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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휘뚜루마뚜루

[로그인]충암고 사태와 박근혜의 염치

충암고는 나에게도 무척 친숙한 학교다. 나는 중3때 충암중고 길 건너편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왔고, 고등학교도 충암고 맞은 편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 농구가 대유행이었고, 나는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해질녘까지 농구를 했다. 당시 인기있는 농구장은 명지전문대와 충암고에 있었다. 흙바닥이 아니라 아스팔트 또는 우레탄 바닥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대에 농구 좀 한다 하는 중고생과 대학생은 다들 거기서 농구를 했다.


그런데 당시 충암고 건물(충암중 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에 있는 남자 화장실엔 희안한 물건이 있었다. 소변통이었다. 기름통 같은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깔대기를 꼿아놓았는데 아이들이 그 깔대기에 오줌을 싸면 큰 트럭이 와서 정기적으로 수거해갔다. 그 오줌을 수거해다가 무슨 약재인가를 만든다는게 당시 들었던 소문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충암은 명문으로 분류됐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것이 그 학교의 실력을 나타대는 징표로 여겨지던 시절 충암고는 길 건너 우리학교보다 서너배나 많은 학생들을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충암은 야구와 바둑도 유명했다. '돌부처' 이창호가 충암을 다녔고,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충암 출신도 여럿 있다.


최근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들에 관한 기사를 보면 오줌통은 사라졌지만 학교 건물이나 운영은 낙후되다 못해 퇴락하고 있는 듯 하다. 충암고 사태를 접하며 가장 분개했던 것은 그 학교에 배정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였다. 한국에선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배정해주는 학교에 가야 한다. 본인이 원치 않았는데도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학교에 다녀야 학생들은 뭔가.


2005년 겨울과 2006년 봄 한나라당은 장외에서 지독하게 싸웠다. 종교계를 선동해 개정 사립학교법 반대에 나서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마저 사학법에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 실력은 이때부터 정착됐다고 본다.


차장급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로그인] 칼럼을 몇차례 썼는데 죄다 비판조에다 우울한 내용 일색이다. 입맛이 쓰다.



(2010년 5월 20일 일본 아오모리 대형 등롱)


[로그인]충암고 사태와 박근혜의 염치


 최근 서울의 사립 충암고에서 드러난 급식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은 처참하다. 서울시 교육청은 감사를 통해 이 학교가 식재료 살 돈을 미리 빼돌리거나 구입한 식자재를 빼돌리는 등 급식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밝혀냈다. 이 학교는 식재료가 모자라고 음식을 조리할 인원도 부족하다보니 조리가 간편한 튀김요리를 주로 학생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입한 식용유의 최대 절반을 빼돌려 내다 팔았으니 당연히 식용유가 부족했다. 너무 오래 사용해 새카맣게 된 식용유로 반찬을 튀겼다는 증언을 전해듣는 학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이 학교는 설립자인 부친에 이어 이사장을 맡던 모친이 사망하자 아들이 1975년부터 이사장을 맡아왔다. 그는 1999년 학교 난방시설 공사에서 3억5000만원을 빼돌리고, 조카를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병무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이 일로 그는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명예이사장' '학원장'으로 불리며 학교에 남았다. 그의 뒤를 이은 손자마저도 2011년 교육청 감사에서 수많은 비리가 적발돼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역시 행정실장으로 자리만 옮겼다. 현재는 손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3대를 잇는 완벽한 '족벌체제'다.

 이처럼 강고한 족벌체제에서는 학교 내의 감시와 자정기능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이 학교 교사나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시커먼 기름으로 튀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학교 교사와 교직원 가운데 학교 급식을 먹은 비율은 타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사장의 비리가 드러나면 그의 아들이, 아들이 분탕질을 치다 걸리면 딸이 돌아가며 요직을 맡는 상황에선 문제제기를 하려면 밥그릇이 날아가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선 외부의 감시를 강화하고 세습의 고리를 끊는 게 중요하다.

 10년 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조준한 법이 마련됐다. 2005년 12월9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학 운영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였다. 사립학교 이사 가운데 4분의 1을 이른바 '개방이사'로 채우도록 했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회가 개방형 이사 후보를 2배수 추천하면 이사회가 최종 선임토록 했다. 이사회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신설됐고, 이사들의 인적사항도 공개토록 했다. 결정적으로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는 해당 학교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법이 겨냥한 것은 명확했다. 족벌이 장악한 사학에서 자행되는 비리였다.

 그런데 개정 사학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망가뜨리는 법"이라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57일간 장외투쟁을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학비리에 대한 일제 감사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요지부동이었고, 노 대통령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 법안 설명을 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사석에서 "노 대통령이 박 대표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학법은 2007년 7월 다시 개정됐다. 사실상 '박근혜표 사학법'이었다. 개방이사 선임 절차가 사학 측에 유리하게 완화됐고, 친·인척의 학교장 취임 제한도 예외조항이 마련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2005년 사학법의 핵심조항들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충암고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해당 학교와 감독당국이 져야 한다. 그러나 10년 전 비리족벌사학을 퇴출하기 위한 길을 넓혔던 사학법을 끝내 무산시킨 박 대통령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새카맣게 탄 식용유로 튀긴 음식을 먹는 사태가 그가 그렸던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인지 답할 의무가 있다.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