 추적한 언어의 변화를 눈으로 목격한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임은 분명하다. 화성에 도착한 탐사로봇이 보내온 화성의 모습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도, 우리는 눈에 들어오는 화성의 지표면을 보고 감격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언어의 진화를 추적하는 작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곧바로 전자적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우리가 이메일 계정에 보관하고 있는 이메일들, 블로그나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에 쓴 글들, 그리고 언론매체가 인터넷에 쏟아내고 있는 방대한 양의 기사들은 모두 전자적인 형태로 기록되고 보관된다. 그리고 이렇게 저장되는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이라는 표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빅데이터로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미 광고회사나 마케팅 회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언어의 쓰임새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좀 비약하자면 집단으로서의 인류의 뇌를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들여다 본 것에서 장차 무엇을 읽어내는가는 개인의 호기심, 학문적 탐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터스라인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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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기자 출신의 출판사 대표 한분과 옛날에 기자가 쓴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화제는 내가 먼저 던졌는데 '기자가 쓴 책은 왜 대부분 재미가 없는가'였다. 출판담당 기자를 하던 시절 신간으로 나온 기자 선배들의 책을 여럿 접했는데 작정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 쓴 책은 그렇지 않았지만 과거에 쓴 칼럼을 갈무리한 책들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아무래도 그날 그날 짧은 글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신문과 긴 호흡으로 한 주제에 천착해야 하는 책이라는 매체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대표님은 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들어 그분의 지론을 더했다. 출판사를 하고 있다보니 후배 기자들이 이런저런 주제와 원고를 들고 책을 내고 싶다고 찾아오는데 자신은 딱 한마디로 일단 물린다고 했다. "어떤 주제도 좋으니 '나'로 시작되는 일기를 3개월간 써 본 다음 오라"라는 주문이라고 했다. 얘기인즉슨 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보통 주어가 '나'로 시작되는 경우가 없는데, 신문에서는 그래도 되지만 책을 사는 독자들은 지식도 지식이지만 저자의 생각을 듣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로 시작되는 칼럼을 한번 써보았다. 너무 신파조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칼럼을 쓸 때 항상 사전에 데스킹을 해주는 가까운 두사람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주어서 용기를 냈다.


[로그인]현대판 음서제의 진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시골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나는 선생님들로부터 은근한 후의와 대접을 받았다. 성적도 좋고 별다른 말썽을 피워본 기억이 없으니 꾸지람 들을 일이 없긴 했다. 당시 아버지는 정부에서 막 독립한 공기업의 시골 지사에 다녔다. 학부형 대부분이 손바닥만 한 논을 경작하는 농부들이고 재정자립도 전국 꼴찌를 다투는 가난한 지역에서는 말단 기술직이긴 했으나 공기업에 다니는 봉급생활자의 아들조차도 꽤나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내가 누렸던 후의는 일거에 사라졌다. 전학 온 서울의 중학교에서 곰팡내 나는 반지하 전셋집에 사는 학생은 자선의 대상일망정 후의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선생님들의 다정한 눈길을 받는 학생은 따로 있었다. 그 아이는 외할아버지가 법원에서 높은 자리를 지낸 법조인이었고, 아버지는 검사라고 했다. 그는 성적이 좋았지만 유독 체육을 어려워했다. 체육 시간에 농구 자유투 실기시험을 봤는데 절반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A를 받았다. 다른 종목도 모두 중간 이하였지만 그의 실기점수는 항상 A였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치들은 도처에 있었다. 현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빡세다’는 방위 부대에서는 내가 배치되고 한달 뒤 소집해제돼 나간 고참의 ‘무용담’을 한참 동안 전해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현직 대통령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보좌한 유력 정치인이었고, 그는 입시부정이 들통나 대학 입학이 취소된 전력의 보유자였다. 그는 툭하면 결근을 하고, 훈련을 나가면 동료나 후임을 엽기적으로 괴롭히는 등 악행을 저질렀지만 언제나 간부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다. 진급을 노리던 연대장이 그의 아버지의 후원을 기대했다는 것은 연대본부 간부와 병사들이 다 아는 비밀이었다.


현역 의원들의 자녀 취업 청탁 및 특혜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공분이 일고 있다. 음서제 앞에 ‘현대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호들갑이지만 과연 한국 사회에서 음서제가 사라진 적이 있던가? 도덕적 기준과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대표적인 부패 유형의 하나인 봉건적 신분 세습 관행이 완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돈으로, 권력으로, 연줄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집어넣고, 번듯한 곳에 취직을 시키는 것은 이 땅의 특권층에게 깊이 각인된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보수와 진보, 여와 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 벌어진 논란은 질 좋은 일자리로 흐르는 수로가 마르면서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관행이 모습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과거엔 변변한 배경이 없는 청년 무리도 괜찮은 직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풍부했기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특권 청년’들의 존재가 희석되었다. 계급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가 특권 없는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해소시켜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청년실업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딸 취업 청탁 논란의 당사자인 윤후덕 의원조차도 언론 인터뷰에서 “딸이 대학 시절 모두 A학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임에도 취업이 쉽게 되지 않더라”라고 토로하지 않던가. 이럴진대 ‘부모 스펙’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을 위한 계급 사다리는 허약하다 못해 부러지기 직전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음서제 방지법’을 제안했고, 야당이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고위공직자의 배우자와 자녀의 직업 및 취업 현황을 공개하고, 특혜성 취업·승진이 의심되면 정부가 조사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당장 사생활 침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고육책이 제안됐다는 것 자체가 사태가 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과거와 다른 게 있다면 이것이다. 논란의 결말이 달라지려면 역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특권층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은 적은 없다. [경향신문 2015년9월4일자]



(낙산사에 있는 의상대와 동해 바다)

Posted by 까만주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