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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50살 된 <법전>의 산증인 현암사 조근태 회장

대학 시절 그 흔한 법학개론 수업조차 수강한 적이 없을 정도로 법에 문외한인지라 <법전>이라는 책이 그리도 유명한지, 그리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인지 몰랐었다. 법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내 일반화시킨 이 책은 법령집이다. 그런데 국회는 항상 새로운 법을 만들고 기존 법을 개정한다. 그러므로 법령집은 매년 갱신해 줘야 한다. 대한민국 현행 법령을 모두 담으면 책장 하나를 채울 정도로 책들이 모인다. 정부 부처게 가면 이 법령집이 있는데 주기적으로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이 와서 개정된 법령 부분을 갈아끼운다. <법전>은 모든 법령을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조인들이나 관료, 생활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보는 법령을 선별해서 싣는다. 따라서 어떤 법을 택해서 실을 것이냐부터가 경쟁력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재 '법전'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달고 나오는 책들이 많은데 현암사 법전과 비슷한 컨셉으로 주요한 것은 세가지라고 한다. 이들 모두 현암사에서 가지를 쳐 나간 사람들이 만들고 있다고 한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편집작업 하셨죠”

"<법전(法典)>이 처음 나올 때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안방에 조그만 책상을 갖다놓으시고 편집작업을 하셨는데 옆에 요강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였죠. 3년 동안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2000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법전> 교정·교열을 보셨어요."
13일 만난 조근태 현암사 회장(67)은 창간 50주년을 맞은 <법전> 이야기를 선친 현암 조상원 회장(2001년 작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했다.


1959년 4월 한국 최초의 법령집인 <법전>이 나올 때 우리나라에 법령집을 뜻하는 단어는 일본이 들여온 '육법전서'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긴 조상원 회장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후 '법전'은 법령집을 뜻하는 단어로 정착돼 국어사전에도 올랐다. 다른 출판사도 '법전'의 이름을 단 책들을 내고 있다. 법조문마다 제목과 개정연혁을 붙이는 관행도 현암사의 <법전>이 처음 도입한 것이다.
59년 한 손에 들어갈 만한 판형에 430개 법령을 수록한 1120쪽짜리 책을 시작으로 2009년 1330개 법령이 수록된 3616쪽짜리 대형 책자가 되기까지 매년 개정판을 찍었다. 올해는 51판을 냈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법전>은 법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 그 이상"이라며 축하의 글을 썼지만, <법전>의 창간 취지는 법을 국민 전체에게 돌려주는 데 있었다. <법전> 창간사가 "백성은 법을 믿고 산다"로 시작하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
지금은 딸 조미현 사장(39)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조근태 회장의 인생도 당연히 <법전>과 함께했다. "초판 판권란을 보면 '현암사 인쇄부'라고 나오는데 그게 서울 삼청동에 있던 저희 집이었습니다. 20평 남짓 조그만 한옥집에서 조판을 해 일일이 오려붙인 다음 오프셋 인쇄를 한 거죠.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건 숙명이었지요."

2009年 법전 - 10점
현암사법전부 엮음/현암사

일반 인쇄물과 달리 법에 관한 것이므로 정확성이 생명이다. 현암사의 <법전>은 오랜 전통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실수는 없었을까.
"벌금이 10만원인데 100만원으로 잘못 인쇄된 적이 있었습니다. 판사가 이걸 보고 벌금을 100만원으로 매겼다며 항의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백번 사죄하고 벌금을 물어준 뒤 책을 급하게 고쳤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 없으니, 우리 <법전>이 완전무결하다고 자신할 순 없겠죠. 다만 50년간 사람들이 봐온 것이므로 오·탈자가 있을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현암사는 오는 19~26일 국회도서관에서 <법전> 창간 50주년 기념 전시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