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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희망의 자연> 출간한 제인 구달

예전에 <파브르 곤충기>(현암사)를 10권으로 완역한 원로 곤충학자 김진일 선생을 인터뷰 했을 때였다. '현장' 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이 관찰하는 생물의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멸종하거나 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기후변화와 곤충 생태의 연관성 같은 것을 여쭸더니 김 선생은 과거 현장 조사를 다닐 때 그런 사례를 자주 접했다고 말했다. 1년 전 조사된 개체수가 다음해엔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아예 발견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인데 뭔가 환경에 큰 변화가 있거나 인위적인 위협이 처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던졌던 질문이 '그렇다면 현장 생물학자들은 다 비관론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그런 광경을 실제로 목격하는 사람은 전율을 느끼고 무력감에 휩싸일 것 같아 던진 질문이었다. 그때 김진일 선생이 정확히 어떻게 답변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자신 같은 생물학자들이 나서서 상황을 알리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했던 것 같다.

방한 간담회에서 구달이 하는 말들을 들으며 나는 김진일 선생의 답변이 떠올랐다. 세계적 대가이든 초짜이든 생물이 좋아서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길에 뛰어든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에 휩싸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실제로 플로어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인건지, 실제로 희망이 있는건지. 질문자의 의도는 전자쪽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여하튼 구달의 말마따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니 희망의 당위성을 믿지 못한다면 생물학자로 살 수 없을지 모른다. 희망을 말하는 구달의 표정과 목소리는 한없이 맑으면서도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맑고 투명한 그의 표정에서 보인 어떤 서글픔은 나 혼자만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어떤 틈새가 보였던 것일까?

한편으론 4대강 사업에 관한 질문이 던져졌는데 역시 노련한 활동가 답게 구달은 원론적인 이야기로 피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4대강 이슈에 대해 들어보긴 했으나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는데 간담회가 끝나고 나서 '그렇다면 현장을 한번 방문해볼 의향은 없느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너무 짓꿎은건가?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나”

“인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동물이 침팬지인데 수많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똑똑한 침팬지를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인간은 지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지구상에서 걸어다니는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똑똑한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말입니다.”

2010년은 유엔이 정한 ‘생물 다양성’의 해이다. 그리고 야생의 침팬지 연구로 명성을 얻은 뒤 환경·평화 운동가로 변신,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인 구달(76·사진)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밀림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한 지 5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구달이 4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환경부가 30일부터 여는 ‘생물 다양성과 연구의 교류 협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자신이 시작한 어린이·청소년 대상 환경 운동인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의 한국 내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방한에 맞춰 구달이 공저자로 참여한 책 <희망의 자연>도 번역·출간됐다. <희망의 자연>은 위기에 처해 있는 동식물과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구달은 28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1년 중 300일을 연구와 강연 등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구달이 전하는 메시지는 모순적으로 들린다. <희망과 자연>에서 구달은 인간과 생태계의 미래와 관련해 상황이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희망을 가져야 하고 실제로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동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세계를 다닐수록 많은 동물들이 위험에 처해 있고 많은 생물학자들이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서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세상을 다녀보면 희망은 많습니다. 다만 단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구달은 자신이 헌신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거미줄, 즉 ‘생명의 그물망’에 비유했다. “거미줄의 줄 한두 개가 끊어지면 거미줄은 점점 약해집니다. 자꾸 끊어지다보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생물 다양성과 관련해 가장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슈는 단연 정부의 4대강 사업이다. 구달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른다”면서 조심스러워했지만 “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단 오염물질 유입을 막아야 하고, 특히 강의 흐름을 바꾸는 댐은 생태계에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구달은 이어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오늘날 사람들이 지혜를 잊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내가 내린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지혜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이 결정이 당장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지, 주주총회와 선거운동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굉장히 똑똑한 인간의 머리가 열정과 연민, 사랑과 단절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습니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구달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자연과 생태계, 그리고 인간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2010.9.29)

희망의 자연 - 10점
제인 구달.세인 메이너드.게일 허든슨 지음, 김지선 옮김/사이언스북스

P.S. 예전에 <제인 구달 평전>(지호)에 실린 구달의 젊었을 적 사진과 곰비에서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구달의 수려한 외모와 성공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사진을 보면 구달은 문명의 대표적인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젊고 여린 금발의 백인 여성 이미지는 지금도 각광받는 이미지이니까. 그런데 그런 여성이 미지의 야생상태인 밀림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건장한 군인들이 미지의 밀림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도 팽팽한 긴장과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금발의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아드레날린 수치는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구달의 업적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다. 불경하다고 탓하지 마시길... 다만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당시 그의 업적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추인을 받는 과정에서 다소간의 선정성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