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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맛있는 식품법 혁명

예전에 책동네 산책을 쓰면서 "왜 우리는 청바지 한 벌에 숨어 있는 저개발국 목화 노동자들의 착취당한 노동, 환경파괴, 다국적 기업의 위선을 폭로한 탐사물은 흥미롭게 읽으면서 용산참사가 왜 벌어졌고, 당시 현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를 밝힌 책은 외면하는 것일까"라고 투덜댄 적이 있다.([책동네 산책]르포물 '가뭄'에 가물가물해지는 우리의 기억) 그 글에서 '제3세계 인신매매에서부터 다국적 기업의 착취구조까지, 나치와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이라크전까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번역물이 소개된다고 말했다. 그런 종료의 책들은 현장성이 살아있기에 대체로 흥미를 끈다. 나도 그런 책들을 여러권 소개했다.

한국 출판계가 이런 시도를 안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내 저작 가운데는 제대로 된 르포물, 탐사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출판사들은 그런 시도를 안해본 적은 아닌데 일단 저자를 찾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기자를 하고 있지만 기자들도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식품법 혁명>의 제목과 표지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이 책을 담당한 출판사 편집자 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오히려 책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표지 디자인은 '김영사스러운'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데 왠지 실용서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제목은 원고의 취지는 잘 담고 있지만 반숙 수준이다. '식품'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앞에 '맛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같은데 의미가 똑 떨어지지도 않고 좀 촌스럽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타이틀에 달려면 뭔가 좀 더 인상깊은 수식어를 골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여하튼 원고가 담고 있는 주장을 요약해 기계적으로 붙인다음 어색한 수식어를 덧붙여 만든 제목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 따른 평가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서문과 본문 앞부분을 조금 훑어보면서 흥분이 몰려왔다. '식품법' 이 얼마나 재미 없는 주제인가. 그런데 저자는 아이로니컬한 역사적 사례들을 앞부분에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흥미를 갖고 집중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칫하면 '논문스러운' 나열로 빠질 수 있는 팩트들을 맛깔나게 요리했다. 우리가 번역서들을 통해 접한 바 있는 유전자변형농작물(GMO), 각종 유해한 식품첨가물 등에 관한 얘기들이 우리의 얘기로 꾸며져 있었다.

지은이 송기호 변호사의 전작 <곱창을 위한 변론>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그 책도 재미나게 읽었지만 이번 책처럼 흥분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출판 담당이라 이런저런 책을 비교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뒷부분에 가면 좀 긴장이 덜해지는 등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국내 저자의 이런 책이라면 후하게 100점을 주고 싶다.

때마침 디지털뉴스국에서 착한시민프로젝트 제2탄으로 식품 라벨에 관한 시민체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길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선배에게 송기호 변호사를 조언자로 모시는게 어떠냐고 귀띔해 줬다. 선배가 엊그제 송 변호사에게 연락한 모양인데 흔쾌히 참가하기로 했단다.

돌려줘, ‘밥상 주권’
-납득 못할 한국 식품법 100년에 우리 밥상에 짙게 드리운 그늘
-관료와 다국적 자본에 휘둘리는 ‘식품 주권’ 시민들이 찾아와야

맛있는 식품법 혁명 - 10점
송기호 지음/김영사

탈근대 담론이 등장한 지 한참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근대가 만든 각종 사고의 틀과 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개인주의·합리주의 등이 근대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확장되고 정착되는 시기가 근대와 겹친다. ‘국가’와 ‘국민’을 탄생시킨 것이 근대의 중요한 면모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근대에 들어서 사회의 다양한 기제들이 재정의되고 통일됐다. 근대에 와서 ‘학교문법’이 정해지고 교육됨으로써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던 언어의 규칙이 통일된 것처럼 말이다. 미셸 푸코가 질병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밝혀냈듯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권력행위에 다름 아니다. ‘식품(食品)’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국립국어원은 식품을 ‘사람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굳이 국립국어원까지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치고 이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법적·제도적으로 식품은 무엇일까? 식품위생법·식품안전기본법 등은 ‘식품이란 모든 음식물을 말한다. 다만, 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은 제외한다’고 규정한다.

