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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조지 슬로윅 주니어 퍼블리셔스 위클리 대표

숨가쁘게 보낸 지난주에 파주출판단지까지 가서 만난 사람은 그 유명하다는 서평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PW)의 대표인 조지 슬로윅 주니어였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번역서 띠지나 홍보문구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매체다.   

슬로윅은 21살에 맥밀란 출판사에서 출판일을 시작했으며(편집인지 영업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영업쪽일 가능성이 높다), 1989~93년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발행인으로 일했다. 이후 자신의 사업을 개척했으며 지난 8월 PW를 매입했다고 한다.

미국의 권위지들의 북 리뷰 작성 시스템을 예전에 보고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슬로윅을 인터뷰하면서 새삼 부러웠다. 출판사들로부터 원고상태의 책을 출간 100일전쯤 받아 책이 정식 출간되기 2~3달 전에 리뷰를 쓴단다. 월요일 또는 화요일 받은 책을 후닥닥 검토해서 화요일과 수요일을 꼴딱 밤을 새운 다음 목요일에 마감해야 하는 나로선 뭐, 할 말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이지 '초치기의 달인'이 되지 않고선 못할 짓이니까.

슬로윅은 출판전문지로서 전자책 시대를 선도적으로 헤쳐나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 대한 정보와 분석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 출판사들은 전자책 시대에 독자들의 행태 변화, 새로운 수익모델 등에 대해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PW는 지속적으로 리서치를 해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자가출판(Self-publishing), 전자책 등 새로운 형식의 책에 대해서도 지배력(?)을 높이고자 애쓰고 있었다. 종이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자가출판물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지만 이렇게 되면 PW에 정보와 사람이 모이게 될 것이므로 향후에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PW의 수익구조가 궁금했다. 35% 정도가 광고수익이고 30% 정도는 구독료, 30% 정도가 저작권료로 들어온다고 했다. 상근직원은 32명, 리뷰를 쓰는 외부의 전문가풀은 250명이라고 했다.

포럼에서 슬로윅은 현상에 대한 정보와 분석에 초점을 맞춰 발표했다. 이후에 따로 만나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그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얘길 하길래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관련해 게재한 기사 제목 얘길 했다. 하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전자책 전시회가 될 것인가?'와 '우리는 언제쯤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을 갖게될까?'였다.

이 제목들을 거론하며 의문문으로 제목을 단 것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가능성이 낮다고 봤기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이 제목들을 얘기했더니 그의 눈빛이 빛나면서 미소를 지었다. 슬로윅은 전자의 경우 필자라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디지털 얘기가 판을 치면서 무슨 가전 박람회 분위기가 난다면서 약간은 비판조로 쓴 것이며, 후자는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실린 기사였다고 말했다.

여하튼 미국 출판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슬로윅은 출판의 디지털화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매체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한국 출판인들이 가장 궁금해 했을 대목, 전자책 시대의 수익모델 부분에 대한 얘기는 사실 맥이 좀 빠지는 느낌이었다. 

“전자책 인기는 공짜 콘텐츠 덕 돈 내는 소비자 만드는 게 과제”

콘텐츠 산업의 핵심인 출판계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해 있다.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책읽기 형식과 도구가 갈수록 저변을 확대해 가면서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 이래 최대의 변화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진단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이야기만 무성한 상황이긴 하지만 종이책 위주의 출판 및 독서 행태가 점차 디지털 기반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130여년 전통의 출판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PW)의 조지 슬로윅 주니어 대표를 지난달 28일 만나 미국의 전자책 현황 및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지난달 28~29일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린 제5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슬로윅 대표는 이번 포럼에서 ‘콘텐츠 개발 전략과 출판’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는데 PW가 지난 2월과 5월, 8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전자책에 관해 실시한 매우 구체적인 연구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슬로윅은 “연구에 참여한 3분의 1가량의 독자들은 최근 6개월 이내에 전자책 단말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자책 단말기가 매우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패드가 등장하면서 기존 전자책 단말기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아진 것도 이 같은 확산속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미국 독자들은 왜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하는가. 슬로윅은 “사람들이 전자책 단말기를 사는 주요 이유는 무료 콘텐츠 또는 미리보기 챕터를 제공받기 때문”이라며 “단말기로 읽히고 있는 책의 52%는 무료”라고 말했다. 아마존 킨들로 대표되는 전자책 단말기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에는 공짜 콘텐츠가 풍부하게 축적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이 종이책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슬로윅 대표는 “지난 8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4분의 1은 현재 전자책만 구매한다고 말했고, 4분의 1은 앞으로 종이책을 거의 사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면서 “독자의 절반 정도가 종이책을 거의 또는 전혀 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콘텐츠 개발자인 출판사들에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전자책 소비는 늘고 있는데 정작 소비자들은 공짜 콘텐츠에 먼저 길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슬로윅은 “무료로 전자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종이책이든, 전자책의 형식이든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전자책 시장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종이책을 출간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슬로윅 대표는 “소비자들이 전자책 출판을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세달이라고 가정해보자”면서 “응답자의 3분의 1은 그들이 기다릴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 출판사들은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에 출시하는 계획들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슬로윅의 진단이다.

1872년 창간된 PW는 현재 5종의 잡지와 4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1년에 7000여종의 책에 대한 리뷰를 싣고 있다. 맥밀란에서 출판 업무를 시작한 슬로윅 대표는 89~93년 PW의 발행인을 역임했으며, 지난 8월 PW를 인수했다. 대표 취임 이후 그가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자가 출판물에 대한 리뷰 제공 문제이다. 기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대행업체 등을 통해 출판된 책들의 내용과 가치를 평가해 언론과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슬로윅은 “자가 출판물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현저하게 늘고 있는데 전문적인 리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가 출판된 책들에 담긴 가치를 알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년에 4차례 특집판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 작성 문제도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업이다. 여러 전자책 서점들이 각자 베스트 도서 순위만 공개할 뿐 판매량은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 수치들을 종합해 종이책처럼 신뢰도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책 시대의 본격 개막이 독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슬로윅은 “미국에 사는 한국어 독자가 오랜 시간 기다려 종이책을 배송받는 대신 곧바로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기술변화는 독자가 원하는 책을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책을 둘러싸고 지금 진행 중인 기술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읽으면 됩니다. 책을 읽기 위한 도구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든, 예를 들어 시계처럼 손목에 차고 읽을 수 있는 기계가 나오든, 이마 위에 올려놓고 보는 기계가 나오든 독자 스스로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서 선택해서 읽으면 됩니다. 어찌됐든 독자들이 콘텐츠를 접할 기회는 더욱 넓어지는 것이지요.” (201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