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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마이클 샌델

갑작스럽게 '정의론'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마이클 샌델이 지난주 왔었는데 초청자가 보여준 호들갑스러움과 열광하는 독자들을 보는 나의 심사는 솔직히 그리 편하지 않았다. 마치 미국 대통령이 온 것처럼, 아니면 할리우드 초특급 스타가 온 것처럼 온통 호들갑들을 떨어댔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때 초청자가 보여준 미숙함도 짜증을 더했다. 나 자신도 기사를 쓰긴 했지만 한국 언론이 보여준 호들갑도 별로 맘에 안들고...

눈에 거슬렸던 게 또 있는데 '영어'의 문제였다. 기자회견장에서 여러 기자들이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영어 잘 못하는 작자의 트집이라고 비꼬아도 할 말은 없지만 배알이 꼴렸다. 여러모로 짜증스런 상황에서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이겠으나 속으로 '저치들은 기사도 영어로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경희대 강연을 갔던 분의 전언에 따르면 경희대 대중강연에서도 한국어로 질문을 던진 '대중'은 단 2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다들 유창한 영어로 블라블라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아, 영어 집착 교육의 훌륭한 성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샌델이 보여준 모습은 부글거리는 짜증을 다소나마 달래주었다. 샌델은 매우 성실한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보여준 실력, 어려운 주제를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준 필력을 '오럴 스피치'에서도 전혀 귀찮거나 짜증스럽다는 내색 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원래는 베스트셀러에 그닥 열광하지 않는 편인데, 정치철학은 평소 관심을 뒀던 분야라 요즘 관련 책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달 나온 로널드 드워킨의 <법과 권리>, 이번주에 나온 로버트 달의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을 우선 챙겨뒀다. 그러고보니 과거 챙겨뒀다 읽지 못하고 지나쳤던 <정의로운 삶의 조건 롤스 & 매킨타이어>라는 책도 눈에 들어왔다. 이양수 선생이 쓴 이 책은 샌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존 롤스(샌델은 롤스 비판으로 학문적 이름을 알렸다)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사회정의'를 두고 벌이는 논쟁을 매우 쉽게 설명했다. 이 책은 출퇴근 시내버스에서 읽기 시작해 절반 정도 읽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흥미를 느낀 독자라면 이 책은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정의란 무엇인가> 덕분에 이런 책들을 한바퀴 돌고나면 정의, 평등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기초 정도는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과 권리 - 10점
로널드 드워킨 지음, 염수균 옮김/한길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 10점
로버트 달 지음, 김순영 옮김/후마니타스

정치서 소외된 ‘정의’ 한국도 미국처럼 시민들은 ‘갈증’을 느꼈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 방한

“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합의를 요구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윤리적, 정신적 이상을 갖고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공동의 이상을 합의하고 사람들의 권리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런 가치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불일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번째 단계인 것이죠.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도덕적 논쟁, 공공의 논의를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5월 말 처음 발행돼 3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57)가 방한, 1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7세의 나이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그는 하버드생이 최고의 명강의로 꼽는 수업 ‘정의론’의 담당교수다. 한 번에 1000명씩 수강하는 이 수업에서 샌델 교수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도 정력적으로 답변을 이어가며 달변을 과시했다.

그는 자신의 책이 정치철학을 다룬 인문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는 것을 두고 “참 많이 놀랐다”면서 “이번 방한에서 (왜 한국인이 이 책을 많이 읽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느끼는 ‘허기’에 대해 언급했다.

샌델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정당정치가 (국민을) 서로 분열시키는 논의로 흐르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들은 다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러는 사이 시민들은 진지하고 큰 윤리적인 질문, 정의와 관련된 질문에 배고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도 이런 배고픔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이 개인의 권리, 공동선과 정의의 의미 등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개념들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갈증을 채워줬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현대 정치철학,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시장과 국가(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를 묻는 질문을 받자 짤막한 정치철학 강의를 열었다.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등 이론적 접근법을 차례로 개괄한 것이다. 자유지상주의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시장이 지배토록 하는 것을 최선으로 본다면,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는 정부가 개입해 기회의 평등을 모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주의는 기회의 평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시민의식, 공동선에 기반을 둔 분배의 정의, 민주적 참여를 강조한다. 샌델 교수는 “공동체주의는 빈부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공동의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공동의 목적을 갖는 너무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을 어느 정도 제약해서 응집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샌델이 지지하는 접근법이 이것이다.

그는 이어 현대 정치가 경제에 매몰됐다면서 비판했다. “지난 몇십년간 미국,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선 경제성장이 정치의 우선과제가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테크노크라트 정치를 양산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이 경제에만, GDP(국내총생산)에만 치중하다보니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공동선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소외시킨 것입니다.” 샌델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같은 국민의 열망을 간파해서 캠페인에 활용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아직 논의가 부족하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20일 저녁 경희대에서 4000여명의 독자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대중 강연을 연다. 그는 20일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청중이 4000명에 달하고 통역을 거쳐야 하겠지만 하버드에서처럼 대화식으로 가능한지 시도해 보겠다”며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0.8.20)