‘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은 제외한다’는 문구만 접어두면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너무나 자명하게 보이는 식품이라는 단어가 법적·제도적인 측면으로 들어가면 거의 미로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식품의 규격과 안전에 관한 기준이 37가지로 찢겨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대체 몇명이나 있겠는가? 물을 예로 들어보자. 수돗물, 먹는 물, 먹는 샘물, 먹는 해양심층수, 해양심층수, 두부 같은 일반 식품에 들어가는 바닷물(간수), 지하수 등에 대해 각종 관료조직이 제각각 규정을 두고 따로 관리한다. 식품과 관련된 각종 제도와 관행은 특혜와 배제의 강고한 메커니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더욱 어렵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사회혼란을 유도한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팩트(fact)’에 기반한 허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설명해주던 송기호 변호사를 한번 따라가보자. 2005년 1월 학교급식 식기세척제 원료에 발암 가능물질이 포함돼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것을 금지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먹거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이 책에서 너무 왜곡돼 있기에 분노는커녕 슬픔을 먼저 안겨주는 대한민국 식품체계 100년의 역사와 현실을 조명한다.


중장년층은 ‘혼분식 장려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식생활을 ‘개선’한다면서 쌀 위주의 식습관을 바꿔나간 운동 말이다.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영양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대대로 먹어온 쌀을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국가는 1971년 모든 음식점에서 즉석에서 솥에 쌀밥을 짓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매주 수·토요일 11~17시에는 쌀밥을 파는 행위를 아예 불법화했다. 국가의 권능은 순식간에 국민의 식습관을 바꿀 정도로 강력했다.

왜 그토록 쌀을 못 먹게 했을까. 쌀이 모자라서? 아니다. 역사가들은 미국의 남아도는 밀과 옥수수를 수입해 한국에서 소비토록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음을 밝혀냈다.

우리는 대부분 남이 생산한 먹거리를 사서 먹는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돼 있는 것이다. 당연히 생산·가공·유통·판매 등 각 단계마다 적용될 다양한 제도와 규정이 필요해진다. 초콜릿은 코코아 함량이 35% 이상이어야 하며, 과일잼에는 과일이 40% 이상 들어가야 한다. 만일 어떤 식품에 코코아가 34.9%밖에 들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초콜릿이 아니며 이런 제품을 초콜릿이라고 팔았다간 큰 처벌을 받는다. 당신 아이에게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먹이고 싶다고? 안타깝지만 모든 것을 일일이 길러서 먹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GMO를 상위 5대 주요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 한 GMO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식품에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천일염은 식품일까 아닐까? 믿기지 않겠지만 2008년까지는 식품이 아니었다. 이때까지 천일염은 법적으로 ‘광물’로 분류됐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납득이 가는가? 2007년 수원의 어느 쌀가게 주인은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고아미’라는 쌀을 팔면서 체중 감량, 당뇨·변비·고혈압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광고했다. 허위사실이라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쌀은 의약품이 아닌데 의약품과 혼동할 우려가 있는 광고를 했다는 게 죄목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한 농민은 자기가 재배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팔아왔는데 역시 처벌을 받았다. ‘식품 제조업자의 시설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어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매년 전국에서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지은이는 개별적인 사안들을 폭로하고 옳고 그름을 평가하긴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그의 문제의식은 그 이상이다. 식품의 생산·가공·유통·소비 전반을 아우르는 법적·제도적 메커니즘에 관해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의 핵심은 민주화·투명화·객관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천일염이 식품인가 아닌가, 특정 유전자조작 식품의 수입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특정 화학제품을 식품첨가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잔류 농약을 얼마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심의·결정하는 권한을 지금처럼 밀실이나 다름 없는 곳에 숨어 있는 관료와 이해당사자, 다국적 거대자본에 맡겨두지 말고 시민이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식품주권’을 되찾자는 얘기다.

이 책은 제목이 산만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약해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탁월하다. 날것으로는 전혀 맛을 느낄 수 없는 사실들을 잘 요리해 화려한 웅변보다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자료와 문헌, 행정정보 공개청구만으로 이토록 재미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니 놀랍다. 번역서들을 통해서 보던 성과를 국내 저자의 책에서 볼 수 있어 더 기쁘다. (20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